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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6-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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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5(2016)년 11월 10일

 

보 통 문

 

 

평양시 중구역 보통문동에 있는 평양성 중성의 서문.

보통문은 6세기 중엽 고구려가 수도성인 평양성을 쌓을 때 함께 세웠다.

지금 있는 건물은 여러차례 보수개건되여오다가 1473년에 고쳐지은것이다.

보통문은 평양성 서북쪽방향으로 통하는 관문으로서 국방상 또는 교통상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므로 고구려시기부터 고려와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이르기까지 매우 중요시되였다.

옛날부터 보통문은 평양8경의 하나로서 널리 알려져있다.

이 건물은 웅장하면서도 균형이 잘 째인 아름다운 건물로서 고려건축양식을 많이 보여준다.

보통문은 화강석을 다듬어 쌓은 축대와 그우에 세운 2층문루로 이루어졌다. 축대복판에는 무지개문길을 내고 문길 앞쪽에는 앞뒤에 쇠쪼각들을 줄지어 입힌 튼튼한 널문을 달았다. 지금도 널문과 그것을 잠그고 멈추고 하던 시설들이 남아있다. 높이 쌓아올린 축대의 너비 4.4m, 높이 4.55m의 무지개문길은 우리 선조들의 높은 돌쌓기기술을 보여준다.

문루는 정면 3간(14.8m), 측면 3간(9.15m)이며 배부른기둥들이 두공을 이고 그우에 2층의 날아갈듯한 합각지붕을 떠받들고있다. 바깥기둥들은 1층의 지붕에 이어지고 집안의 4개의 기둥은 1층에서 2층까지 관통하여 세웠다. 바깥기둥과 안기둥사이에 련결된 보우에는 짧은 2층기둥이 놓여있다.

두공은 1층과 2층에서 안팎이 다같이 3포로 되였다. 두공 첨차의 간격은 같지 않으며 제공은 소형으로서 그 웃면 중간에 턱을 지어 변화를 주었다. 문루의 2층에는 모서리기둥을 세우지 않고 1층 추녀의 뒤초리가 기둥을 대신하게 하였으며 마루도리밑에는 아름다운 화반대공을 세우고 그 좌우에 활개를 받쳐 집의 억세기를 높였다. 이 모든것은 고려건축의 영향을 잘 보여준다.

보통문은 다른 성문들에 비하여 전체 높이가 조금 낮고 또 1층면적에 비하여 2층의 면적이 상대적으로 좁게 되여있다. 측면에서 1층 량쪽바깥기둥의 밑둥과 마루도리를 련결하는 3각형 그리고 정면에서 축대바닥 량쪽끝과 문루의 룡마루중심을 련결하는 3각형은 거의 정3각형에 가깝게 되여있어 보통문은 장중하고 안정한 느낌을 준다.

보통문에는 우리 선조들이 조국을 위하여 싸운 슬기로운 이야기가 깃들어있다.

임진조국전쟁때 우리의 용감한 인민들과 군인들은 보통문으로 돌입하여 성안에 일시 도사리고있던 적들에게 섬멸적타격을 주었다.

조국해방전쟁때인 주체41(1952)년 8월 미제의 폭격으로 보통문이 불길에 휩싸이게 되였을 때 평양시민들은 희생적으로 불을 끄고 이것을 살려냈다.

이 모든 사실들에는 우리 인민들의 조국에 대한 사랑과 고귀한 민족문화유산을 지켜내려는 고상한 사상감정이 발현되여있다.

보통문은 오랜 력사의 도시-평양과 함께 고구려, 고려, 조선봉건왕조 그리고 오늘까지 전해 내려오는 우리 나라의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으로서 국보로 잘 보존관리되고있으며 평양성연구에서 가치있는 중요한 자료로 되고있다.

 

 

 

강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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