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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7-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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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6(2017)년 6월 23일

 

보 통 문

6세기 중엽 고구려가 수도성인 평양성을 쌓을 때 함께 세운 보통문은 평양시 보통강기슭에 자리잡고있다.

여러차례 보수개건되여오다가 1473년에 고쳐지은것이 오늘의 보통문이다.

보통문은 웅장하면서도 균형이 잘 째인 아름다운 건물로서 예로부터 평양8경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있다.

이 건물은 화강석을 다듬어 쌓은 축대와 그우에 세운 2층문루로 이루어져있다.

보통문에는 임진조국전쟁시기를 비롯하여 우리 선조들이 조국을 위하여 싸운 슬기로운 이야기가 많이 깃들어있다.

보통문이《신문》(신비로운 문)으로 불리워지기 시작한것은 1592년 일본침략자들이 우리 나라에 침입했던 임진왜란이 있은 후부터였다.

그때 성안에는 왜장 소서행장이란자가 왜놈무리를 끌고 들어와있었는데 우리 의병들은 동서남북으로 때없이 쳐들어와 놈들에게 봉변을 안기군 하였다.

왜장놈은 그 원인이 성문을 잘 지키지 못한데 있다고 생각하고 문지기를 불러 문초하였다.

왜놈문지기는 보통문이 닫겨야 할 때 닫기지 않고 열려야 할 때 열리지 않으니 자기도 어쩔수 없다고 하였다.

하루는 보통문으로 의병들이 달려온다는 급보를 받고 힘센 왜놈들을 동원해 성문을 열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는데 의병들의 만세함성이 울리자 성문이 종이장이 번져지듯 열리였다.

아무래도 이상하여 한 백발로인을 데려다가 물으니 로인이 말하기를 《여기는 그 어떤 귀신의 조화도 없다. 보통문은 말그대로 보통문이다. 귀신이 있다면 그것은 일본귀신일것이니 액막이를 하려면 빨리 제 소굴로 돌아가는것이다.》라고 하고는 사라졌다.

왜장놈은 로인의 말대로 여기를 떠나는것이 가장 좋은 《액막이》라고 생각하고 의병들이 공격해오자 성안에 제놈들의 시체를 남겨놓은채 내뺐다는 이야기가도 전해지고있다.

 

원 정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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