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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7-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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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6(2017)년 1월 12일 [소개]

민요 《모란봉》의 창작유래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울산타령〉과 〈모란봉〉은 참 아름다운 선률을 가진 노래입니다. 그런 노래를 많이 지어야 하겠습니다.》

유명한 명승지로 소문난 모란봉과 나날이 웅장하고 화려한 도시로 변모되여 가는 혁명의 수도 평양의 아름다운 모습을 긍지높이 노래한 민요 《모란봉》에는 다음과 같은 창작유래가 담겨져있다.

1957년 여름 어느 명절날 국립민족예술극장(당시)에서 창조사업을 하고있던 민요가수 김관보와 그의 남편인 작가 조령출은 서도명창 김진명과 함께 모란봉에 올랐다.

록음이 짙게 우거진 모란봉의 을밀대에 올라 동서남북을 바라보는 일행의 감회는 참으로 깊었다.

가렬처절하였던 조국해방전쟁시기 미국놈들의 야수적인 폭격으로 재더미만 남았던 평양에 수많은 새집들이 일떠서고 창조와 건설의 동음이 힘차게 울려퍼졌던것이다.

흥이 오른 그들은 을밀대정각안에서 김진명의 흥취나는 장고소리에 맞추어 민요가락을 넘기기 시작하였다.

그날 모란봉의 즐거운 명절놀이에 여념이 없던 일행은 조령출의 재촉으로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놀이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않고 을밀대란간에 기대여 무엇인가 열심히 쓰고있던 조령출이 빨리 내려가자고 재촉한데는 나름의 안속이 있었던것이다.

문턱을 넘어서기 바쁘게 조령출은 을밀대에서 쓴 가사를 내놓으며 김진명더러 곡을 붙여보라고 하였다. 김진명은 장고를 치면서 우리 나라 중부지방민요인 《창부타령》에 기초하여 조령출이 쓴 가사에 선률을 붙여나갔다.

 

금수산제일봉에 아침해발이 붉게피니

꽃봉오리완연하여 모란봉이라 하였는가

양덕맹산에 흐른물은 청류벽으로 감돌아들고

릉라도버들에 꾀꼬리우니 대동강에 봄이로다

이 강산 좋은곳에 터를 잡은 평양이라

유서도 깊거니와 혁명의 수도로 더욱 좋네

얼씨구좋네 절씨구야

우리네 평양은 좋을씨구 사회주의건설이 좋을씨구

 

2절가사는 사실 김관보가 을밀대에서 즉흥으로 엮은것을 기본내용으로 다듬은것이였다.

이름있는 작가와 두명창이 밤늦도록 가사를 고르고 그 붙임새에 따라 선률을 다듬고보니 《창부타령》과는 많은 면에서 달라진 새 노래가 되였다.

노래는 본래 민요의 우점을 살리면서 인민들의 미감에 맞게 랑만적인 정서와 밝고 류창하면서도 률동적인 선률적성격을 더욱 부각시키였다.

그래서 제목도 《모란봉》이라고 고쳐불렀다.

결국 《모란봉》은 새로운 민요로 태여나게 되였다.

《모란봉》은 민족적특성과 현대성을 훌륭히 구현하고 있는것으로 하여 오늘 인민들속에서 널리 불리워지면서 깊은 사랑을 받고 있다.

 

조령출선생과 부인 김관보선생

 

 

김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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