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ico                     

기사게시날자 : 2016-12-23

...목록으로
주체105(2016)년 12월 23일 [상식]

 

남이장군(1441-1468)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장수.

본은 의령. 시호는 충무이다.

남이장군은 1441년에 태종의 외손으로서 의산군 남휘의 아들로 태여났다.

그는 16살에 무과에 합격하였고 세조의 총애를 받아 26살의 젊은 나이에 중추부 동지, 오위도총부 도총관, 공조판서를 거쳐 병조판서의 높은 벼슬을 지냈다.

남이가 청년명장으로서 이름을 떨칠수 있은것은 1467년 9월에 외래침략자들을 징벌하는 싸움에 참가하여 큰 공을 세웠기때문이다.

당시 외래침략자들은 빈번히 북부국경지대에 침범하여 사람들을 죽이고 재물을 략탈하군 하였다.

그리하여 조정에서는 국경을 침범하여 살인과 방화, 략탈만행을 감행하는 외래침략자들을 징벌하는 부대를 무어 파견하였다.

이때 남이는 이 부대의 우상대장으로서 총대장인 주장 강순과 함께 외래침략자들의 소굴에 들어가 놈들을 징벌함으로써 큰 전과를 거두고 그 두목을 생포하여 목을 베였다.

 

 

그는 싸움마다에서 공을 세우고 용맹을 떨침으로써 당시 이름있는 젊은 장수로 꼽혔으며 세조는 그를 표창하여 적개공신 1등에 봉하고 병조판서로 임명하였던것이다.

그는 조종의 산 백두산에 올라 그 장엄하고 웅장한 모습을 바라보며 대장부의 기개와 나라를 지켜싸울 충정을 담아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후세에 남기였다.

 

백두산석 마도진

(백두산의 돌은 칼갈아 다 없애고)

두만강수 음마무

(두만강의 물은 말먹여 다 말리리)

남아이십 미평국

(사나이 스무살에 나라평정 못하면)

후세수칭 대장부

(후세에 그 누가 대장부라 일러 주랴)

 

남이는 1468년 예종이 즉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날 밤 대궐에서 긴 꼬리가 달린 살별을 보고 낡은것을 없애고 새것을 펼 형상이라고 말하였는데 그를 시기해오던 병조첨지 류자광이 이 말을 엿듣고 그가 반역을 꾀한다고 국왕에게 허위보고를 하였다.

이로하여 그는 모진 고문끝에 살해되였다.

남이장군은 외적을 물리치는 싸움에서 발휘한 용감성과 훌륭한 시를 남긴것으로 하여 오늘까지도 우리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져있다.

 

강성일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