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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6-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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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5(2016)년 12월 18일 [일화]

 

꾸준한 노력으로 명창이 된 계락

 

먼 옛날 평양 룡악산기슭의 그리 크지 않은 어느 마을에 진씨성을 가진 계락이라는 젊은이가 량친과 함께 살고있었다.

남다른 용모와 랑랑한 목소리를 가진 계락이를 보고 마을사람들은 키가 크고 미끈한 생김새는 신통히도 아버지를 닮았고 무던한 마음씨와 빼여 난 목소리는 꼭 어머니를 닮았다고 하였다.

어려서부터 이름난 소리군이 되여보려는 꿈을 가지고있던 계락에게 어느날 좋은 기회가 생겼다. 이웃 마을 부자집 생일잔치에 룡강에서 왔다는 한 소리군이 장고와 북을 번갈아치면서 종일 노래를 불러 온 마을의 인기를 모았는데 그것이 그의 마음을 퉁겨놓았던것이다.

소리군의 재간에 넋을 빼앗긴 계락은 그후 만사를 제쳐놓고 노래공부에 전념하였다. 그런데 룡강소리군이 하던것처럼 해보자고 하니 장고는 고사하고 북도 없었다. 워낙 집안살림이 궁한 처지에 그것을 마련할 길도 바이 없었다.

안타까와 모대기며 생각을 굴리던 계락은 그 룡강소리군을 찾아가보기로 결심하였다.

조용히 어머니에게 사연을 말하고 그를 찾아간 계락은 자기의 소원과 형편을 여쭈고 제자로 받아줄것을 청원하였다. 정기흐르는 눈과 준수한 용모, 열정적인 언행에 탄복한 소리군은 그 청을 쾌히 받아들이였다.

소리군은 계락에게 한달동안 타령한곡을 공부시킨 다음 집으로 돌아가 자체로 노래를 익히라고 하면서 장고대신 목침 크기만한 마른 나무토막 한개를 내주었다.

계락이 스승이 준 그 나무토막을 손에 물집이 일도록 두드리며 낮에 밤을 이어 노래공부에 전념하였는데 글쎄 그것이 큰 말썽을 일으킬줄이야 …

《그만두지 못하겠느냐, 가난한 집 자식이 타령은 무슨 타령이냐. 거기서 밥이 나오느냐, 떡이 나오느냐?》라고 하며 때없이 내리는 아버지의 꾸중도 꾸중이거니와 해뜨고 별지도록 그치지 않고 울리는 아직 익지 않은 생소리와 마른 나무토막 두드리는 소리에 온 동리가 소란하다는 마을사람들의 비발치듯 한 비난이 더 큰 골치거리였다.

자기를 닮았다고 여겨서인지 아들의 노래가락이 싫지 않아 그 소리공부에 은근히 기대까지 가지고 왼심을 써오던 계락의 어머니는 어느날 누구도 듣지 않는데서 마음껏 큰 목소리로 노래를 익히라고 하면서 아들을 룡악산 깊은 골로 들여보냈다.

낮이 어떻게 흐르고 밤이 어떻게 지새는지 모르고 나무토막을 두드리며 계락이 얼마나 극성스레 노래를 익히였던지 한여름이 다 지나 가을도 가고 초겨울이 닥쳐올 무렵에는 그 굳은 나무토막이 그만에야 두동강이 났다.

매일 아들의 밥을 날라오던 계락의 어머니는 그것을 대신하라고 다른 나무토막을 가져다주었다. 며칠이 지나 아들을 찾아 산에 오르는 어머니의 귀에는 계락의 노래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직심스럽게 타령을 부르며 목청을 닦던 아들의 소리가 멎은 사연인즉 어머니가 가져다 준 나무토막을 두드리면 소리가 탁하고 흥이 나지 않아 자연히 끊어진다는것이였다. 본래의 나무토막에 소리를 이끌어내는 어떤 비결이 있겠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아들을 다시 룡강소리군에게 보냈다.

계락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스승은 웃으며 《설멋은 들었군.》라고 말하고는 한달동안 새로운 타령을 배워준 다음 집에 가서 익혀오라고 하면서 처음의것과 꼭같은 나무토막 한개를 내주었다. 그러면서 그 나무토막은 보통 나무가 아니라 오동나무이다, 북보다는 못하지만 오동나무라야 울림이 좋아 흥을 돋굴수 있다고 그 리치를 알려주면서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이 오동나무로 악기를 만들어 리용하여온데 대하여 말해주었다.

계락은 다시 룡악산으로 들어가 새로 배운 타령을 익히느라고 날이 가고 해가 지는줄 몰랐다.

또 한해가 지나 스승을 찾아간 계락이 두동강 난 나무토막을 내놓자 그는 《겉멋은 들었군.》라고 말하며 크게 웃는것이였다.

이번에는 스승이 수심가 한곡을 배워주고 나무토막 한개를 또 주었다.

계락이 사계절이 지나도록 얼마나 장단을 치고 훈련하였던지 그 세번째 나무토막도 또 두동강이 났다.

계락이가 다시 찾아와 부르는 수심가소리를 듣고 난 스승은 《속멋은 들었군.》라고 하면서 이번에는 《룡강기나리》와 《강서메나리》를 배워주었다. 물론 그가 떠날 때 나무토막을 주는것을 잊지 않았다.

다음해 두동강 난 네번째 오동나무토막을 안고 나타나 부르는 계락의 노래를 들어보고 난 스승은 《진멋이 들었군.》라고 매우 만족해하면서 이제는 더 배워줄것이 없다고 하였다.

계락이 룡악산을 내린것은 그때부터도 여러해가 지난 후였다.

여러해동안 모진 악조건의 무인지경에서 도를 닦은 진계락의 노래소리는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였다. 그의 입에서 건드러진 노래소리가 흘러나올 때면 동리의 남녀로소는 물론 근간 마을사람들까지 다 모여들군 하였다.

그때마다 동네사람들은 자기 마을이 낳은 소리군을 자랑스레 여기여 《계락이요.》, 혹은 《계락 한마디 넘기겠소.》라고 소개하군 하였는데 그것이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계락》은 《가락》으로, 《계락 한마디 넘기겠소.》는 《가락 한마디 넘기겠소.》로 변하였다고 한다.

계락의 스승인 룡강소리군이 한 평가에서《설멋》, 《겉멋》, 《속멋》, 《진멋》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지난날 민요가수들의 가창기량를 평가할때 적용하던 4계단채점법을 통속적으로 표현한 어휘들이였다.

 

김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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