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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날자 : 2019-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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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10월 9일 [기사]

 

《을미사변》의 진상(2)

 

학살대놈들은 아직도 채 죽지 않은 명성황후를 이불에 둘둘 말아 곤녕전앞마당에 내던진 다음 궁녀들을 끌어다가 확인하고는 살인범죄행위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시체를 장작더미우에 올려놓고 석유를 뿌려 불살라버렸으며 그 유골마저 련못에 집어던졌다.

 

 

명성황후의 시체를 불태운 곳

 

이것이 바로 일본인자신도 《세계에서 류례없는 사변이며 천인공노할 무참한 살인사건》이라고 실토한 《명성황후살해사건》이다.

그러나 《명성황후살해사건》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 사건의 결말 역시 일제의 악랄한 본성을 온 세상에 그대로 드러내놓았다.

학살만행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자 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해하면서 범죄자들을 엄벌에 처하라고 일치하게 요구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이 사건에 직접 관여하였던 미우라를 비롯한 40여명의 살인강도들을 본국으로 빼돌려 히로시마감옥에 감금하고는 이 구실 저 구실대면서 《피고자》들에 대한 《처벌》을 미루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국제사회의 예리한 눈초리에서 벗어날수 없게 되자 교활한 일제는 살인주모자를 처형한다는 미명하에 이른바 《리주희사건》이라는것을 조작하였다. 이 사건에 따라 군부협판 리주희와 친위대 부위 윤석우, 일본공사관 로무자 박선 등이 명성황후학살사건의 주모자로 처형되였다. 놈들이 그들을 주모자로 선택한것은 이들이 학살만행을 현장에서 목격하고 학살만행의 진상을 그 누구보다도 똑똑히 알고있었기때문이였다. 놈들은 이러한 증인들마저도 없애치움으로써 저들의 범죄를 지워버리려 하였다.

《리주희사건》이 종결된 후 간교한 일제는 이것을 구실로 기소되여《 구금》되였던 미우라 이하 수십명의 살인악당들을 《증거불충분》으로 전부 무죄석방하였다.

이처럼 《명성황후살해사건》은 일제살인귀들의 잔인무도성과 야만성, 교활성을 집중적으로 보여주었으며 일제야말로 조선침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죄악을 서슴없이 감행한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준 사건이였다.

당시 명성황후는 주권국가의 당당한 황후였고 국모였다. 이런 그를 꺼리낌없이 칼로 내리치다못해 불태우기까지 한 사실은 동서고금 그 어느 나라 력사에서도 있어본적이 없는 참극이 아닐수 없는것이다.

이렇게 조선침략의 발걸음을 뗀 야수들이였으니 조선은 강점한 후 일제가 우리 인민에게 어떤 악형들을 저질렀겠는가 하는것은 더 말할 여지가 없는것이다.

하지만 일제는 오늘도 조선을 무력으로 강점하고 조선인민에게 들씌운 온갖 불행과 고통에 대해 사죄는 커녕 흑백을 전도하며 과거죄악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보려고 어리석게 날뛰고있다.

오늘의 조선인민은 힘이 없어 제 나라 황궁도 지키지 못해 황후까지 무참히 살해당하는 참극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어제날의 인민이 아니다.

과거죄행을 한사코 부정하는 사무라이족속들이 《대동아공영권》의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재침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며 조선민족에 대한 온갖 비렬한 적대행위를 감행하면 할수록 사무친 원한을 천백배로 결산하려는 조선민족의 복수의지는 더욱 무섭게 불타오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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