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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날자 : 2019-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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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9월 4일 [투고]

수  기

수저에 대한 이야기

 

비전향장기수  김 동 기

 

나는 한때 끼니를 들 때 숟가락과 저가락을 용도에 맞게 쓰지 못해 핀잔을 듣군 했다. 그때면 수십년세월 감옥생활에서 생긴 습관에 절로 허거픈 생각을 가졌었다.

어느날 밥상머리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선생님. 숟가락이 있는데 왜 저가락으로 국을 드십니까?》

우리 집에 나들이온 손님의 물음이였다.

얼핏보면 하찮은것 같았지만 일상도덕생활이나 식사례의에서 그른것에 대한 일종의 가벼운 나무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가끔 감옥생활때의 습관탓에 고기국이나 남새국이 밥상에 오르면 저가락으로 먼저 국거리를 뜨고는 국그릇을 왼손으로 받쳐든 다음 국물을 맹물 마시듯 훌훌 마시군 한다. 물론 밥도 저가락으로 들었다. 보통의 상식을 벗어난것이였다.

언제인가는 우리 집에 온 증손녀벌되는 어린 처녀애가 저가락으로 국을 드는 내 모습이 하도 이상했던지 제 어머니의 귀에 대고 무엇이라 속삭였다.

애어머니는 그저 나를 보고 가벼운 미소만 지을뿐이였다.

그때 처녀애가 밥상우에 있는 숟가락을 내 손에 쥐여주었다. 문득 나에게는 어린시절 왼손으로 숟가락을 쥐면 어머니가 각근하게 오른손에 쥐여주던 일이 새삼스럽게 떠오르고 지긋지긋했던 감옥생활도 련상됐다.

감옥에서는 새까맣게 때가 낀 참대저가락을 주었는데 그대로 쓰기에는 너무도 역겨워 콩크리트벽에 갈아서 리용하군 했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후에 수감자들이 간수들을 위협하는 도구로 리용된다고 하여 모두 회수되였다. 대신 장작개비에서 켜낸 나무저가락을 주었는데 그것이 부러지면 손가락으로 밥을 먹어야 했다. 감옥안에서는 숟가락을 주지 않았다. 사실 콩보리밥을 저가락으로 뜨는것은 헐치 않았다. 그런대로 한알한알 입에 넣었고 소금국에 떠있는 몇오리의 무우시래기를 저가락이나 손가락으로 건져먹고는 나머지 국물을 마셔야 했다. 썩 후에는 감옥에서 수지저가락을 리용했다. 시장에서 목재값이 오르자 감옥당국은 우리가 사용하는 나무저가락대신 수지저가락을 보장했다. 이렇게 우리는 수십여년동안 저가락조차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인간이하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옥중생활을 이겨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지난날 남쪽사회에서 온갖 옥중고초를 다 겪은 우리들에게 현대적인 주택으로부터 갖가지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모든것을 다 배려해주시고 행복한 삶을 향유하도록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그이께서 보내주신 집기류에는 고급수저도 있다.

위대한 장군님의 다심한 정이 깃든 수저를 들 때마다 인자하신 그이의 손길을 그려보군 한다.

수저는 별치않은 하나의 식사도구에 불과하지만 거기에는 너무도 판이한 눈물겨운 과거와 행복한 오늘의 생활이 담겨있다고 말하고싶다.

얼마전에 우리는 가족들과 함께 경치아름다운 동해안의 원산에서 한여름의 무더위를 가시며 휴양생활을 즐겼다.

휴양의 나날 우리는 비전향장기수들에게 돌려주시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원수님의 끝없는 사랑과 고결한 의리에 대해 다시금 가슴후덥게 느꼈다.

부언하건대 수저에 대한 이야기는 내 생활에서 있은 이야기들중의 한토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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