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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9-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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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8월 8일 [기사]

 

조선땅이였던 쯔시마

 

우리 나라 옛 지리책의 하나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흥미있는 기사가 하나 전해지고있다.

15세기 후반기에 편찬된 이 책에는 경상도 동래현의 산과 강, 섬을 기록한 산천조에 일본의 쯔시마가 하나의 항목으로 올라있는것이다.

우리 나라의 지리를 수록하였다는 의미에서 책이름도 《동국여지승람》(여기서 《동국》은 조선을 가리킴)인 이 책에 어떻게 되여 쯔시마가 동래현의 산촌조에 뻐젓이 올라있는것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쯔시마항목의 내용서술에서 찾아볼수 있다. 즉 《쯔시마는 일본국의 대마주이다. 옛날에 우리 나라의 계림(신라)에 속해있었는데 어느때인가 왜인이 틀고앉았다.》는것이다.

한마디로 쯔시마가 원래는 조선의 땅이라는것이다.

이것은 결코 지어낸 말이 아니다. 쯔시마가 우리 땅이였다는것은 지명이나 고고학적자료를 통해서도 알수 있다.

오늘날까지도 섬에는 가라노사끼, 가라수, 가라수지 등 《가라》라는 지명이 붙은 나루터이름이 무수히 전해지고있다. 《가라》라는 말은 일본에서 조선의 동남부에 존재한 가야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쯔시마의 여러곳에는 가야계통의 도질토기들이 널리 분포되여있다. 이러한 지명 및 고고학적자료는 쯔시마(대마도)에 고대시기부터 조선사람들이 적극 진출하여 생활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쯔시마에는 또한 가네다죠와 쯔즈끼라고 불리우는 조선식산성유적이 현재 남아있다.

더우기 《쯔시마》라는 지명도 일본말이 아니라 고대조선말에서 유래된 이름이라는것이 주목된다.

여기서 《쯔》는 수자 《2》를 의미하는 고대조선어이며 《시마》는 섬을 의미하는 고대조선어 《사마》의 변화형태이다. 쯔시마(대마도)가 두개의 섬으로 이루어져있는데로부터 불리워오던것이 그후 고유명사로 고착되게 된것이다.

조선지명과 조선계통유물의 분포 그리고 조선식산성의 존재는 명실공히 쯔시마가 조선령토의 한 부분이였다는것을 실증해주고있다. 우리 나라 력사기록에도 쯔시마가 원래 우리 나라 땅이였다는 사실이 적지 않게 실려있다.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조일외교관계를 묶은 책인 《증정교린지》에서는 《대마도는 옛날에 우리 나라의 계림에 속해있었는데 신라 실성왕 7년 무신년(408년)에 왜인들이 처음으로 이곳을 차지하여 진영을 설치하였다. 남북의 길이가 350리이고 동서의 길이가 80리인데 땅이 척박하여 물고기와 소금을 팔아서 생활한다.》고 하였고 《신증동국여지승람》도 같은 내용을 전하고있다.

《삼국사기》에서는 《408년 신라왕이 왜인들이 쯔시마에 병영을 설치하고 병기와 군량을 저축하여 우리 나라를 습격하려고 계획한다는 소식을 듣고 정예한 군사를 선발하여 그들을 소탕하려고 하였다.》고 전하고있다.

그후에도 쯔시마는 우리 나라 령역으로 간주되여왔다.

세종통치년간에 왜인들이 조선봉건왕조통치배들에게 전라도의 고초도라는 섬에 들어와살면서 고기잡이하는것을 승인해줄데 대하여 제기해온적이 있었다. 당시 우의정이였던 신개는 왜인들의 제의를 단호히 거절할것을 제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쯔시마는 원래 우리 나라 땅이였는데 고려의 마지막시기에 나라의 기강이 문란해지면서 적을 막아낼수 없게 되여 결국 왜인들이 섬을 차지하게 되였다. 만약 왜인들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그들이 반드시 고초도를 저들의 땅으로 간주하고 와서 살게 될것이며 그렇게 되면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에 우리 나라에서 무슨 근거로 우리 땅이라고 다투겠는가.》

우의정 신개는 왜인들의 고초도거주요청에 대하여 쯔시마의 실례를 들어 일단 그들이 그곳에 살게 된면 섬자체를 빼앗길수 있으니 아예 거절해버려야 한다고 주장한것이다.

이로 미루어보면 쯔시마가 왜인의 손에 완전히 장악된것은 고려말기로 보아진다. 그러나 조선봉건왕조초기에도 쯔시마를 우리 나라 령역으로 여기는 관념은 남아있었다.

1419년 조선봉건왕조통치배들은 쯔시마왜구를 소탕하기 위한 원정을 조직하였다. 쯔시마원정군은 수백척의 병선으로 쯔시마에 상륙하여 군사작전을 벌리고 돌아왔다. 바로 이 원정을 앞두고 세종대왕은 다음과 같은 지시문을 중앙과 지방에 내려보냈다.

《대마도란 섬은 본래 우리 나라의 땅이였던것을 멀리 떨어져있고 땅이 나쁘다고 하여 왜인들이 차지하는것을 내버려둔것이다. 그자들은 개나 쥐새끼처럼 도적질할 궁리만 품고 경인년부터 변경에 들어와서 함부로 날뛰여 군사와 백성을 죽이고 집들을 불질렀다. 대체로 그자들로 말하면 좋을 때면 사람같다가도 성이 날 때에는 짐승같아서 간악하고 교활한 속심은 귀신과 사람이 다 함께 격분하는바이다. 왜적이 탐욕럽고 악독한것을 제멋대로 하여 숱한 백성들을 살해함으로써 스스로 하늘의 처단을 재촉하고있는 판에 그런자들을 용서하고 토벌하지 않는다면 어찌 나라에 사람이 있다고 하겠는가.》

쯔시마원정이 승리적으로 결속된 후 왕은 쯔시마 도주에게 보낸 글에서 쯔시마는 경상도 계림에 소속되였던것으로서 본래 우리 나라의 땅이라는것이 문헌에 뚜렷이 기록되여있다고 강조하고 단지 그 땅이 《몹시 작은데다가 바다가운데 있기때문에 교통이 막혀 백성들이 살지 않았다. 그래서 저희 나라에서 쫓겨가서 갈데 없는 왜인들이 우르르 모여들어 소굴로 삼아버렸다.》고 하면서 섬전체의 항복을 권고하였다.

그후 1420년 쯔시마도주는 쯔시마를 조선경내에 편입시키며 주이름과 도장을 수여해준다면 신하로서의 도리를 지키겠다고 다짐하였다.

이에 따라 쯔시마는 조선에 신속된 경상도관하의 한개 주로 공식화되였다. 그러나 그후 조선봉건왕조는 쯔시마를 완전히 굴복시키고 섬을 장악하지 못하였으며 쯔시마왜인을 가엾게 여겨 연해어장을 제공하고 왜인들의 3포(부산포, 제포, 영포)거류를 승인해주었다.

하지만 쯔시마왜인들은 조선봉건왕조의 이러한 선의와 아량에 보답은 고사하고 배신행위만 일삼았다.

그들은 16세기만 하여도 삼포왜란, 사량왜변, 을묘왜변을 일으켜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살해하고 임진왜란때에는 조선침략의 길잡이가 되였다.

중세기 독도침입에 앞장섰던자들도 바로 이 쯔시마의 왜놈들이였다.

오늘도 일본은 독도가 제땅이라고 생억지를 부리며 령토강탈의 개꿈을 꾸고있다.

력사적사실은 선의를 악으로 갚고 배신을 일삼는것이 일본의 본색이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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