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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8-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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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7(2018)년 11월 28일 [련재]

 

4. 변함없는 모습

 

눈물속에 깨달은것은

 

무릇 옷차림에는 그의 성격과 미감, 인품이 반영되게 된다.

나는 조선기록영화의 화면에 펼쳐지는 해방후 김일성주석님의 옷차림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에 잠기군 한다.

(우리 주석님의 옷차림에서는 수수함과 고상함, 그로 인한 위대함과 친근감이 차고넘친다.)

평범한 인민의 가정에서 탄생하시여 한평생 인민들과 한치의 간격도 없이 생활하신 주석님이시였다.

그래서 그 무슨 위엄과 권위의식 같은것은 조금도 느낄수 없는 한없이 검박하고 소탈한분이시였지만 바로 그것으로 하여 조선인민들은 그분을 더더욱 우러르며 하늘의 태양처럼 받들어 모시지 않았던가.

한 재단사로인의 회상담을 실은 글은 나의 이런 생각에 참으로 소중한것을 더해주었다.

…1948년 4월 2일, 김정숙녀사께서는 한 양복점의 재단사에게 몇시까지 댁에 좀 와달라고 청하시였다.

평소에는 자제분들이나 친척들의 옷도 자신의 손으로 짓든가 아니면 양복점에 직접 가지고 가서 맡기군 하던 녀사이시였는데 이날만은 유별하였다.

재단사는 주석님의 댁에 가서야 그 사연을 알수 있었다.

그때 댁에는 조국인민들이 주석님께 삼가 올린 옷감이 있었다.

주석님께서 입고계시던 양복이 색도 바래고 보풀도 일고있어 무슨 마련을 보아야 하겠다고 언제부터 생각하고계시던 녀사이시였지만 그분께서 하도 만류하시기에 지금껏 속만 태워오시였는데 인민들의 지성어린 옷감까지 받고보니 더는 미룰수 없으시였다.

그리하여 녀사께서는 주석님께 자신의 마음을 절절히 말씀올리시였다.

하지만 주석님께서는 또다시 만류하시였다. 아직 나라살림살이가 넉넉치 못하여 인민들과 아이들에게 좋은 옷을 해입히지 못하고있는데 나라고 어찌 새옷을 해입을수 있겠는가고 하시며.

녀사께서는 저려오는 마음을 다잡으며 이렇게 간청하시였다.

《장군님, 이 옷감은 우리 인민들이 장군님께 올려달라고 정성껏 마련하여 보내온것입니다. 이제 남조선사람들이랑 외국손님들이 장군님을 뵈오러 많이 찾아오겠는데 나라의 얼굴을 봐서도 그렇고 또 우리 인민들의 성의와 요구를 생각해서라도 봄계절에 맞는 옷을 꼭 해입으셔야 합니다.》

주석님께서는 더 말씀을 못하시였다. 자신의 옷차림이 나라의 얼굴이라는 그 론거에는 반박할 답이 떠오르지 않으시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날 주석님의 몸치수를 재기 위해 재단사가 댁에 오는 전례없던 일이 벌어지게 되였던것이다.

자기가 주석님의 옷을 지어드리게 되였다는것을 알게 된 재단사는 그 뜻밖의 영광에 몸둘바를 몰라했다. 이런 행운의 날을 보자고 지금껏 아글타글 양재기술을 습득해온것이 아닌가싶기도 했다.

잠시후 몸치수를 재신 주석님께서 집무를 보시러 나가시자 녀사께서는 옷감(회색줄직모직천)을 내놓으시며 이 천으로 장군님께 홑섶양복을 지어드렸으면 좋겠다는 의향을 터놓으시였다.

재단사는 천을 만져보며 수수하고 괜찮다고 자기 생각을 말씀드렸다.

그런데 기뻐하실줄 알았던 녀사께서 불시에 얼굴빛을 흐리며 창가로 다가가시는것이 아닌가.

재단사는 자기가 무슨 실언을 했는가싶어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잠시후 녀사께서는 창밖 어딘가에 눈길을 그냥 주신채 말씀하시였다.

《사실 우리 장군님께서는 산에서 싸우실 때부터 좋은 옷 한벌 변변히 입어보시지 못하시였습니다. 늘 대원들과 꼭같은 옷을 입으시고 검소하게 생활해오시였습니다. 단벌밖에 없는 군복마저도 줄창 눈비에 젖어 미처 말리울새도 없었고 화약내가 밴 옷을 제때에 빨아드리지도 못하였습니다. 그걸 생각하면 참 가슴이 아픕니다.》

녀사의 음성은 격정에 젖어 가끔 끊어졌다 이어지군 하였다.

전투가 계속되고 모든것이 부족한 속에서도 주석님께만은 최대의 정성을 기울여오신 녀사이시였지만 마음속엔 아픔과 한스러움뿐이였다.

이윽고 재단사에게 돌아서신 녀사께서는 장군님께서 새옷을 짓는것을 극력 만류하시지만 자신은 그렇게 할수가 없다고 하시며 이렇게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우리가 산에서 싸울 때에는 별수가 없어서 그랬지만 조국이 광복된 오늘에야 장군님께 왜 옷 한벌 제대로 해드리지 못하겠나요. …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옷을 지어 우리 장군님께 드리고싶습니다.》

녀사께서는 재단사를 바래우며 다시금 당부하시였다.

《나는 재단사동무가 내 마음을 잘 알고 장군님께 드릴 이 옷을 잘 지어주기 바랍니다.》

재단사는 가슴이 뭉클 젖어왔다. 지금껏 수많은 옷을 지어왔지만 이런 절절한 청은 여적 받아본적이 없었기때문이였다.

녀사의 그 말씀까지 받고나니 종전까지 가슴에 차있던 긍지감이 어느새 걱정으로 뒤바뀌여졌다. 양재부문에서는 제노라 하는 그였지만 과연 그 뜨거운 마음을 다 담아낼수 있겠는지 자신이 없었던것이였다.

며칠후 주석님께서는 인민들의 지성과 녀사의 극진한 마음이 어린 새 양복을 입으시게 되였다. …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녀사께서도 좋은 천으로 옷 한벌 해입으시라고 청을 올렸다.

사실 녀사의 옷차림이야말로 더 이를데없이 수수하였다. 댁에 처음 찾아왔던 사람들은 무명치마저고리와 고무신을 신으신 녀사의 차림새를 보고 식모라고 단정할 때가 많았다.

녀사께서 좀처럼 자기들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으시자 어떤 녀투사는 좋은 외투감을, 또 누구는 비단옷감을 끊어왔고 곤색양복과 조선옷도 한벌 마련해드렸건만 그것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돌려지군 했다.

새옷이나 새 천을 드리면 절대로 자신의것으로 받으신 법이 없으셨기에 주석님의 가까운 동지인 김책동지의 부인은 양단저고리를 가져다 올리였는데 그것이 녀사에게 있어서 처음이자 마지막의 비단옷이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녀사께서 여러 상점들을 돌아보시다가 연분홍빛의 은은한 비단천을 몇자 끊어오시였다.

주석님의 댁에서 함께 생활하던 친척녀성은 이제야 녀사께서 자기들의 청을 들어주시려는가보다 하고 생각하며 몹시 기뻐하였다. 비단치마저고리를 입으신 녀사의 모습을 상상만 해보아도 마음이 즐거웠다.

하지만 녀사와 함께 몇해째나 한가마밥을 먹으며 살아오는 그도 녀사의 마음을 너무도 몰랐으니 그 비단천은 주석님께서 리용하실 이불을 만드시기 위해서였다.

녀사께서는 친히 비단실에 물을 들이시고 자신의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시여 비단천우에 수를 놓으시였다.

주석님의 건강과 안녕을 념원한 함박꽃들, 오직 주석님만을 믿고 따르려는 인민들의 한결같은 마음이 담긴 해바라기 그리고 주석님께 충정을 다하시려는 자신의 고결한 마음이 어린 등꽃과 백일홍, 해방된 조국땅에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인민들의 모습을 담은 꼬리치는 금붕어들…

참으로 주석님에 대한 녀사의 불같이 뜨거운 변함없는 충정이 곱게 수놓아진 꽃이불이였다.

한달 반동안에 완성된 이불에 미흡한 점이 있을세라 보고 또 보시고서야 녀사께서는 주석님의 침대에 정히 펴놓으시였다.

그날 늦은저녁 댁에 들어오신 주석님께서는 새 비단이불을 보시고 사연을 묻듯 녀사를 바라보시였다.

《…산에서 싸울 때 눈보라와 비바람속에서 장군님을 따뜻이 모셔드리지 못해 가슴아팠었는데 나라를 찾은 오늘 그 소원을 풀어보자고 곱지는 못하지만 제손으로 수를 놓아 하나 만들었습니다.》

이불을 한동안 바라보시던 주석님께서는 조용히 젖은 음성으로 교시하시였다.

《그 마음이 정말 고맙소. 동무는 나에게 언제나 충실하였지 그렇지 않은 때가 있었소.》

그날 새 비단이불을 보고 또 보시며 주석님께서는 빨찌산시절을 더듬으시는듯 깊은 생각에 잠겨계셨다고 한다.

간고한 항일혈전의 나날 녀사께서 그 산중에서 명주솜까지 구해가지고 솜외투를 만들어 자신께 입혀보시며 꼭 맞는다고 기뻐하시던 모습, 작식일을 하는 그 바쁜 틈에도 어디서 털실을 구해다가 해마다 떠주시던 털양말이며 배띠, 자신의 머리카락을 솎아 신발깔개를 만들어주신 일 등 가슴뜨거운 추억들이 주석님의 뇌리에 떠오른것이 아니겠는가.

사연깊은 그 비단이불을 주석님께서는 전쟁시기에도 전후에도 소중히 여기며 오래도록 사용하시였다고 한다.

참으로 녀사에 대한 추억은 어느것이나 다 자신에 대한 생각은 뒤에 밀어놓고 주석님의 안녕과 건강만을 바라오신 끝모르는 충정의 자욱들이였다.

주석님의 옷을 지어드린 이야기는 그 다음해에도 있었다.

그에 대하여 재단사의 회상록에는 이렇게 씌여져있었다.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이 가슴이 쓰려온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어차피 해야 할것이다.

한해가 지나 나는 다시 위대한 수령님의 댁으로 가게 되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그에게 또 수고를 해줘야겠다고 하시면서 장군님께서 이제 며칠후에 중요한 회의에 참석하시게 된다고, 그래서 가을계절에 맞는 양복을 해드리자고 한다고 사유를 설명하시였다.

그가 주석님의 몸치수를 다시 재고나니 녀사께서는 양복감(진회색의 모직천)을 꺼내놓으시였다.

《이 천이 좋을것 같은데 재단사동무가 있는 성의와 재간을 다해서 잘 지어주세요.》

녀사께서는 특히 모서리의 바느질이랑 깐깐하게 잘해달라고 거듭 당부하시였다.

재단사는 잘 알았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도 녀사께서는 여전히 옷감을 손에서 못 놓으시고 자꾸 쓸어보시다가 다시 말씀하시였다.

《단추랑은 제가 직접 달아드리겠어요.》

그러시고는 재단사를 문밖까지 바래주시며 부탁한다고, 2~3일안으로 지어달라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그날이 바로 1949년 9월 20일이였다.

이틀후 옷을 성의껏 지어가지고 댁으로 떠나려던 재단사는 마른하늘의 벼락같은 비보에 접하게 되였다.

녀사께서 세상을 떠나시다니, 이 무슨 일인가.

재단사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 비보를 전해준 사람의 어깨를 잡아흔들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보고는 맥없이 손을 떨구었다.

가슴이 꺽 막히고 앞이 캄캄해졌다.

(그렇게도 인자하고 정성이 지극하신분이 그렇게 빨리 가시다니.)

샘줄기가 터진것처럼 손등으로 아무리 문대여도 그냥 쏟아지던 눈물이 옷보자기에 떨어지는것을 본 그 순간에 재단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녀사께서 자신께서 직접 달겠다고 하셨기에 꽁꽁 싸서 옷 주머니에 넣어둔 단추생각이 불쑥 나서였다.

(그러니 인제는 이 단추를 누가 달아드린단 말인가. 단추가 없는 옷을 장군님께 어이 올린단 말인가.)

그는 바늘과 실을 꺼내쥐였다. 앞이 보이지 않아 실이 바늘에 좀처럼 꿰여지지 않았다.

(이것아, 실을 꿰줘야 단추를 달게 아니냐.)

애꿎게 바늘과 실을 탓하면서 보이지 않는 바늘구멍에 어림짐작으로 실을 가져다대기를 그 얼마였던가.

겨우 실을 꿰고나니 그 다음이 더 힘들었다.

단추구멍과 맞추어보며 바늘쥔 손을 움직이려니 눈앞의 자기 손이 녀사의 손으로 환각되여 안겨왔기때문이였다.

몇번이나 바늘에 손끝을 찔리우던 그는 끝내 《녀사님!》하고 바닥을 치며 통곡을 터뜨렸다.

(단추 한알에도 그렇게 정성을 고이고싶어하시던 녀사님. 저의 손이 녀사님의 그 손을, 그 정성을 어찌 대신할수 있겠습니까.)

그는 일찌기 양재기술을 배워 숱한 옷을 지어온 솜씨있는 재단사였다. 하지만 단추 몇알을 다는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일인줄 난생처음 알았다고 한다.

어쩔수없이 녀사의 손을 대신해야 했던 그의 손, 하지만 녀사의 정성만은 정녕 대신할수 없었던 그 손이였다.

돌아가시기 며칠전날 녀사께서는 김책동지의 부인에게 자신의 안타까움을 이렇게 터놓으시였다고 한다.

《…앞이 자꾸 캄캄해지는게 어찐지 자주 아찔아찔해져요.》

그렇게 편치않은 몸상태였지만 옷을 만드는 재단사가 의례히 달아주게 되여있는 단추에조차 자신의 마음을 담고싶어하신 녀사.

재단사는 단추를 다 달아놓고도 그 옷보자기만 들면 다리가 후들거려 끝내 옷을 갖다드릴 용기를 내지 못했다.

며칠후 주석님의 부관이 와서 옷을 찾아갔다.

주석님께서는 그날 끝내 그 양복을 입어보지 못하시고 그냥 바라만 보셨다고 한다. …

단추 한알.

천평저울로나 그 무게를 가늠해볼수 있을 그 작은것에 어찌보면 옹근 산봉우리 하나를 올려놓은듯 그렇게도 무겁게 느껴지는 녀사의 뜨거운 정성.

바로 그 정성으로 녀사께서는 주석님께서 입으실 옷의 목달개도 목에 뻣뻣한감을 줄세라 다듬이질을 하시였고 발싸개천도 아닌 양말을 매번 빨아서는 꼭꼭 다림질을 하시였으며 짧은 점심참에도 주석님의 신발을 부뚜막에서 덥혀드리군 하시였다.

주석님의 옷에 대한 이런 가슴뜨거운 사연들을 알게 되면서 내가 눈물속에 깨달은것은 무엇인가.

김일성주석님의 옷차림에도 그끝을 가늠할수 없는 녀사의 지성이 비껴있었다!》

정녕 김일성주석님을 위해 바치신 김정숙녀사의 충정의 세계는 그 어디에 비길수 없는것이며 그 열도와 세기는 가늠할수도, 잴수도 없는 무한대한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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