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19-04-21

주체108(2019) 년 4월 21일 《기사》

 

일제의 독가스범죄를 폭로하는 오꾸노섬

 

일본 히로시마현 다께하라시의 앞바다에 있는 오꾸노섬에 구일본륙군의 독가스제조소가 존재했으며 전시에 독가스가 생산되였다는 사실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섬에서 독가스제조설비가 가동되기 시작한것은 1929년 5월부터였다.

이보다 앞서 침략전쟁을 위해 일제는 제1차 세계대전때부터 독가스무기연구에 달라붙었으며 1925년에는 도이췰란드에서 전문가를 초청하여 그 개발을 추진함으로써 치사성독가스를 합성해냈다.

독가스의 대량생산을 위한 공장부지를 찾고있던 일제침략자들은 오꾸노섬에 눈독을 들였다. 당시 섬에서 살고있던 주민들을 강제이주시킨 일제침략자들은 군사비밀을 보장하기 위해 지도상에서 섬을 지워버리기까지 했다.

독가스제조소 개소식에 참가하기 위해 히로시마현 지사와 군관계자들을 비롯한 많은 인물들이 섬을 찾았다고 한다. 공장에는 프랑스산 독가스제조설비가 설치되였다. 조업당시 공장의 생산환경은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위험한 화학물질을 다루는 작업과정에 여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후 제조법이 완성되자 1940년대부터 독가스가 제조되였고 제조된 독가스들은 일제의 침략전쟁터들에 보내여져 사용되였다.

한편 1944년 침략전쟁에서 수세에 몰리게 된 일제침략자들은 10대의 나어린 소년들까지 《학생동원》이라는 미명하에 섬에 끌어다놓고 철저한 감시하에 풍선폭탄과 발연통을 만들도록 하면서 최후발악을 다했다.

독가스제조는 일제의 패망직전까지 계속되였다. 공장에서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6 000여t의 독가스와 풍선폭탄, 발연통들이 제조되였다.여기에 종사한 로동자, 학생들의 수는 6 000여명에 달했다. 섬안에 저장되여있던 독가스와 가스탄 등은 일제의 패망과 함께 바다에 버려지거나 섬안의 방공호에 매몰되였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독가스무기들이 일제의 침략전쟁터들에 보내여져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는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섬에서 독가스제조에 종사하였던 사람들도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1952년에 심한 기침으로 병마에 시달리다가 죽은 공장로동자에 대한 부검결과 그가 페암에 걸려있었다는것이 판명되였다.

이것은 사회적물의를 일으켰으며 피해를 철저히 보상할데 대한 투쟁도 벌어졌다.

독가스장애자라고 인정을 받은 사람들의 수는 2015년 시점에서 일본에서만도 2 150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교활한 일본반동들은 독가스사용사실을 부정해나서고있다.

그러나 오늘도 오꾸노섬은 력사의 증견자로 남아 일제의 범죄적만행을 만천하에 낱낱이 고발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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