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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9-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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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7월 10일 [기사]

 

봉화혁명사적지

 

봉화혁명사적지는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 주체5(1916)년 3월 중순부터 다음해 11월까지 계시면서 조선국민회를 뭇기 위한 준비사업과 조선국민회조직을 국내외로 확대강화하기 위한 활동을 벌리신 유서깊은 곳이다.

또한 여기에는 우리 나라 녀성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강반석녀사의 혁명업적과 어린 시절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부모님의 참된 교양을 받으시며 혁명의 뜻을 키워가신 혁명사적도 깃들어있다.

봉화혁명사적지는 평양시 강동군 봉화리의 봉화산기슭에 있다. 봉화산은 옛날 외적의 침입을 알리기 위하여 봉화를 올리던 곳이라는데로부터 유래된 이름이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반일민족해방운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벌리시기 위하여 혁명활동의 중심지를 주체5(1916)년 3월에 만경대에서 봉화리로 옮기시였다.

당시 강동은 혁명활동을 벌리는데 여러모로 유리한 곳이였다. 지리적으로 강동은 반일독립운동이 활발히 벌어지고있던 성천, 순천, 대동일대와 련계를 강화하며 지도를 접근시키는데 편리하고 평양과의 거리가 가까우면서도 산을 끼고있어 일제의 눈을 피하여 활동하는데도 매우 유리한 곳이였다. 특히 이곳은 반일의병투쟁의 영향으로 인민들의 반일기세가 매우 높았다. 이러한 조건을 고려하시여 이곳으로 자리를 옮기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명신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시고 반일민족해방운동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정력적으로 활동하시였다.

선생님께서는 반일지하혁명조직을 뭇기 위한 구상을 본격적으로 실현해 나가시여 마침내 주체6(1917)년 3월 23일 평양에서 반일지하혁명조직인 조선국민회를 결성하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봉화리에 계시는 기간 조선국민회조직을 확대강화하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벌리시였으며 합법적대중단체인 학교계, 비석계, 향토계를 비롯한 계조직을 무으시고 광범한 군중을 묶어세워 반일투쟁의 군중적지반을 튼튼히 축성하여 나가시였다.

그리하여 봉화리는 김형직선생님께서 조국해방의 새벽길을 헤쳐가신 력사의 땅으로, 조선국민회의 지휘처로,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근거지로 력사에 길이 빛날 유서깊은 곳으로 되였다.

봉화혁명사적지에는 김형직선생님의 동상이 모셔져있고 혁명박물관과 혁명사적비들이 세워져있으며 혁명사적이 깃든 명신학교, 군사놀이터, 김형직선생님께서 계시던 살림집들 그리고 아침운동터, 바위터, 배나무, 박우물, 들메나무, 샘물터, 맥전나루터 등이 있다.

 

명신학교

 

박우물

 

맥전나루터

비석계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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