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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9-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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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3월 19일 [회고록]

 

위대한 주석님의 회고록 갈피에서

 

-김형직선생님의 생의 좌우명《지원》-

 

 

《지원》은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 김형직선생님의 일생의 좌우명이였다.

집에는 물론, 교편을 보시던 순화학교와 명신학교 등 이르는곳마다에 《지원》이라는 두 글자를 붓글씨로 큼직하게 써붙이시였다.

당시는 서예를 숭상하던 때여서 명사나 명필들의 글을 받아 족자나 현액, 병풍을 만드는것을 하나의 멋으로 알던 시기였고 선생님께서도 붓글씨를 괜찮게 쓰셨지만 그 글씨에 어떤 표구도 하지 않고 그저 눈에 잘 띄우는곳에 붙여두시였다.

선생님께서는 어리신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는것을 가르치면서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려면 큰뜻을 가져야 한다고 교양하시였다.

《지원》이란 문자그대로 뜻을 원대하게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아버지가 자기 아들에게 뜻을 원대하게 가지라고 가르친다고 해서 별로 특이할것은 없다. 무슨 일을 하든지 높은 리상과 포부를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지 않는다면 성공할수 없다.

그러나 《지원》의 사상은 개인의 영달이나 립신양명을 념두에 둔 세속적인 인생교훈이 아니라 조국과 민족을 위한 투쟁의 길에서 참된 보람과 행복을 찾는 혁명적인생관이며 대를 이어가며 싸워서라도 기어이 나라의 독립을 이룩해야 한다는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이다.

선생님께서는 주석님께 왜 큰뜻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 인민의 반일투쟁사와도 같은것이였다.

… 우리 조선은 원래 국력이 막강한 나라였다. 무예가 발달하여 싸움에서 패한적이 별로 없고 일찍부터 문화가 개화하여 그 빛이 바다건너 일본땅에까지 비쳐갔다. 그런데 그렇게도 강성하던 나라가 리조 500년의 썩은 정치로 일조에 망국의 비운을 들쓰게 되였다.

네가 아직 세상에 태여나지 않았을 때 왜놈들이 총칼로 우리 나라를 먹어버리였다. 왜적들에게 국권을 팔아먹은 역신들을 《을사오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역신들도 조선의 얼만은 팔아넘길수 없었다.

의병들이 창을 들고 《왜멸복국》을 부르짖었다. 독립군은 화승대로 이 땅에 침노한 원쑤들을 쓸어눕히였다. 때로는 인민봉기의 만세함성과 돌팔매질로 이르는곳마다에서 왜적을 치고 사람마다 울부짖어 인류의 량심과 세계의 정의에 호소하였다.

최익현은 대마도로 잡혀갔어도 원쑤들의 음식을 먹지 않고 단식으로 순국하였다. 리준은 제국주의렬강대표들의 면전에서 스스로 배를 갈라 우리 민족의 진정한 독립정신을 보여주었고 안중근은 할빈역두에서 이등박문을 격살하고 독립만세를 웨쳐 조선사람의 기개를 과시하였다.

환갑이 넘은 강우규로인까지도 사이또총독의 면전에 폭탄을 던지였다. 리재명은 망국의 한을 풀려고 단도로 리완용을 찔렀다.

민영환, 리범진, 홍범식과 같은 애국충신들은 자결로써 국권수호를 호소하였다.

한때는 우리 민족이 국채보상운동이라는 눈물겨운 운동까지 벌리였다. 국채란 로일전쟁후 일본에서 꾸어다 쓰고 갚지 못한 1,300만원의 빚을 말한다. 이 빚을 갚으려고 온 나라 남자들이 담배를 끊었다. 고종황제까지도 단연으로써 이 운동에 합세하였다. 녀자들은 반찬값을 아끼고 패물을 내놓았다. 혼수감을 바치는 처녀들도 있었다. 부자집의 상노와 침모, 떡장사, 나물장사, 짚신장사까지도 나라의 빚을 갚느라고 땀에 절은 푼전들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독립을 보존하지 못하였다.

문제는 나라를 찾겠다는 한마음한뜻으로 온 나라 인민을 불러일으켜 원쑤를 쳐물리칠만큼 힘을 키우는것이다. 마음만 굳게 먹으면 힘을 기를수 있고 힘만 기르면 능히 강적을 물리칠수 있다.

온 나라 백성들을 깨우치고 불러일으켜야만 국권을 회복할수 있는데 이 일은 하루이틀에 성취할수 없다. 그래서 뜻을 멀리 가져야 한다는것이다.…

선생님의 가르치심은 애국주의사상으로 일관되여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언제인가 아버님이신 김보현선생님과 어머님이신 리보익녀사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라를 독립시키지 못할바에야 살아서 무엇하겠습니까. 내몸이 찢기여 가루가 될지언정 일본놈들과 싸워이겨야 하겠습니다. 내가 싸우다 쓰러지면 아들이 하고 아들이 싸우다 못하면 손자가 싸워서라도 우리는 반드시 나라의 독립을 성취하여야 합니다.》

이 말씀은 선생님께서 품고계시던 《지원》의 사상과 신념, 조국광복에 대한 사상과 지향이였다.

후날 삼사년이면 끝장을 볼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항일무장투쟁이 장기전으로 넘어갈 때 주석님께서는 아버님의 말씀을 다시 상기하시며 의지를 가다듬으시였고 해방후에는 북과 남으로 갈라져 상반되는 길을 걷고있는 민족분렬의 장구한 비극을 체험하면서 그 말씀에 담겨있는 깊은 뜻에 새삼스럽게 숙연한 생각을 금치 못하였다고 회고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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