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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9-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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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3월 18일 [기사]

 

만민을 품어안는 위대한 포옹력을 지니시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천품으로 지니시고 한평생 뜨겁고 열렬한 인간사랑의 력사를 펼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대외활동력사의 갈피에는 인도네시아의 한 외교일군의 가정에 돌려주신 사랑과 은정에 대한 감동깊은 이야기가 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수령님은 그 어느 위인과도 대비할수 없는 위대한 령도자, 위대한 혁명가, 위대한 인간이시였습니다.》

주체54(1965)년 4월 인도네시아땅은 환희로 들끓었다.

세계인민들이 전설적영웅으로 높이 칭송하여마지 않는 우리 인민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인도네시아에 대한 력사적인 방문을 진행하고계시였던것이다.

수도 쟈까르따와 반둥을 비롯한 이르는 곳마다에서 김일성 만세, 조선 만세》의 환호성이 터져올랐고 영생불멸의 혁명송가《김일성장군의 노래》가 하늘가로 높이 울려퍼졌다.

뛰여난 령도력과 한없이 소탈하신 품성으로 천만사람의 심장을 틀어잡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위인적풍모에 매혹된 인도네시아사람들은 낮과 밤을 이어 우리 수령님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위대한 수령님의 대외활동모습을 몸가까이에서 직접 뵙는 행운을 지닌 인도네시아사람들속에는 당시 우리 나라 주재 인도네시아공화국 림시대리대사로 사업하고있던 수프리 유수프도 있었다.

외교관례에 따라 자기 나라 대통령의 한 수행원으로 위대한 수령님을 영접하는 사업에 참가하게 된 유수프의 기쁨은 한량없었다.

이 나날 그는 영광스럽게도 위대한 수령님과 뜻깊은 인연을 맺게 되였다.

평양으로 돌아온 그는 얼마후 귀여운 딸을 보게 되였다.

세계가 우러러보는 조선에서 첫 자식을 본 유수프의 가슴속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기 딸의 이름을 친히 지어주셨으면 하는 소원이 깊이 자리잡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간절한 소망을 헤아리시고 친히 그의 딸의 이름을 《친선녀 모란》이라고 지어주시였다.

그리고 딸의 이름을 적은 친서를 그에게 보내주시였다.

위인의 자애로운 사랑이 흘러넘치는 친서를 받아안은 유수프는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였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딸은 어여쁜 처녀로 성장하였다.

흔히 사람들은 흐르는 시간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지난날의 일들을 지워버린다고 하지만 달이 가고 해가 바뀌여도 지워지지 않는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우리 수령님의 열렬한 사랑이였다.

세월이 흐를수록 모란의 가슴속에는 자기의 이름을 몸소 지어주시고 크나큰 사랑을 부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과 고마움이 가득찼다.

주체72(1983)년 2월 모란은 위대한 수령님께 뜨거운 감사의 인사, 건강과 안녕을 축원하는 편지를 삼가 올리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혁명과 건설을 령도하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한 인도네시아처녀가 삼가 올린 편지와 사진을 친히 보아주시고 못내 기뻐하시면서 그와 그의 아버지에 대해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몸소 펜을 드시고 모란에게 사랑의 회답친서를 보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모란과 그의 가족에게 은정깊은 사랑과 배려를 돌려주시였다.

그해 9월 위대한 수령님께서 취해주신 조치에 따라 모란과 그의 어머니는 그처럼 와보고싶던 조선을 방문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35돐을 경축하기 위하여 우리 나라를 방문한 외국의 수많은 나라 대표단들을 만나주시는 속에서도 모란의 가족일행이 도착하였다는것을 아시고 귀중한 시간을 내시여 그들을 만나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그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뜻깊은 교시를 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친선녀 모란의 아버지는 우리 나라 주재 인도네시아공화국 림시대리대사로 있을 때 나에게 딸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하였다고, 그래서 《친선녀 모란》이라고 지어주었다고, 친선녀는 두 나라사이의 친선을 의미하며 모란은 모란꽃과 같이 곱다는것을 의미한다고, 평양에는 모란봉이라는 산이 있는데 산봉우리들이 서로 잇달려 둥글둥글하게 솟아있어 마치도 금시 피여오르는 모란꽃을 방불케 한다 하여 모란봉이라고 부른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어 그들 모녀와 함께 뜻깊은 기념사진도 찍으시였으며 사랑의 선물도 안겨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다음번에는 친선녀 모란의 아버지도 함께 우리 나라에 와서 가정적분위기속에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자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뵈온 그날 모란은 《오늘은 저의 일생에서 가장 기쁜 날입니다. 앞으로 100년을 산다 해도 오늘과 같이 기쁜 날이 절대로 있을수 없습니다. 위대한 수령이신 자애로운 김일성주석님은 저의 영원한 친아버지이십니다.》라고 격정을 터뜨리면서 오늘의 영광을 순간도 잊지 않고 김일성주석님만을 믿고 따르겠다고 맹세다지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그후 모란이 결혼식을 한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무척 반가와하시면서 그에게 결혼선물을 보내주시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모란의 결혼식에 참가한 사람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친어버이사랑이 어려있는 선물들을 격정에 찬 눈길로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이것이 어찌 인도네시아녀성인 모란에게만 베풀어진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은정이라고만 하랴!

위대한 수령님의 한평생은 인간에 대한 열화같은 사랑과 숭고한 인덕으로 수놓아진 절세의 위인의 한평생이였다.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은정속에서 전 라틴아메리카기자련맹 서기장 체까, 몽골의 평범한 녀성 체르마, 꾸바녀성법률가 깐델라리아를 비롯한 수많은 외국의 벗들이 이 세상 가장 큰 행복을 받아안는 행운을 지니였다.

정녕 위대한 수령님이시야말로 만사람을 한품에 품어안는 친화력과 포옹력을 지니신 인류의 대성인, 불세출의 위인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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