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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9-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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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3월 12일 [기사]

 

복받은 비단섬

 

3월은 비단섬사람들에게 있어서 제일 바쁜 계절이다.

머지않아 갈밭에 첫 관수가 시작된다.

수로가시기에 떨쳐나선 사람들도, 양수기시운전을 위해 밤을 새우는 로동자들도 모두가 한모습이다.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한목소리가 들려온다.

모든것을 갈증산을 위하여!

비단섬에 전례없는 열풍이 몰아치고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한 투쟁은 우리 인민의 세기적념원을 실현하기 위한 보람찬 투쟁이며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유훈을 관철하기 위한 성스러운 애국투쟁입니다.》

지난해 겨울 갈수확계절을 맞은 신도군 갈종합농장 포전들엔 류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어뜩새벽부터 갈수확기를 단 뜨락또르들이 포전을 흔들어깨우며 줄기차게 갈을 베여나갔다.

뜨락또르들을 따라 전지불들이 전진했다.

포전은 삽시에 전지불바다로 변했다.

뜨락또르운전수들에게 뒤질세라 포전으로 달려나온 로동자들이 전지를 머리에 매달고 갈단을 묶어나가고있었던것이다.

뜻깊은 2월까지 갈수확을 끝내자고 온 신도군이 떨쳐나섰다.

갈단도 날려보낸다는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한겨울이건만 가두녀성들조차 포전을 떠날념을 안했다.

일을 하고 또 해도 성차하지 않았다.

땀으로 온몸을 화락 적시며 누구나 웨쳤다.

《한단 더!》, 《하루라도 더 빨리!》

교대를 잊은 운전수들은 뜨락또르에서 밥을 한술 뜨고는 그대로 뜨락또르를 몰아나갔다.

사정없이 몰려드는 졸음을 물리치기 위해 그들은 하루에도 몇번이나 얼음버캐가 서걱서걱한 물을 얼굴에 끼얹군 하였다.

갈수확기며 련결차, 연유와 륜전기재들의 바퀴, 부속품들에 이르기까지 갈분장마다에 속속들이 가닿게 해준 당의 사랑은 포전마다에서 각종 륜전기재들의 동음이 더 높이 울려퍼지게 하였다.

갈더미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갈수확속도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하지만 진짜로 달라진것은 그 갈을 수확하는 사람들이였다.

땅은 그 땅이지만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였다.

늘 남먼저 뜨락또르에 발동을 걸고 제일 마지막으로 일터에서 돌아오는 혁신자들속에는 남다른 사연을 간직한 갈1분장 기계화작업반의 뜨락또르운전수들도 있었다.

지난해 6월 그들은 조국의 서북단 신도군에 찾아오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를 일터에서 만나뵈웠다.

너무도 뜻밖에, 너무도 조용히 일터로 들어서시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를 작업하던 그 모습으로 만나뵈온 그들은 눈뜨고도 꼭 꿈을 꾸는것만 같아서 런닝차림새로 말뚝처럼 굳어져 인사도 변변히 올리지 못했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작업반을 떠나가신 다음에도 서로 마주보며 한참 뻥해있던 그들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듯 마을을 향해 달려가며 겨끔내기로 웨쳤다.

《우리 원수님께서 오셨습니다!》

눈깜짝할 사이에 골목길이 미여지게 사람들이 쏟아져나왔다.

비단섬사람들은 무작정 부두가로 향했다.

너무도 소문없이 비단섬을 찾아오신 우리 원수님을 떠나실 때만이라도 바래워드리고싶어 어른들도 아이들도 늙은이들도 앞서거니뒤서거니 달음박질쳤다.

(그리도 그리던 우리 원수님이시건만 정말로 이 외진 곳에 오실줄이야!)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타신 차를 어푸러질듯 따라서며 눈물범벅이 되여 만세를 부르는 섬마을사람들, 차창문을 여시고 손을 흔들어주시며 밝게도 웃으시는 우리 원수님.

비단섬은 통채로 감격의 도가니로 들끓었다.

우리 원수님께서 타신 배가 부두를 떠나자 비단섬사람들은 와- 《파도》가 되여 그이를 따라 밀려갔다.

우리 원수님을 더 오래 뵙고싶어, 그이곁에 한치라도 더 가까이 서고싶어 물속에 뛰여들어 한덩어리가 되여 사품쳤다.

그이께서 타신 배는 보이지 않건만 우리 원수님께서 오시였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부두가로 물밀듯이 달려온 사람들은 오래도록 자리를 뜨지 못했다.

원래 간조때에는 누구도 배를 부두에 댈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런데 그 간조시간에 우리 원수님께서는 배를 타고 오시였던것이다.

물결사나운 배길과 험한 감탕길을 헤치시여 비단섬을 찾으신 경애하는 원수님, 그이의 신발에, 옷자락에 마구 묻어있던 감탕이 가슴에 맺힐수록 신도군인민들의 추억은 더욱 뜨거워졌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 비단섬을 찾으시였던 수십년전 8월의 그날도 바람세차고 비가 억수로 내리던 날이였다는 생각이 갈마들수록 우리 수령님들도, 우리 원수님도 궂은날 감탕길만 걸으시게 했다는 죄스러움에 쏟아지는 눈물을 금할수 없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다녀가신 포전주변을 깨끗이 정리한 그날 저녁 비단섬사람들의 화제는 또다시 갈1분장 기계화작업반의 뜨락또르운전수들에게로 번져졌다.

우리 원수님을 몸가까이에서 만나뵈온 그들에 대한 부러움이 커갈수록 그 영광의 시각에 비단섬사람들의 마음을 담아 인사의 말씀 한마디 올리지 못한 그들에 대한 《원망》도 또한 커갔다.

그다음은 자책으로 이어졌다.

비단섬에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시기에는 기쁨을 드릴만 한 일을 한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가슴을 쳤던것이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신도군을 현지지도하시였다는 소식이 온 나라에 전해진 날 신도군인민들은 방방곡곡의 친척, 친우들에게서 축하의 인사와 함께 약속한듯 꼭같은 질책을 받았다.

《우리 원수님을 그렇게 험한 길밖에 모실수 없었는가?!》

신도군인민들의 마음은 더욱 옥죄여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신도군인민들은 뜻밖의 감격적인 소식을 받아안았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사랑의 뻐스를 보내주시였다는것이 아닌가.

군에 있는 뻐스가 낡아서 읍지구 주민들이 비단섬부두까지 오갈 때 애로를 느끼고있다는 군당책임일군의 스스럼없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휘발유를 쓰는 뻐스가 좋겠는가, 디젤유를 쓰는 뻐스가 좋겠는가 다심히 물어주시였다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은정넘친 말씀을 전달받은 때로부터 불과 며칠도 안되여 와닿은 뻐스였다.

눈물에 젖은 손으로 뻐스를 쓸고 또 쓸어보는 신도군인민들의 가슴속에서 이름할수 없는 격정이 솟구쳐올랐다.

(멀고 험한 길을 헤쳐오신 경애하는 원수님을 우린 감탕길에밖에 모시지 못했는데 이따금씩 오가는 그 길이 멀면 얼마나 멀겠다고 신발에 흙 한점 묻을세라 이토록 마음쓰신단 말입니까!)

그 뻐스를 타고 무연히 펼쳐진 갈밭을 누벼나가는 그들의 심정은 더욱 격동되였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온넋을 바쳐 값비싼 비단밭으로 만들어주신 저 갈밭에 나는 땀을 얼마나 바쳤는가, 당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과연 있는가고 스스로 물어보며 울었고 스스로 새 결의를 다지며 울었다.

정녕 내리고싶지 않았다.

이 뻐스를 타고 곧바로 평양까지 갔으면!

다음날 아침 갈포전으로는 수많은 가두녀성들이 스스로 일감을 찾아 달려나왔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하여도 신도군인민들은 또 얼마나 크나큰 행복이 자기들을 기다리고있는지 다 알수 없었다.

사랑의 뻐스를 받아안은 감격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모든 주민세대들에 보내주신 선물을 한가득 받아안게 되였을 때 신도군인민들은 만세조차 제대로 부르지 못했다.

목이 꽉 메여서!

우리가 자연재해를 입었는가, 나라를 들썩이게 할 큰일을 하였는가.

그이께 드린것이 있다면 오직 근심과 덧짐뿐인데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매 가정의 식구수까지 다 아시는듯, 식솔중에 한사람이라도 아쉬움이 있을세라 가지가지 섬사람들의 생활에 필요한것을 골라 선물까지 보내주시였으니 세상에 그처럼 자애롭고 웅심깊으신 어버이가 또 어디 있으랴.

출가할 자식들을 둔 부모들은 이보다 더 뜻깊은 례장감이 어디 있겠느냐며 흐뭇하게 결혼식날을 기다렸고 인민군대후방가족들은 자식들이 제대되여 돌아오면 꼭 보여주겠다고 받아안은 그대로 소중히 보관했다.

아이들은 삼복철무더위에 땀을 철철 흘리면서도 가을을 기다려 입어야 할 체육복을 입고 으쓱해서 뛰여다니며 보는 사람마다 자랑했다.

《아버지원수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셨어요!》

며느리구실, 안해구실, 주부구실 다할래 선뜻 자기것을 먼저 골라본적이 없었던 녀인들은 보기만 해도 마음에 흠뻑 드는 옷을 입고 거울앞에서 떠날줄 모르는데 철부지자식들은 운동신을 신은채로 꿈나라로 가고있었다.

그날 읍의 어느 한 인민반장네 집으로는 온 인민반사람들이 다 모여들었다.

새살림을 꾸려주는 친부모인들 그렇게 지극하랴, 멀리 둔 자식을 돌보는 어머니인들 그렇게 따뜻하랴.

없으면 없는대로 사는데 습관된 섬사람들이지만 그래도 부엌세간만은 남 못지 않게 알뜰히 갖추어놓고싶었던 섬마을녀인들의 소원도 다 풀어주신 경애하는 원수님, 그이께서는 비단섬에서도 높은 지대에 사는 우리 생활형편까지 어쩌면 그렇게도 세심히 다 아실가.

원래 그들이 사는 곳은 바다바람이 세게 부는 지대라 한여름에도 더위를 별로 느끼지 않는 곳이였다.

그래서 그들은 저녁에는 창문을 닫고 얇은 이불을 덮고서야 잠에 들군 하였다.

하기에 삼복철에 여름이불을 받아안은 그들의 격정은 실로 남다른것이였다.

(그이의 마음속에 불과 수십세대도 안되는 우리들에 대한 걱정이 각별히 간직되여있을줄이야!)

어디 그뿐인가.

신도군의 병원과 학교도 전국의 본보기, 표준이 되게 잘 꾸려야 한다고 하시며 신도군을 살기 좋은 인민의 락원으로 훌륭하게 전변시키실 휘황한 구상을 펼쳐주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

당의 손길아래 천도개벽될 비단섬의 래일을 희망에 넘쳐 그려보는 그들의 가슴은 점점 벅차올랐다.

《머지않아 뭍사람들도 우리 군병원에 진단을 받으러 오게 될거예요.》

《우리 신도땅에 대학생이 해마다 늘어나게 됐수다.》

《야단났구나. 아들이 제대되여 돌아오면 집을 못 찾겠구려!》

웃다가는 울고 울다가는 웃으며 그들은 놀라움속에 곱씹어보았다.

우리 원수님께서 다녀가신 그날부터 얼마나 많은것이 변했는가!

뭍사람들은 거꾸로 섬사람들을 부러워했다.

이전엔 사위될 사람에게 《우리 딸을 데려가주게.》라고 말하던 섬사람들이 《우리 딸과 살겠으면 섬으로 들어오게.》라고 코대를 높였다.

누구나 혁신자가 되였다.

갈과 함께 한생을 살아왔다는 80고령로인의 말이 다시금 사람들을 뜨거움에 젖게 하였다.

《비단섬은 대대로 수령의 사랑을 받는 복을 타고난 곳일세.》

위대한 수령님께서 처음으로 신도땅을 찾으신것은 지금으로부터 60여년전이였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신도앞바다는 수심이 얕고 배길이 험하기때문에 더 나갈수 없다고 하는데 여기까지 왔다가 섬주변을 채 돌아보지 않고 그냥 돌아갈수 없다고 하시면서 신도앞바다도 조국의 바다인것만큼 배길이 아무리 사납더라도 내 걱정은 말고 배를 몰아나가야 한다고 하시며 신도땅의 한끝까지 다 돌아보시였다.

그해 신도로는 전국의 간석지건설자들이 앞을 다투어 달려왔다.

우리 조상들은 갈을 가지고 노전을 결어 방깔개나 리용하였지만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인민들의 입는 문제를 해결하자고 한다고 하시며 100여리 제방을 쌓아 섬들을 하나로 련결하여 수천정보의 갈밭을 조성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웅대한 구상을 받들어 대자연개조전투가 벌어졌다.

그 땅에 비단섬이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신도군의 황초평도 황금평으로 그 이름을 고쳐주시였다.

갈베기의 기계화로부터 먹는물문제에 이르기까지 비단섬을 위한것이라면 우리 당은 아끼는것이 없었고 비단섬사람들이 바라지 못했던것까지도 다 안겨주었다.

은덕속에 갈농사, 갈풍년, 갈비단이라는 새말이 태여나던 나날에 《로동신문》에는 논벼 정당 평균 10t, 최고 23.8t의 수확을 거둔 만풍년의 기쁨 넘치는 황금평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

비단섬은 평양에서 멀리 떨어져있어도 당의 사랑은 언제나 곁에 있었다.

2000년에 세쌍둥이를 위하여 1월의 칼바람을 헤치며 직승기가 날아올랐던 비단섬에는 벌써 수십년전에 수십명 교원들을 위해 직승기가 날은 눈물겨운 사랑이 수놓아져있다.

뭍에 강습나왔던 교원들이 얼어붙은 강때문에 섬에 들어가지 못해 새 학기 개학에 지장을 받고있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몸소 띄우도록 해주신 직승기를 환희에 넘쳐 맞이하던 그날의 격정은 아직도 섬사람들의 가슴속에 고이 간직되여있었다.

늙은이들은 나이먹은것을 안타까워했다.

사회주의문명이 응축되고 우리 인민의 리상이 실현된 표준군으로 변모될 비단섬에서 더 오래오래 살지 못하는 아쉬움때문만이 아니였다.더 힘껏 일할수 없는 육체적로쇠가 앉아서 나라의 은덕만 받아안는 마음을 무겁게 했기때문이였다.

우리 원수님 이야기로 새날을 맞이한 그날 온 인민반사람들 아니 온 신도군인민들은 마음다졌다.

나라의 덕을 입기만 하는 응석받이가 되지 말고 나라에 덕을 주는 애국자가 되자고!

돌이켜볼수록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비단섬에 오실 때부터 사랑을 베풀어주시려 마음먹고 오신것 아닌가.

비단섬을 돌아보신 며칠후에도 신도군이 땅은 척박하지만 인민들의 마음은 정말 후더분하였다고, 자신께서는 인민들의 후더분한 마음에 감동되였다고 오히려 분에 넘친 감사의 말씀을 주신 경애하는 원수님,

잘한것보다 못한 일이, 자랑할것보다 비판받을것이 더 많았건만 그이께서는 한마디의 책망도 없이 가시는 곳마다에서 물어보시였다.

몇마력뜨락또르가 필요한가, 부족되는 살림집은 없는가, 세멘트는 얼마나 있어야 하는가, 식량공급은 어떻게 받고있는가.…

그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무려 두번이나 곱씹어 말씀하시였다.

《제기할것이 있으면 다 제기하시오.》

자신께서 여기에 왔다가 제기되는것을 다 풀어주어야 인민들이 좋아할것이라고 하시며 크고작은 문제들을 다 맡아 해결해주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 걸음걸음 정을 부어주시는 그이의 마음속에는 위대한 수령님들에 대한 그리움이 꽉 차있었다.

신도군으로 오는 길이 험하다고 하시며 그이께서 하신 첫 말씀도 비단섬에 오르니 어뢰정을 타고 파도사나운 바다길을 헤치며 이 섬을 찾으시였던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영상이 가슴뜨겁게 안겨온다는 말씀이였다.

사연깊은 사적포전을 바라보시는 그이의 가슴속에는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갈생산과 관련하여 주신 400여차의 귀중한 교시가 자자구구 아로새겨져있었다.

떠나시면서도 그이께서는 신도군을 갈생산의 표준, 본보기로 잘 꾸려 위대한 수령님들의 령도업적을 세세년년 길이 빛내여나가야 한다고 당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유훈을 꽃피워 비단섬을 주체적인 화학섬유원료기지로, 로동당시대의 정치, 경제, 문화, 문명이 응축된 특색있는 군으로 꾸리시려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사랑은 신도군인민들의 보답의 분화구가 되였다.

멀리 있을수록 더욱 뜨거워지는 어버이 그 사랑에 불타는 충정의 폭발로 비단섬이 끓고있다.

예전보다 갈수확을 훨씬 앞당겨 끝낸 비단섬사람들은 신도군을 보란듯이 잘 꾸려주시려 로고를 바치시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사랑에 갈생산에서 최고생산년도수준을 돌파하는것으로 화답하기 위하여 뛰고 또 뛰고있다.

군살림살이에 필요한 모든것을 자급자족할수 있는 위력한 생활밑천을 갖춘 군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하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말씀을 받들어 군일군들이 앞채를 메고 땀을 흘리고있다.

농업연구원 3월27일연구소 비단섬분소에서는 새로운 갈품종연구사업이 한창이다.

비단섬에 뼈를 묻겠다는 굳은 각오를 안고 제대군인들과 청년들, 녀맹원들이 갈분장으로 달려가고있다.

당의 손길아래 갈농사의 기계화비중이 늘어날수록 기계화초병이 되려는 그들의 열의는 더욱 드높다.

수수천년 버림받던 이름없는 땅을 안아 조국의 지도우에 태여나게 해주시고 고귀한 념원을 담아 이름을 지어주시며 걸음걸음 이끌어주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애국념원, 강국념원으로 비단섬에 부흥의 생명수를 부어주신 경애하는 원수님, 그이께 있어서 비단섬은 단순히 땅이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인민사랑이 피줄처럼 맥맥히 흐르는 그 땅은 귀중한 살붙이와도 같은것이였다.

예전엔 섶나무를 가리켰다는 신도의 신자는 오늘 새로운 의미로 안겨온다.

사회주의조국을 부강하게 떠받들어 인민의 더 큰 복리를 안아오며 위대한 김정은시대의 천도개벽을 노래할 신도에는 새 기쁨, 새 행복, 새 모습, 새 소식이 날마다 늘어날것이니 복받은 그 땅에 어찌 로년기가 있으랴.

찾으시는 곳마다에서 위대한 수령님들의 뜻과 정을 먼저 새겨주시며 유훈관철전의 불길을 지펴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사랑과 믿음은 조국땅 어디서나 전변의 서사시, 기적의 서사시를 낳고있다.

우리 원수님께서 가리키시는 길을 따라 그이의 리상을 받들어 세인을 놀래우는 조선속도를 창조하며 그이의 두리에 뭉쳐 위대한 강국을 일떠세우려는 인민의 열망은 하늘땅에 차넘치고있다.

오직 일심단결의 내 나라에만 있는 위대한 그 추동력으로 사회주의 우리 조국이 부흥하고 전진하거니, 당의 해빛아래 년년이 인민의 재부를 안아올릴 복받은 비단섬의 래일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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