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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8-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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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7(2018)년 12월 5일 [기사]

 

영생하는 《사회주의백만장자》

 

우리 나라에 해외동포상공인들로부터 참으로 행복한 《사회주의백만장자》라고 불리우던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평양광학유리생산협동조합 관리위원장이였던 송대관이다.

원래 그는 해방전에 거부가 되여볼 꿈을 안고 동분서주하던 사람이였다.

그러다가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조국개선연설에서 커다란 충격을 받고 우리 나라에 첫 연필공장을 꾸려놓고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어버이주석님께서는 애국적인 개인기업가로 새 출발을 한 송대관을 대견하게 여기시여 그의 일터도 찾아주시고 화물자동차도 보내주시는 등 기업을 잘 운영해나가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그는 전쟁시기 수백만원에 달하는 리득금을 고스란히 전선원호금으로 희사하였으며 전후 생산협동조합관리위원장이 된 후에도 한해에 수백만개에 달하는 안경을 비롯한 인민소비품을 생산하여 인민들에게 공급하군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만년대계의 기념비적건축물의 내부장식에 필요한 구슬생산문제가 긴급히 제기되였다. 그런데 아직 우리 나라에서는 그렇듯 정교한 구슬을 생산해본적이 없었다.

일군들은 하는수없이 구슬전량을 수입하기로 보고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 제기를 부결하시고 송대관의 이름을 부르시며 말씀하시였다.

《그 동무에게 맡깁시다. 해방직후부터 오늘까지 수령님께서 주신 과업을 못해낸 일이 없습니다. …꼭 해낼것입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에 그는 고심어린 탐구와 실적으로 보답하였다.

그후에도 여러차례 위대한 장군님께서 주시는 긴절한 과업을 받아안고 벽화미술에 쓰일 색유리와 쪽무이 특히 외국의 제노라하는 유리생산업체가 거액의 자금을 요구하면서도 재세를 부리는 주체사상탑봉화의 특수유리도 자력으로, 우리의 기술로 훌륭히 생산해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나이가 많아 조합고문으로 돌아앉은 그가 관리위원장사업을 아직 잘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다시 종전의 직무에서 일하도록 해주시였다.

이때 그의 나이는 74살이였다.

해방전부터 그와 인연이 있던 유럽의 한 동포상공인이 조국을 방문하여 생산협동조합과 가정을 찾아보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여보게 송대관이, 자넨 정말 행복한 사람일세. 당신이야말로 <사회주의백만장자>요.》

어제날의 개인기업가로부터 위대한 수령, 위대한 령도자의 품속에서 애국적인 《사회주의백만장자》로 운명전환한 그는 82살을 일기로 생을 마치였다.

운명직전에 그는 자식들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

《내 한생에 우리 수령님과 우리 장군님을 모시지 못했더라면 나라와 민족도 모르는 돈벌레가 되고말았을게다. 그분들께서 개인기업가였던 나에게 베풀어주신 하늘같은 은총을 저 남조선과 해외동포기업가들에게 말해주려 했는데 그만… 그러니 얘들아, 나대신 그들에게 말해주거라. 우리 수령님, 우리 장군님의 정치를 따라 애국을 위한 길에 나서라고…》

주체83(1994)년 1월 12일 송대관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보고받으신 어버이주석님께서는 더없이 애석해하시며 자신의 존함을 모신 화환을 보내주시였으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를 신미리애국렬사릉에 안장하도록 조치를 취하여주시는 최상의 영광을 베풀어주였다.

애국렬사릉으로 향하는 아버지의 령구를 쓸어만지며 딸은 목메여 웨쳤다.

《아버지, 아버지는 자기가 지금 어데로 가는지 알기나 하십니까. 아버지는 받아안은 은덕에 보답을 못하고 가셨는데 장군님께서는 아버지를 애국렬사릉의 높은 언덕에 내세워주셨어요. 한번만이라도, 단 한번만이라도 눈을 뜨고 보세요. 아버지!…》

정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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