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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8-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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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7(2018)년 12월 2일 [혁명일화]

 

옛 백산학교 교장과의 상봉

 

주체34(1945)년 12월 2일이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자성군 장토면 토성동에서 찾아온 한 연고자를 만나시였다.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청사현관에서 나오시다가 그를 띄여보신 주석님께서는 놀라시며 말씀하시였다.

《아니! 김일준선생님, 이게 몇년만에 만납니까?》

김일준은 가슴에 가득히 차오르는 뜨거움으로 하여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하였다.

사실 그로 말하면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의 적극적인 활동에 의해 주체14(1925)년에 세워졌던 백산학교의 교장이였다.

그때 김일준은 김형직선생님과 강반석어머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한번은 열병에 걸려 다 죽게 되였다가 강반석어머님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다시 살아나게 되였던것이다. 이런 연고로 인해 그는 김형직선생님과 강반석어머님을 늘 잊지 못해하였고 이렇듯 나라가 해방이 되고 위대한 주석님께서 조국인민들과 인사를 나누시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평양으로 왔던것이다.

그를 반갑게 맞이하신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일순간 딱하신 표정을 지으시였다. 해방된 조국땅에 부강하고 자주적인 새 조선을 건설해야 하는 현 실태는 그이께 해후의 기쁨을 나누실 시간조차 허용치 않았던것이다.

하여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그에게 량해를 구하시고 려관으로 보내시여 휴식하도록 하시였다.

그러시고 저녁에 다시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집무실에서 그를 만나신 주석님께서는 이렇게 찾아와서 반갑다고 하시며 물으시였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

백산학교와 카륜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다가 주체19(1930)년 12월 조국으로 나온 그때부터 자성군 장토면 토성동에서 농사를 지었다. 그러다가 해방을 맞아 지금은 공산당 장토면당서기를 하고있었다.

그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너그럽게 웃으시며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주석님의 이런 치하의 말씀에 몸둘바를 몰라하던 그는 이렇게 말씀드리는것이였다.

《한가지 문의하여도 좋습니까?》

《어서 말씀하십시오.》

《해방된 조선은 어느 길로 나가게 됩니까?》

《우리 인민은 해방된 우리 조국땅에 착취와 압박이 없고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부강한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서두를 떼신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부강한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자면 무엇보다먼저 로동계급의 혁명적당을 창건하고 진정한 인민의 정권을 세워야 하며 정규화된 혁명무력을 건설해야 한다고, 이와 함께 제반 민주개혁을 실시하고 혁명력량을 하나로 묶어세워 민주기지를 튼튼히 다져야 한다고 알기 쉽게 해설해주시였다.

그러시고 이제는 나라가 해방되고 새 민주조선건설을 위한 장엄한 투쟁이 벌어지고있는데 선생님도 평양에 와서 우리와 함께 일하는것이 어떤가고 물으시였다.

《이제는 나이도 많은데 지방에서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가겠습니다.》

그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못내 서운해하시였다.

그러시던 주석님께서는 광범한 대중을 우리 당주위에 튼튼히 묶어세우는 사업이 지금 중요하게 나서고있다고 하시며 우리 조국땅에 통일된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려면 모든 애국력량을 하나로 묶어세워야 한다고, 근로대중을 우리 당주위에 결속하여 민주건설에 조직동원하는것이 좋겠다고 이르시였다.

《힘자라는껏 해보겠습니다.》

내가 편지를 써줄터이니 강계지구 당전권대표로 사업하는 최현동무에게 가져다주고 그의 지시를 받아 일하는것이 좋겠습니다.

그러시고 그 자리에서 편지를 써주시였다.

잠시후 편지를 받아든 그는 무슨 말인가를 할듯 말듯 하며 망설이였다.

그러는 그를 보시며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무슨 말을 더 할것이 있지 않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저… 이젠 나라도 해방되고 장군님께서도 조국에 개선하시였는데 이국땅에 있는 부모님의 묘를 옮겨다 고향땅에 안치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념려해주어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사의를 표하신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여 천천히 창가로 다가가시여 저 멀리 타향에 계시는 부모님들을 그려보시는듯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시는것이였다. 그러시다가 나직한 어조로 건국사업이 바빠 그 일은 뒤로 미루어야 할것 같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을 우러르는 김일준의 눈앞에는 언제나 자신보다 혁명동지들을 먼저 위하시고 가정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시던 김형직선생님과 강반석어머님의 모습이 눈앞에 안겨와 그만 《흑》하고 흐느끼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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