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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8-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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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7(2018)년 11월 5일 [회고록]

 

위대한 주석님의 회고록 갈피에서

 

 

―내도산마을에서―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초기혁명활동을 벌리시던 시기 중국동북지방에 있는 안도현에는 조선사람들만 사는 내도산마을이 있었다.

하늘아래 첫 동네라고 불리우는 백두산기슭의 이 마을은 울창한 밀림속의 산간벽촌이였다. 내도산이란 수림속의 섬 같은 산이란 뜻에서 생겨난 이름이다. 중국사람들은 산모양이 젖꼭지 같이 생겼다는 의미에서 내두산이라고도 한다.

중국쪽에서 보면 만주땅의 마지막부락이지만 조선땅에서 보면 백두산너머 첫 마을인 내도산주변 100리안팎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았다.

이 산간마을에 오래전부터 조선의 독립운동자들이 드나들었다. 독립군의 백전로장인 홍범도와 최명록도 한때 이 부락에 와있었다.

이 마을과 그 일대의 청년들을 조직에 묶어세워 장차 백두산주변을 큰 혁명기지로 만들기 위하여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일찌기 《타도제국주의동맹》성원인 리제우를 파견하시였다.

그런데 리제우는 롱절반 진담절반으로 위대한 주석님께서 한번 내도산마을에 오시여 도와달라고 하였다.

그것은 내도산마을이 밖에서 들어온 사람이 발을 붙이기가 무척 어려운 고장이였기 때문이였다.

마을에는 주로 최가, 김가, 조가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는데 이들은 바깥세상과 담을 쌓고 서로 삼각혼사를 맺었다. 최씨네 딸은 김씨네 아들한테 시집을 가고 김씨네 딸은 조씨네 아들이 데려갔으며 조씨네 딸은 최씨네 며느리로 들어갔다. 좁은 골안에서 혼사가 이런 식으로 맺어지다나니 온 마을이 친척관계로 얽혀져 만나는 사람마다 서로 《형님》, 《아재비》, 《사돈님》 하면서 돌아갔다.

이 마을사람들은 거의다 천불교를 믿었다. 천불교신자들은 하늘에서 99명의 선녀가 백두산천지에서 미역을 감고올라갔다는 전설에 기초하여 그곳에 《덩덕궁》이라는 99칸짜리 절간을 지어놓고 일년에 두번씩 찾아가 기도를 드리였다. 천불교신자들은 마을에도 《천불사》라는 절간을 지어놓고 열흘이나 한주일에 한번정도씩 가서 기도를 드리였다.

위대한 주석님께서 내도산에 도착하신 다음날이 마침 천불교신자들이 절간에 가서 기도를 드리는 날이였다. 그날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리제우의 안내를 받아 절간근처에까지 가보았는데 과연 장관이였다. 신자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고구려사람들처럼 머리를 우로 틀어올리고 울긋불긋한 옷차림으로 한데 모여들어 꽹과리와 제금을 치고 북과 목탁을 두드렸는데 덩덕궁덩덕궁하는 소리가 아주 장엄하였다. 그래서 절간이름마저 《덩덕궁》이라고 지었다는것이였다.

리제우가 하는 말이 내도산일대에서는 이 천불교가 골치거리라는것이였다. 그는 종교가 아편이라는 단순한 관념을 가지고 천불교를 곱지 않게 보고있었다. 무송에서 리제우의 말을 듣으시였을 때는 위대한 주석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였다. 하지만 의식을 거행하는 천불교신자들의 진지한 모습과 웅장한 《덩덕궁》을 보시고서는 생각을 한번 더 깊이하지 않을수 없으시였다.

그날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리제우와 함께 천불교 교주 장두범을 찾아가시였다.

장두범은 한때 독립군에서 싸우던 사람이였는데 독립군이 맥을 못추게 되자 총을 내던지고 내도산에 들어와 왜놈들에게 천벌을 내리고 조선민족에게는 복을 내려달라고 백두산천기에 빌면서 그것을 신앙으로 하는 천불교를 만들었다는것이였다.

그이께서는 교주와 담화를 하시면서도 천정밑에 매달려있는 기장이삭에서 시선을 뗄수 없으시였다. 최씨네 집에서 보신 기장이삭이 교주의 집에도 똑같은 모양으로 매달려있었기때문이였다. 종곡을 하려고 간수해두는가고 리제우에게 물으시니 그는 불공을 드릴 때 쓰는 기장이라고 시답지 않게 대답하였다.

논농사를 하지 못하는 이고장 사람들은 제밥을 지을 때 흰쌀(입쌀)대신 기장쌀을 썼는데 어느 집에서나 기둥이나 천정 같은데 기장이삭을 매달아두고있었다. 먹을것이 없어 끼니를 번지는 때에도 그들은 이 기장에 절대로 손을 대지 않았다. 다만 백두산절간에 불공을 드리러 갈 때에만 그것을 절구에 정성껏 찧어 키질을 하고 나무숟갈로 싸래기와 풀씨, 뉘, 티검불을 고른 다음 똑같은 크기의 쌀알만 하나하나 모아 참지에 싸두었다가 깨끗한 샘물에 제밥을 짓군하였다.

《그 망할놈의 천불교때문에 내도산사람들이 그만 다 환장하였소. 종교를 아편이라고 한 맑스의 말은 정말 명언중의 명언인것 같소. 이런 종교쟁이들을 새 사상으로 개조하는것이 과연 필요하며 가능하겠는가 하는거요.》

리제우는 이렇게 푸념하면서 내도산사람들의 얼을 다 뽑아가는 《덩덕궁》에 불을 지르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치밀 때도 있다고 고백하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리제우의 관점이 협애하다고 비판하시였다.

《종교를 아편이라고 맑스의 명제를 나는 물론 부정하지 않소. 그러나 명제를 어떤 경우에나 적용할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요. 일본에 천벌을 내리고 조선민족에게 복을 내려달라고 비는 천불교에다 그래 아편이라는 감투를 함부로 씌울수 있겠소? 나는 천불교를 애국적인 종교라고 생각하며 교의 신자들을 애국자라고 생각하오. 우리가 일이 있다면 애국자들을 하나의 력량으로 묶어세우는것뿐이요.》

그이께서는 리제우와 앉아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시였다. 그 과정에 천불교를 타도할것이 아니라 그들의 반일감정을 적극 지지해주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시였다. 그래서 그곳에 한 열흘가량 계시면서 마을사람들과의 사업을 하시였다. 종교를 믿는것만으로는 조국을 광복하지 못한다는 위대한 주석님의 말씀을 천불교신자들은 쉽게 긍정하였다.

그해 겨울 내도산사람들이 위대한 주석님을 참으로 성의있게 대해주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마을사람들을 계몽시키기 위한 정치사업을 선행시킨 다음 이 부락에 백산청년동맹지부를 내오고 소년탐험대를 꾸려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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