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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8-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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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7(2018)년 10월 10일 [기사]

 

해방산기슭이 전하는 사연

 

평양시 중구역 해방산남쪽기슭에는 당창건사적관이 자리잡고있다.

원래 해방산은 상서로운 기운이 도는 산이라는 의미에서 서기산이라고 불렀다. 해방후 서기산기슭에 당중앙조직위원회청사가 자리잡고 백두산3대장군을 모시게 되면서부터 인민들은 서기산을 해방산이라고 불렀다.

항일혁명투쟁의 피어린 나날에 벌써 혁명적당창건의 빛나는 전통을 창조하신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해방후 지체없이 당을 창건하기 위한 사업에 착수하시였다.

온 나라 인민의 열광적인 환호도 마다하시고 조용히 평양에 도착하신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국내혁명가들을 만나시고 주체적인 당창건방침을 알려주시며 그들을 당창건위업실현에로 이끌어주시였다.

새 형의 혁명적당, 인민의 리익을 옹호하는 당을 창건하기 위하여 위대한 주석님께서 바쳐오신 심혈과 로고는 한두마디 말로 다 이야기할수 없다.

앞으로 창건될 당의 조직, 정치로선도 손수 작성하셔야 했고 일군들을 양성하기 위한 대책도 세우셔야 했다. 복잡하게 얽힌 정세의 실마리를 풀기 위하여 사색을 집중하시다가도 때없이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시여 나아갈 길을 밝혀주시였고 각 도에 파견되여 활동하는 항일혁명투사들의 사업도 지도하시였다.

항일무장투쟁의 긴긴 나날 투사들이 위대한 주석님의 건강이 념려되여 하루밤만이라도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면 조국이 해방된 다음 푹 쉬자고 늘 말씀하시던 그이시였건만 조국땅에 개선하시여서도 날마다 밤을 새우시니 다문 얼마만이라도 편히 쉬셨으면 하는것은 항일혁명투사들과 인민들의 간절한 소원이였다.

주체34(1945)년 10월 10일과 더불어 전해지는 이야기는 오늘도 만사람을 세차게 격동시킨다.

바로 그전날 스무해 긴긴 세월 꿈속에서도 그리시던 고향 만경대를 지척에 두시고 강선의 로동계급을 찾아 복구건설의 불길을 지펴주신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온종일 쌓인 피로도 푸실 사이없이 저녁에는 당창립대회의 보고집필을 하시였다.

끼니마저 잊으신채 새벽까지도 집필에 전념하시는 위대한 주석님께 한 일군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새날이 밝아온다고, 잠시나마 쉬셔야 하겠다고 말씀올리였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이제는 습관이 되여 일없다고, 새벽시간이 자신께는 제일 귀중한 시간이라고 하시였다. 그이께서 잠시의 휴식도 없이 당창립대회보고의 마지막집필을 끝내시였을 때에는 어느덧 아침해가 떠오르고있었다. 창가에 서시여 밝아오는 동녘하늘을 바라보시며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교시하시였다.

동무들, 파란곡절과 준엄한 시련을 겪던 우리 나라 혁명운동력사에 새 페지를 기록할 시간이 다가오고있소.…

73년전 10월 10일의 아침은 이렇게 밝아왔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창립대회에서 우리 나라에서의 당건설과 당의 당면과업에 대한 력사적인 보고를 하시였다.

대표들은 당의 조직로선과 정치로선을 한결같이 지지하고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의 창설을 전적으로 찬동하면서 위대한 주석님을 우러러 격정의 환호성을 터뜨리였다.

연단에 높이 서시여 당창건을 엄숙히 선포하시는 위대한 주석님을 우러러 격정을 터뜨리던 대표들의 목소리가 금시라도 들려오는듯싶다.

조선로동당의 창건, 진정 그것은 위대한 주석님께서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 시기부터 혁명적당을 창건하기 위하여 벌려오신 정력적인 투쟁의 결실이였으며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하고 항일의 혁명전통을 계승한 주체형의 혁명적당의 탄생이였다.

위대한 주석님께서 백두에 날리던 붉은 기폭에 마치와 낫과 붓을 빛나게 아로새긴 당기발을 바라보고 또 보시며 《ㅌ.ㄷ》가 결성되던 화전의 휘발하강가며 첫 당조직이 결성되던 진명학교의 수수한 교실, 국내당조직을 결성하시던 때의 사연들을 추억하시던 곳이 바로 여기 해방산기슭이다.

그이께서는 바로 이곳에서 조선로동당의 기관지인 《정로》의 창간사업을 세심히 이끌어주시였고 여러곳에 나가 하실 연설문들과 토지개혁을 비롯한 민주개혁실시를 위한 법령초안들을 준비하시였다. 당중앙조직위원회안에 첫 세포를 내오도록 하시고 평당원이 되시여 당조직관념의 숭고한 모범을 보여주신 곳도 그리고 북조선로동당창립대회보고를 비롯한 수많은 고전적로작들을 집필하신 사적들이 깃들어있는 장소도 바로 여기 해방산기슭이다.

당창건사적관에서 서쪽으로 약 100m 떨어진 곳에는 위대한 주석님께서 당창건의 나날 항일투사들과 함께 지내시면서 사업하신 수수한 2층집도 있다.

이곳에서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배식구가 달린 온돌방의 나무식탁에 허물없이 마주앉으시여 항일투사들과 꼭같이 잡곡밥을 드시면서 정력적으로 사업하시였다.

그이께서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감회깊이 쓰신 따바리잠에 대한 이야기도 이 집에서 있은 사실이다.

해방직후 지방공작을 하던 리오송동지가 어느날 위대한 주석님을 만나뵈오려고 이곳으로 찾아왔다.

항일혁명투쟁시기 경위대원시절 사령관동지와 늘 한 모포를 덮고 자던 그는 그날도 취침시간이 되자 장군님과 같이 잘 때에는 따바리잠을 자야 한다고 하면서 이불을 와락와락 밀어제꼈다. 위대한 주석님의 팔을 끌며 그는 《장군님, 오늘만은 백두산시절처럼 따바리잠을 자보시지 않겠습니까?》 하고 말씀드리였다. 그리고는 다짜고짜로《장군님의 오른쪽에 김책동지가 누우시고 그옆에 최현동지, 장군님의 왼쪽 옆자리는 내 자리입니다.》 하면서 잠자리들을 억지로 잡아주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그때를 돌이켜보시며 이 어처구니없는 지령때문에 김책동지도 옴짝달싹 못하고 《따바리》속에 끌려들어갔다고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그처럼 소탈하신 인민적풍모를 지닌분이시기에 해방후 위대한 주석님을 만나뵈온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진정을 터놓고 그이를 우러러 격정을 아낌없이 터치였다.

강원도 평강군의 리수덕포수부부, 문맹퇴치운동의 선구자로 내세워주신 리계산녀성, 한생을 반공으로 살아온 지난날과 단호히 결별하고 애국위업의 한길에 나선 남조선의 인사들을 비롯하여 각계각층의 인민들이 스스럼없이 어버이주석님의 넓은 품에 안겨 새 사회건설에 떨쳐나섰다.

위대한 주석님께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도 금고속에 소중히 보관하고계시던 김책동지와의 뜻깊은 기념사진도 이 당창건사적관의 수수한 응접실에서 찍으신것이였다.

정녕 어찌하여 조선로동당이 인민이 가장 신뢰하고 따르는 인민적당으로 될수 있었는가에 대하여 대답해주는 해방산기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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