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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8-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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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7(2018)년 8월 7일 [혁명일화]

 

남산재의 조선식건물

 

평양시 중심부에 자리잡은 남산재는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제일 아끼고아끼시던 명당자리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설계된 평양시복구건설총계획도에는 남산재일대가 수도의 중심부로 계획되고 그 중심에 정부청사를 건설하는것으로 예견되여있었다.

그러나 어버이주석님께서는 수도중심부에 정부청사를 배치하는것을 자본주의적인 도시건설방식으로 보시고 남산재에 정부청사가 아니라 인민들이 늘 리용하는 로동회관과 같은 큰 건물을 지을것을 예견하시였다.

하기에 그이께서는 전쟁에서 승리한 그때로부터 건축가들이 수도의 중심부의 건축형성을 빨리 완성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남산재에 건물을 앉히자는것을 여러번 제기할 때마다 그들을 만류하시였고 1960년대에는 대를 두고 자랑할수 있는 건물을 지을만하게 건설기술이 발전하지 못하고 건축가들의 기량도 높지 못하다는것을 헤아리시고 또 뒤로 미루시였었다.

그러던것을 1970년대에야 비로소 남산재에 정부청사가 아니라 인민들이 그 누구나 마음대로 공부할수 있는 도서관을 앉히기로 결심하시고 그것을 하루빨리 건설할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던것이다.

국가건설위원회에서는 전국적인 범위에서 인민대학습당설계현상모집을 조직하고 그 정형을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 보고드리였다.

주체67(1978)년 7월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심사원들이 고심하며 수정보충한 설계형성안들을 보아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형성안들을 주의깊게 보시고 형성안들이 모두 현대식건물로 되여있다고 하시면서 앞으로 이런 형식의 집들도 많이 지어야 할것이라고 이르시고나서 수도의 건축형성상 중심축으로 되여야 할 인민대학습당의 건물형식은 반드시 조선식으로 되여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설계일군들은 그이의 뜻을 인차 깊이 깨닫지 못하였다.

사실 그들도 조선식건물을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것은 아니였다.

현상모집요강을 만들던 때로부터 형성안작성단계는 물론 출품된 작품들의 심의단계에서도 이 문제는 줄곧 론점으로 되여왔다.

그러나 조선식으로는 건물을 크게 짓기 힘들며 그렇게 되면 수도의 중심부에 놓이는 건물로서 자기의 풍격을 원만히 갖출수 없다는 론리에 눌리여 빛을 보지 못했던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미 건축가들속에서 벌어진 이러한 론쟁을 환히 꿰뚫고계신듯 일군들에게 인민대학습당의 건물형식이 반드시 조선식으로 되여야 하는 근거에 대하여 일깨워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도의 건축형성상 중심축으로 되여야 할 인민대학습당의 건물형식은 반드시 조선식으로 되여야 한다고, 그것은 평양이 조선의 수도이며 우리 인민들이 평양대극장이나 인민문화궁전, 옥류관과 같은 조선식건물을 더 좋아하기때문이라고 하시며 수도의 중심부에 삼각점을 이룬 평양대극장과 인민문화궁전, 옥류관의 한가운데 들어앉는 인민대학습당 역시 조선식건물로 되여야 평양이 조선의 도시, 인민의 도시로서의 성격과 면모를 더욱 살릴수 있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정연한 론리와 강한 설득력으로 일관된 그이의 말씀은 대번에 일군들과 건축가들의 심장을 틀어잡았다.

평양대극장과 옥류관, 인민문화궁전을 점으로 하여 3대조선식건물이 삼각형을 이루고있다는것이라든가, 인민대학습당이 그 중심에 놓인다는것은 지금껏 평양시건설을 맡아가지고 시안을 환히 들여다보며 메주밟듯 한 건축가들도 생각하지 못한것이였다.

그로부터 며칠후 일군들과 건축가들은 다시한번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묘향산에 새로 일떠선 국제친선전람관을 돌아보신 어버이주석님께서는 집을 조선식으로 지어놓으니 높아도 얼마나 보기 좋은가고 하시면서 인민대학습당도 조선식건물로 짓자고 말씀하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장군님의 사색과 어버이주석님의 심정이 신통히도 하나로 잇닿아있었다.

천출위인의 빛나는 예지와 인민숭배의 의지에 떠받들려 수도의 중심부인 남산재에는 전민이 리용하게 될 조선식건물형식의 배움의 전당-인민대학습당이 웅장하게 솟아올라 평양은 인민의 수도로서의 면모를 더욱 뚜렷이 빛내이게 되였다.

 

최동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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