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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8-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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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7(2018)년 8월 6일 [혁명일화]

 

옛 명인들의 묘를 복원하도록 하시여

 

온 나라가 명절분위기로 들끓고있던 주체88(1999)년 4월 15일이였다.

개성시일대를 지켜선 한 인민군부대를 찾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부대에 대한 현지시찰을 마치고 떠나시기에 앞서 문득 지휘관들에게 여기에 연암 박지원의 묘와 황진이의 묘가 있겠는데 동무들이 그것을 아는가고 물으시였다.

부대의 활동과는 거리가 먼 뜻밖의 물으심이여서 지휘관들은 미처 대답을 드리지 못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너그럽게 웃으시며 동무들이 군사에 대하여서만 생각하다 보니 우리 나라 력사를 빛내인 명인들을 다 잊은것 같은데 부대주둔구역안에 있는 력사유적과 유물을 잘 보존하고 관리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우리 나라의 첫 통일국가였던 고려의 수도 개성지방에는 많은 력사유적들과 함께 력사에 이름을 남긴 명인들의 묘도 여러기가 있었다.

18세기에 활동한 실학자이고 《량반전》,《허생전》을 비롯한 유명한 소설을 창작한 작가인 연암 박지원의 묘는 개성시 동대문밖 황토고개 남쪽에 있었다.

또한 송도3절의 하나로 꼽히우는 황진이는 개성에서 나서 자란 녀류시인으로서 명월이라는 기명으로 불리운 기생이였는데 그의 묘는 판문군 선적리에 있었다.

문익점의 손자로서 실을 뽑는 기구인 물레를 창조하여 무명천을 짜는데 공헌한 사람인 문래의 묘는 판문군 묵산리에 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박지원과 황진이, 문래를 비롯한 명인들의 묘를 원상복원하며 잘 보존관리할데 대하여 다시 한번 강조하시고서야 길을 떠나시였다.

우리 민족의 력사와 전통을 귀중히 여기시는 절세위인의 손길아래 그후 박지원과 황진이, 문래의 묘를 복원하기 위한 사업이 진행되였다.

옛 규례에 따라 묘비도 새로 세우고 망주석과 상돌, 봉분주변의 병풍돌들도 갖추어지게 되였을뿐아니라 묘지로 향하는 큰 길까지 훤하게 닦아지게 되였다.

 

김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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