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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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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7(2018)년 7월 6일 [혁명일화]

 

8 000㎡가 5만㎡로 된 사연

 

우리 공화국의 수도 평양시의 중심부 장대재언덕에 자랑스럽게 솟아있는 평양학생소년궁전.

여기에도 아이들을 나라의 왕이라 하시며 우리 학생소년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것을 안겨주시기 위하여 한평생 로고와 심혈을 다 바쳐오신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뜨거운 사랑이 깃들어있다.

해방후 새 조국건설시기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평양에 아이들을 위한 궁전을 건설할데 대한 웅대한 구상을 펼치시고 그 준비사업을 일정하게 진척시켜오시였는데 미제침략자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그만 중단되였다.

전쟁이 우리 공화국의 승리로 끝나고 전후복구건설을 위한 투쟁이 성과적으로 결속되여가던 주체45(1956)년 1월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이 문제를 다시 추진할데 대한 내각결정 제7호를 채택하도록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때로부터 일정한 시일이 흐른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궁전설계가 완성되였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설계가들을 몸가까이 부르시였다.

한달음에 달려온 설계가들을 반갑게 맞아주신 그이께서는 그들이 펼쳐놓은 총설계도를 세심히 보아주시였다.

아직 나라가 전쟁의 상처도 채 가시지 못한 때였지만 설계가들은 대담하게 마음먹고 건평 8 000여㎡에 달하는 궁전을 설계하였다. 그것은 전쟁전 예견하였던 궁전규모보다 거의 2. 5배나 되는것이였다.

설계가들은 위대한 주석님께서 너무 욕심을 냈다고 나무람하시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가슴을 조이며 설계도에 대한 설명을 해드리였다.

그런데 총설계도에 대한 검토를 마치시고 탑부분의 세부도면을 유심히 살피시던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기시여 방안을 천천히 거니시는것이였다.

설계가들의 마음은 저으기 긴장해졌다.

이윽하여 그이께서는 그동안 수고가 많았는데 너무 작아서 안됐다고 서운한 어조로 교시하시였다.

순간 설계가들은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혹시 자기들이 잘못 듣지 않았나하여 어리둥절해하였다.

그이께서는 팔을 들어 허공에 큰 획들을 그으시며 장차 장대재에 솟아오를 새 궁전의 웅장한 모습을 방불히 그려보이신 다음 이름부터 궁전이 아니요, 장대재등에 그득 들어차게, 우리 나라의 왕인 어린이들이 살 궁전답게 크고 화려하게 다시 설계하라고 힘주어 강조하시였다.

온 나라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한g의 세멘트, 한t의 강재도 쪼개여 쓰고있던 그 처럼 어려운시기였지만 어린이들을 위하여서는 천만금도 아끼지 않으시는 위대한 주석님의 고결한 후대사랑, 인민사랑에 설계가들은 북받쳐오르는 격정을 금치 못하였다.

위대한 주석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그날 해당부문 일군협의회가 진행되였으며 회의에서는 궁전규모를 종전의 근 6배에 달하는 4만 7 000여㎡로 정하는데 합의를 보았다.

이에 대하여 보고받으신 그이께서는 이제야 설계가들이 자신의 마음을 리해하여준다고 만족을 표시하시면서 궁전건평을 5만㎡로 정해주시였다. 그후 몸소 현지에 나오시여 궁전의 터전을 잡아주시고 건설방향과 방도를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으며 건설이 완공되였을 때에는 친히 궁전의 이름까지 지어주시였다.

자라나는 후대들에 대한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이렇듯 웅심깊은 사랑과 대범한 용단,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세상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내는 평양학생소년궁전이 명당자리에 우뚝 솟아날수 있게 되였다.

 

 

김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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