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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8-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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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7(2018)년 7월 5일 [혁명일화]

 

위대한 주석님의 회고록 갈피에서

 

 

―시계이야기―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1권)에는 만경대고향집 이웃의 벽시계에 대한 가슴사무친 이야기가 있다.

그이께서 만경대에서 어린시절을 보내실 때 할머니는 늘 집에 시계가 없는것을 한탄하였다고, 할머니는 물욕이 없는분이였지만 남의 집에 걸려있는 벽시계만은 몹시 부러워하였다고 회고하시면서 이렇게 쓰시였다.

《우리 이웃에 벽시계가 있는 집이 한집 있었다.

할머니가 그 집 벽시계를 부러워하기 시작한것은 우리 아버지가 숭실중학교를 다닐 때부터였다고 한다. 집에 시계가 없었으므로 할머니는 매번 쪽잠을 주무시다가 첫새벽에 일어나 어림짐작으로 시간을 가늠하고는 서둘러 조반을 짓군 하였다. 만경대에서 숭실중학교까지 30리길이니 조반을 일찍 짓지 않으면 지각을 할수 있었다.

어떤 날은 한밤중에 밥을 지어놓고도 등교시간이 되였는지 안되였는지 알수 없어 몇시간씩 잠을 못 자고 부뚜막에서 동창만 바라볼 때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뒤집에 가서 몇시나 되였는지 알아보구 오렴.>하고 분부하였다.

어머니는 뒤집에 가서도 주인을 깨우기 미안하여 뜨락에 들어가지 못하고 울타리밖에 쪼그리고앉아 시계종이 땡땡소리를 낼 때까지 기다리군 하였다. 그러다가 시계종이 울리면 집에 돌아와 할머니에게 시간을 알려드리군 하였다.》

위대한 주석님께서 어린시절에 목격하신 시계에 대한 만경대일가분들의 이야기이다.

만경대고향집에서는 해방될 때까지 할머니가 그렇게도 부러워하던 벽시계를 끝내 사다걸지 못하였다고 한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회고록《세기와 더불어》(4권)에서 어린시절 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으로부터 시계를 받으신 뜻깊은 사연에 대해서도 회고하시였다.

주체15(1926)년 4월 병환에 계시던 아버님께서는 거리구경을 하자고 하시면서 위대한 주석님과 함께 집을 나서시였다.

바깥출입을 거의 못하시던 아버님께서 아드님과 함께 나들이를 떠난것은 전에 없는 일이였다.

그때 주석님께서는 병이 심한 때에 나들이를 떠나시는걸 보니 필경 급한 일이 생긴 모양이구나, 오늘은 무슨 사람들을 만나시려고 저렇게도 바삐 서두르실가 하는 생각을 하시며 침상에서 일어나는 아버님을 부축해드리시였다.

하지만 아버님의 팔을 끼고 거리에 나설 때까지만 해도 주석님께서는 그날이 자신의 생일이라는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시였다.

아버님께서 병환에 계시는 때여서 생일 같은것을 머리에 새겨둘 경황이 없으셨던것이다.

거리를 한바퀴 돌아본 아버님께서는 뜻밖에도 주석님의 손을 잡고 상점으로 들어가시여 아드님께 마음에 드는 회중시계를 하나 고르라고 하시였다.

그때를 회고하여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이렇게 쓰시였다.

《내가 손중산의 초상이 없는 회중시계를 한개 골라잡자 아버지는 그 값으로 3원 50전의 돈을 치르어주었다. 그리고는 의미심장한 어조로 나에게 말했다.

<너도 이제는 시계를 찰 때가 되였다. 나라를 찾는 싸움에 나선 사람이 아껴야 할것은 두가지인데 하나는 동지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이다. 시간을 귀중히 여기라는 뜻으로 주는 생일선물이니 잘 간수해라.>

시계를 찰 때가 되였다고 한 아버지의 말씀을 나는 내가 성인이 다되였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였다.

내 귀에는 어쩐지 그 말이 림종전야의 유언처럼 들리였다. 아버지는 실지로 그때 벌써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것을 예감한것 같았다. 그런 예감을 가지고 시계와 함께 평생의 로고가 바쳐진 독립의 위업을 나에게 넘겨주었던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성년식과도 같은것이였다.

회중시계를 생일선물로 사준지 두달도 못되여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시였다. 

그후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아버님께서 사주신 그 시계를 가지고 화성의숙에 가시였고 거기서 뜻이 맞는 동지들을 만나 타도제국주의동맹을 조직하시였다. 그리고 빨찌산시절에도 그 시계에 맞추어 매일매일의 일과를 집행하시였고 공격개시시간과 접선시간을 정할 때에도 그 시계를 기준으로 삼으시였다.

최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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