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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8-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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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7(2018)년 6월 14일 [기사]

 

위대한 주석님의 회고록 갈피에서

 

 

―어린시절 사진에 대한 추억―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어린 시절에 사진을 얼마 찍지 못하시였다.

타개죽도 변변히 잡숫지 못하는 형편에 사진이 다 무엇인가.

그때까지만 해도 위대한 주석님께서 탄생하신 만경대일대에는 사진관이라는것이 하나도 없었다. 사진을 한장 찍자면 30리나 되는 평양성안이나 뺑대거리에 가야 했다. 간혹 성안의 사진사들이 세다리사진기를 메고 시주변에 나와 돈벌이를 할 때도 있었지만 만경대 같은 외진 부락까지는 오지 않고 칠골 같은데 왔다가 돌아가군하였다.

위대한 주석님께서 아주 어리시였을 때 한번은 주석님의 할아버님께서 주석님께 용돈으로 5전을 주신적이 있었다. 난생처음 돈이 생긴김에 30리길을 걸어 평양성안으로 가시였다. 그이께서는 성안의 번창한 풍경에 넋을 빼앗기시였다. 도로량옆의 가게방들과 장마당들에는 진귀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광주리장사군들의 《사구려!》소리에 귀가 멍멍해질 지경이시였다.

그렇지만 그이께서는 사진관을 향해 발길을 돌리시였다.

사진을 찍고싶으신 생각이 앞서시였던것이다.

그러나 5전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한것은 천진란만한 생각이시였다. 신식옷을 쭉 뽑아입은 신사숙녀들이 출납구앞에 서서 종이돈을 벌컥거리는것을 보시고서야 비로소 못올데를 왔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그래서 황황히 사진관에서 나오시였다.

그때를 회고하시여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6)에 다음과 같이 쓰시였다.

5전으로 문명의 맛을 보겠다는것은 어림도 없는 망상이였다.

그날 위대한 주석님께서 사진관을 떠나시면서 느끼신것은  세상이 돈에 짓눌려 꺼져내리는것 같은 환각이시였다. 그이께서도  무게에 눌려 숨이 가빠지는것 같으시였다.

그후부터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평양성안으로 들어가실 때마다 사진관을 외면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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