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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8-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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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7(2018)년 6월 5일 [기사]

 

《지원》의 사상과 백두산절세위인

 

6월 5일은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의 서거 92돐이 되는 날이다.

이날을 즈음하여 우리 모두는 《지원》의 숭고한 사상을 내놓으시고 그를 빛나게 구현하여 조선혁명의 밝은 려명을 안아 오신 김형직선생님의 혁명생애와 불멸의 업적을 다시금 감회깊이 돌이켜보고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다음과 같이 쓰시였다.

《나의 아버지는 〈지원〉의 뜻을 일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김형직선생님의 고귀한 혁명생애와 불멸의 투쟁업적은 《지원》의 원대한 뜻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나라의 독립을 내가 싸우다 쓰러지면 아들이 싸우고 아들이 싸우다 못하면 손자가 싸워서라도 기어이 쟁취해야 하며 대를 이어 혁명을 계속하여 무산민중이 잘사는 새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김형직선생님의 《지원》의 사상.

 

 

그것은 조국과 민족을 위한 투쟁의 길에서 참된 보람과 행복을 찾는 혁명적인생관이였고 대를 이어 싸워서라도 기어이 나라의 해방을 이룩해야 한다는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이였다.

《우리가 2천만겨레를 하나로 묶어세워 일제를 물리치고 나라를 광복하려면 멀고 험한 길을 지나 바다로 가는 샘물처럼 뜻을 멀리 두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바위도 벼랑도 극복하며 꾸준히, 완강히 싸워야 하오.》

김형직선생님께서 지원의 사상을 피력하시면서 강반석어머님께 하신 이 말씀은 곧 혁명에 대한 관점이고 의지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주체6(1917)년 3월 23일 조선국민회를 결성하신것은 《지원》의 포부아래 반일애국력량을 단합시키고 반일민족해방운동의 자주적발전의 터전을 마련하는데서 획기적인 의의를 가지는 사변이였다.

주체7(1918)년 가을 김형직선생님께서 감옥에서 출옥하시였을 때 제대로 걸으실수 없는 형편이였다. 하지만 지금 제한몸을 생각하고 걸음을 지체하면 조선독립이 그만큼 멀어진다고, 가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떠나야 하겠다고 하시며 선생님께서는 결연히 파괴된 조선국민회조직을 복구하기 위하여 길을 떠나시였다. 그때 만경대를 떠나시기에 앞서 김형직선생님께서 지으신 노래가 《남산의 푸른 소나무》이다.

 

 

여름은 가고 어느덧 겨울을 예고하며 찬바람이 불고있었지만 예나 다름없이 푸르청청한 남산의 푸른 소나무, 닥쳐올 겨울의 눈서리를 이겨내고 다시금 양춘을 만나 소생할 소나무의 굳센 모습을 바라보시는 김형직선생님의 심장이 불을 뿜는것인가 한자 또 한자 가사가 흘러나왔다.

도탄에 빠진 민족의 운명을 한가슴에 품어안으시고 남달리 뼈아프게 목격하고 체험하는 과정을 통하여, 오랜 기간의 혁명투쟁과정을 통하여 더욱 굳히신 지원의 사상을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노래 《남산의 푸른 소나무》의 구절구절에 담으시였다.  

 

남산의 저 푸른 소나무가

눈서리에 파묻혀서

천신만고 괴롬받다가

양춘을 다시 만나 소생할줄을

동무야 알겠느냐

3. 1인민봉기와 그를 전후한 시기 민족해방의 진로를 끊임없이 모색하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주체8(1919)년 7월 청수동회의에서 무산혁명의 력사적필연성을 론증하신데 기초하여 그해 8월 력사적인 관전회의에서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을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무산혁명에로 방향전환할데 대한 새로운 투쟁방침을 선포하시였다.

민중이 총칼을 들고 일어나 싸우는 무산혁명의 길만이 나라의 독립과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실현할수 있는 가장 정당한 길이라는것을 굳게 확신하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이미 있는 무장단체들의 지휘관, 병사들을 사상적으로 각성시켜 그 대오를 무산혁명을 감당할수 있는 무장력으로 전환시킬것을 구상하시고 그 실현을 위한 사업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다.

《지원》의 숭고한 뜻을 일생의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몸이 찢겨 가루가 되여도 대를 이어가며 굴함없이 싸워 기어이 독립의 새봄을 안아오시려던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주체15(1926)년 6월 5일, 만리 이국땅에서 망국의 한을 풀지 못한채 림종을 앞두고 강반석녀사에게 《내가 죽은 다음 이 총이 나지면 재미가 없으니 땅속에 묻었다가 성주가 커서 투쟁의 길에 나설 때 주도록하오.》라고 말씀하시며 두자루의 권총을 내놓으시였다. 그러시고는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 《나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간다. 그러나 너희들을 믿는다. 너희들은 언제든지 나라와 민족의 몸이라는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뼈가 부서지고 몸이 쪼개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라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라고 당부하시고 31살을 일기로 너무도 일찌기 세상을 떠나시였다.

참으로 《지원》의 사상을 내놓으시고 자신보다 겨레를, 가정보다 조국을 먼저 생각하시며 찬바람 몰아치는 혁명의 한길을 쉬임없이 걸으신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선생님의 고귀한 생애는 참다운 애국자, 견결한 혁명가의 빛나는 한생이였다.

위대한 사상은 위대한 계승에 의하여 빛나는 결실을 맺는다.

언제인가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해외교포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자신께서는 지금까지 김형직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지원의 뜻을 품고 혁명을 하여왔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나는 아버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1926년에 《ㅌ. ㄷ》를 결성하였으며 그때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근 70년동안 조선혁명을 위하여 일관성있게 투쟁하여왔습니다. 나는 앞으로도 지원의 높은 뜻을 받들고 조선혁명을 끝까지 완성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할것입니다. …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어느 해인가 만경대위인들의 력사의 발자취가 새겨진 직령마루에서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지원의 높은 뜻을 안으시고 걸으시였으며 수령님께서 조국광복의 큰뜻을 품으시고 걸으시였던 이 길로 오늘은 내가 우리 인민들에게 락원을 안겨주려고 걷고있습니다. 이 길에는 대대로 조국의 해방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는 만경대가문의 열렬한 조국애와 무한한 헌신성이 그대로 수놓아져있습니다. …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어느 봄날 일군들과 함께 혁명의 성지 만경대를 찾으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원수님께서는 소나무가 설레이는 남산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곳에 서시여 남산을 바라보면 김형직선생님께서 지으신 시 《남산의 푸른 소나무》부터 생각난다고, 그 시에서 제일 가슴을 울리는것은 3절이라고 하시며 조용히 그 대목을 읊기 시작하시였다. 

 

이 한몸 싸우다 쓰러지면

대를 이어 싸워서도

금수강산 삼천리에

양춘을 찾아올제 독립만세를

조선아 불러다오

 

위대한 수령님들의 혁명위업을 받들어 이 땅우에 최후승리의 휘황한 미래를 안아오시려는것이 바로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원수님의 확고한 신념이고 의지이기에 그이께서는 뼈가 부서져 가루가 될지언정 나라의 독립을 위한 투쟁의 한길에서 굴함없이 싸우겠다는 굳은 결심을 품으시고 력사의 새벽길을 헤쳐가신 김형직선생님처럼, 아버님으로부터 물려받으신 두자루의 권총을 밑천으로 조국광복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시고 이 땅우에 사회주의락원을 펼쳐놓으신 위대한 주석님처럼, 우리 조국을 그 어떤 대적도 범접하지 못하는 군사강국으로 일떠세우신 위대한 장군님처럼 나도 혁명의 총대를 틀어쥐고 자주의 길, 선군의 길, 사회주의길을 변함없이 가려고 한다고 힘있게 말씀하시였다.

《지원》의 사상은 이렇듯 백두산절세위인들에 의하여 대를 이어 빛나게 계승되고있다.

손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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