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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8-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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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7(2018)년 5월 7일 [혁명일화]

 

민족문화유산을 귀중히 여기시여

-대성산옛못에 깃든 비밀을 밝혀주시여-

 

주체47(1958)년 4월 하순 어느날이였다.

대성산의 력사유적들을 발굴정리하는 문제와 관련한 협의회를 지도하시던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한 력사학자에게 우리 선조들이 대성산성안에 왜 못을 팟으며 모두 몇개나 있었는가에 대하여 물으시였다.

뜻밖에 어버이주석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 학자는 옷매무시를 바로하며 고구려사람들이 물을 해결하기 위하여 성안에 우물대신 못들을 파게 되였다는것과 기록에는 모두 99개의 못이 있었던것으로 되여있는데 대부분의 못은 말라버리고 지금은 3개만 남아있다는데 대하여 정중히 보고드리였다.

만면에 너그러운 미소를 담으시고 그의 대답을 들으신 주석님께서는 고구려사람들이 성안에 우물대신 못을 판것은 매우 흥미있는 문제라고 하시면서 성안에 있었다는 옛못들도 매우 귀중한 유적이라고, 앞으로 못들을 다 찾아내여 복구하여야 하겠다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하시였다.

위대한 주석님의 교시를 높이 받들고 대성산의 력사유적 발굴 및 복구사업에 떨쳐나선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교직원, 학생들은 옛못들을 찾아내기 위한 사업에 달라붙었다.

고심어린 노력끝에 못자리라고 추정되는 곳들을 여러개 찾아냈으나 그중 몇개를 제외하고는 못이라고 증명하기 곤난한 문제가 제기되였다.

그것들이 못이라면 마땅히 물이 있거나 물이 고일수있는 원천 즉 샘터나 물줄기가 있어야 하겠는데 그렇지 못하였던것이다.

이것들이 못이라면 수원은 어디일가?

이 문제를 두고 조사연구사업을 거듭하였으나 도저히 실머리를 찾지 못하고있었다.

이 무렵 유적발굴현장을 찾으신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제기되는 문제들을 료해하시다가 못자리들을 찾아냈으나 그것을 과학적으로 고증할수있는 실물자료를 찾지못해 애를 먹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시였다.

학자들의 말을 주의깊게 들어주신 그이께서는 출렁이는 미천호를 비롯하여 주변의 지형을 유심히 살펴보시며 깊은 사색에 잠겨계시였다. 그러시다가 문득 한 학자에게 못과 못들 사이의 련관문제에 대하여 연구해보았는가고 나직히 물으시였다.

순간 그 학자는 머리가 숙여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못자리들을 발굴하면서 그 지형조건과 위치에 대해서는 이모저모로 연구도 해보고 분석도 해보았으나 못들의 호상련관성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을 돌리지 못했기 때문이였다.

학자는 사실대로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못과 못사이 특히 웃못과 아래못 사이가 련관되였을수 있으니 잘 찾아보라고 친절히 깨우쳐주시였다.

그이의 가르치심에서 신심과 용기를 받아안은 발굴자들은 또다시 못과 못사이의 련결상태를 알아내기 위한 작업에 달라붙었다.

얼마간 작업이 진척되였을 때 사람들은 자기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못과 못사이에 자갈과 진흙으로 다짐한 수로가 나타나고 그안에 돌과 자갈이 가득차있는것을 발견하게 되였던것이다.

그제서야 발굴자들은 고구려사람들이 물원천이 바른 대성산성안에서 물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웃못에서 넘쳐나는 물을 그냥 흘러보내지않고 아래못에 저장하기 위하여 못과 못을 련결하는 수로를 냈다는것과 수로안에 자갈과 돌을 채워넣어 물이 흘러내리는 동안 깨끗이 려과되게 한 다음 생활에 리용하는 기발한 방법을 썼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대성산의 지세와 못들의 위치를 가늠해보시고 이 못들은 원천지의 물을 차례로 받아서 리용하는 유기적인 못의 군일수 있다는것을 단번에 간파하시고 발굴사업의 정확한 방향을 밝혀주신 위대한 주석님의 천리혜안의 예지에 학자들과 학생들은 정녕 경탄을 금할수 없었다.

이렇게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탁월한 선견지명과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수천년동안 두터운 이끼속에 파묻혀있던 대성산옛못들의 비밀이 로동당시대에 와서 밝혀지고 과학적으로 고증정립될수 있었다.

 

동천호

구룡못

 

장수못

 

잉어못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학생 김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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