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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8-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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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7(2018)년 4월 15일 [기사]

 

태양절이 전하는 어머님의 고결한 충정심

 

해방된 조국땅에서 세번째로 맞이한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탄생일에 있은 일이다.

이날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항일의 녀성영웅이신 김정숙어머님께서 차리신 소박한 생신상앞에 항일투사들과 마주 앉게 되시였다.

그때 어머님께서는 너무도 기쁘시여 눈물을 머금으시였다. 위대한 주석님께서 이번에도 소박하게 차리신 생신상마저 거절하실가 보아 몹시도 마음을 조여오신 그이시였던것이다.

항일혁명투사들이 올리는 축배잔을 받으시는 위대한 주석님의 모습을 우러르는 어머님의 마음속에는 가슴아프게 이 날을 맞지 않으면 안되였던 지난날들이 삼삼이 안겨왔다.

항일무장투쟁시기 산에서 맞으시는 그이의 어느 생신날 비상용미시가루를 풀어드릴수밖에 없어 눈물이 솟구치던 그 아픔, 주체30(1941)년의 생신날에도 석님께서 소부대활동으로 밀영을 떠나시게 되여 준비해두었던 농마가루며 양념감, 국수꾸미감들을 싸보내시였을뿐 자신의 손으로 상을 차려드리지 못했던 한스러움, 가슴속에 락엽처럼 쌓이고 쌓인 그 아픔과 한을 나라를 찾고 조국으로 돌아가 시원히 풀어보리라던 어머님이시였다.

하건만 새 조국건설로, 인민을 위한 일로 낮과 밤을 이어가시는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해방후 맞으시는 첫 탄생일에도 생신상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하시였다.

하여 안타까운 마음속에 그이의 생신상도 차려드리지 못하신 어머님이시였다.

주체36(1947)년 위대한 주석님의 생신날을 앞두고도 생각이 많으시던 어머님께서는 해방후 두번째 해의 생신날도 그냥 지나보낼수 없어 마음을 굳게 다잡으시고 조용히 준비를 해나가시였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게 되신 그이께서는 지금 형편에서 내가 어떻게 생일을 쇨수 있겠는가고 하시며 그만 두라고 또다시 막으시였다.

위대한 주석님을 우러러 어머님께서는 나직이 말씀올리였다.

《장군님, 저는 장군님께서 히시는 말씀의 참뜻을 깊이 알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산에서 싸울때에는 생일이 언제 지나 갔는지, 어느날이 제 생일인지도 모르고 지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나라가 해방되여 자기 집에서 매끼 더운 밥을 해먹을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끼 먹는 쌀을 한줌씩만 절약해도 생신날 장군님께 떡 한번 해올릴수있는데 여기에 쌀이나 돈이 많이 들어가는것도 아니지 않습니까.》어머님의 음성은 끓어오르는 격정으로 간간히 끊기였다.

항일의 그날에도 해방된 조국에서도 변함이 없는 어머님의 그 진정앞에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차마 말씀을 이을수가 없으시였다.

생신날 아침 정성을 다해 상을 차리신 어머님께서는 집무실에서 새 조국건설로 또 한밤을 지새우시고 댁에 들어서신 어버이주석님께 《오늘이 장군님의 탄생 35돐입니다.》라고 나직이 말씀올리시였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성의는 고맙다고, 그러나 생일이라고 하여 내 어찌 생일상을 받겠는가고, 나라가 해방되였어도 인민들의 생활은 크게 달라진것이 없고 아이들에게 사탕 한알 제대고 먹이지 못하고있는데 내가 생일상을 받은들 어떻게 마음이 기쁠수 있겠는가고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주석님의 마음속에는 오직 인민만이 꽉 차있었던것이다.

인민만을 생각하시고 인민만을 위하시는 위대한 주석님의 그 헌신의 세계앞에서 어머님께서는 머리를 숙이시고 격정의 눈물을 흘리시였다.

이렇게 되여 주석님께서는 끝내 생신상앞에 앉지 못하시였다.

여느날 같으면 소박한 식사라도 드셨으련만 생신날 그 아침에는 오히려 끼니를 번지시고 다시 나가시였다.

그날 온종일 마음이 괴로우시여 식사는 고사하고 일손도 잡지 못하시던 어머님께서는 다음날 평양곡산공장에 나가시여 공장의 일군들과 로동자들에게 장군님께서는 아이들에게 사탕 한알 쥐여 주지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생일을 쇠겠는가고 하시며 검소한 생신상까지 사양하시였다고, 여기 모인 여러분들이 일을 잘하면 어린이들에게 사탕, 과자를 얼마든지 먹일수 있다고, 그러면 우리 장군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고 절절히 호소하시였다.

이런 지나온 사연들을 더듬으시며 항일투사들과 마주앉으신 위대한 주석님을 우러르는 어머님의 마음은 한없는 기쁨으로 젖어들었다.

이날 어머님께서는 한 녀투사에게 장군님께서 기뻐하실때마다 나는 왜서인지 눈물이 나오군 한다고 눈가에 물기를 담으시며 말씀하시였다.

어머님께서는 장군님께서 계시기에 우리 조국은 끝없이 번영하고 우리 인민은 자자손손 가장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리라고, 그러니 앞으로 언제인가는 장군님의 탄생일을 반드시 전민족적인 대경사의 날로 기념하게 되리라고, 어쩌면 우리 민족만이 아닌 인류공동의 기념일이 되리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는다고 하시였다.

어머님의 이 믿음과 확신은 먼 앞날의것이 아니였다.

주체54(1965)년 4월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인도네시아방문의 길에서 탄생일을 맞으시게 되시였다. 수많은 축하편지들을 보내여오고 쟈까르따의 학생들도 위대한 주석님을 찾아와 축하해드리였다.

열렬한 축하를 받으시는 위대한 주석님을 우러러 일군들은 세계진보적인민들의 한결같은 칭송을 받고계시는 주석님을 모신 한없는 긍지로 하여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였다.

위대한 주석님의 탄생일은 이렇게 우리 인민만이 아닌 전 세계진보적인류의 공동의 명절로 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당시)는 우리 인민과 전세계 진보적인류의 한결같은 마음을 반영하여 주체63(1974)년 4월 정령469호 《혁명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일인 4월 15일을 민족최대의 명절로 제정함에 대하여》를 채택공포하였다.

주체86(1997)년 7월에는 위대한 주석님께서 탄생하신 주체1(1912)을 원년으로 하는 주체년호와 4월 15일을 태양절로 제정할데 대한 공동결정서가 발표되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께서 격정의 눈물속에 맞고보내시던 위대한 주석님의 탄생일이 어머님의 념원 그대로 태양절로, 민족최대의 명절로 세계진보적인류의 공동의 명절로 되였다.

평양의 만수대언덕에 높이 모셔진 위대한 주석님들의 동상으로 온 나라 천만군민은 어버이주석님을 받들어 한생을 바치신 어머님의 충정의 마음도 담아 삼가 인사를 드리고 정히 안고온 꽃송이를 드리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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