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ico                     

기사게시날자 : 2018-02-02

...목록으로
주체107(2018)년 2월 2일 [일화]

 

《장가》든 처녀

 

싸락눈이 내리던 주체62(1973)년 1월 어느날이였다.

포전에 나가있던 장천협동농장(당시) 처녀관리위원장은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농장에 찾아오시였다는 련락을 받았다.

어버이주석님께로 달려가는 처녀관리위원장의 머리속에는 강남에서 농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농장으로 자원진출하여 농산기수로 일하면서 처음으로 주석님을 만나뵈옵던 일이며 작업반장으로 일하던 시기 전국농업대회에서 토론하는것을 들어주시고 당정책관철에 앞장선 동무라고, 관리위원장도 할수 있는 동무이라고 내세워주시던 잊을수 없는 일들이 영화화면처럼 떠올랐다.

그가 급히 관리위원회마당에 들어서자 어버이주석님께서는 《아, 처녀관리위원장, 잘 있었소?》라고 하시며 그의 손을 반갑게 잡아주시였다.

그러시고는 농장의 농사형편에 대하여 물으시였다.

처녀관리위원장은 머뭇거리며 머리를 수그리고있다가 계획을 못했다고 솔직하게 대답올렸다.

이때 옆에 있던 한 일군이 이 동무는 계획을 기어이 하고야 시집을 가겠다고 하면서 약혼한지 2년이 되도록 시집을 가지 않고있다고 말씀드리였다.

어버이주석님께서는 그의 마음이 기특하기 그지없으시였다. 품을 들여서라도 도와주고싶으시였다.

관리일군들과 알곡수확고가 낮은 원인을 여러모로 분석해보신 그이께서는 작업반장들을 불러오게 하시였다.

어버이주석님께서는 그들과 또다시 진지한 협의회를 하시였다.

이윽고 어버이주석님께서는 다락논들을 그대로 두고서는 알곡수확고를 높일수 없다는것을 확증하시였다.

깊은 생각에 잠기시여 펼쳐놓은 수첩에 연필그루를 박으시던 그이께서는 드디여 결심이 서신듯 관리위원장에게 《풍년》호뜨락또르를 줄터이니 그것으로 다락논을 밀고 밭으로 전환하여 강냉이를 심고 뒤그루로 밀을 심으면 알곡수확고를 높일수 있다고 교시하시였다.

일군들은 순간에 눈앞이 환히 트이였다.

알곡수확고를 대뜸 배로 높일수 있는 명안중의 명안이였던것이다.

어버이주석님께서는 그렇게 하면 이 농장에서 국가계획도 수행할수 있고 처녀관리위원장이 시집도 갈수 있지 않겠는가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모두가 그이를 따라웃었다.

처녀관리위원장은 수집음으로 얼굴이 빨갛게 타는 속에서도 알곡생산계획을 수행할수 있게 되였다는 기쁨에 주석님을 우러르며 밝게 웃었다.

어버이주석님께서는 농장을 떠나시면서 처녀관리위원장의 약혼자가 지방에 있다는것을 아시고 관리위원장이 지방으로 시집을 갈것이 아니라 남편될 사람을 데려오게 하여 결혼을 한 다음에도 그가 그냥 관리위원장으로 일하도록 은정어린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어버이주석님의 이렇듯 각별한 관심과 배려속에 농장에서는 그해 국가알곡생산계획을 훨씬 넘쳐수행하게 되였다.

그해말 결산분배를 마친 처녀관리위원장은 지방에 있던 약혼자를 데려다 만사람의 축복속에 결혼식을 하였다.

그 광경을 목격한 농장원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덕분으로 우리 관리위원장이 시집을 간것이 아니라 《장가》를 들었다고…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