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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7-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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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6(2017)년 6월 18일 [혁명일화]

민족문화유산을 귀중히 여기시여

-종합대학의 터전을 옮기신 사연-

 

주체36(1947)년 9월 8일 아침이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몇명의 력사학자들을 집무실로 부르시였다.

자나깨나 흠모하여 마지않던 김일성장군님을 뵈옵게 된 학자들의 감격과 기쁨은 이루 헤아릴수 없이 컸다.

그러면서도 해방직후 새 민주조국건설에 다망하신 그이께서 아침 일찍 자기들을 부르실 때에는 필시 나라에서 중요한 일이 제기되였을것이라는 생각으로 저으기 마음이 긴장해지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해빛같은 미소를 함뿍 담으신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친히 문가에까지 나오시여 력사학자들의 손을 하나하나 뜨겁게 잡아주시며 반갑게 맞아주시였다.

일일이 자리를 권하신 다음 그들이 앉기를 기다리시던 그이께서는 한가지 긴급히 의논할 문제가 있어서 불렀다고 하시며 어제 김일성종합대학건설을 위해 기공식을 가진 자리가 옛날 고구려의 토성자리라는것이 사실인가고 물으시였다.

바로 전날인 9월 7일.

김일성종합대학의 새 교사터전으로 정해진 모란봉 북쪽 대동강기슭에서는 대학교직원, 학생들과 애국미를 바친 농민대표들, 수천명의 평양시민들이 떨쳐나선 가운데 성대한 기공식이 있었다.

참가자들은 해방후 처음으로 조국땅우에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민족적영웅이신 김일성장군님의 존함을 모신 인민의 종합대학 새교사를 짓게 되였다는 크나큰 감격과 기쁨에 넘쳐 대학터전을 힘차게 다져나갔다.

그런데 건설자들이 한창 신바람나서 풀을 베고 땅을 파헤치다가 그속에 파묻혀있던 고구려토성의 한쪽 변두리를 발견하게 되였다.

이 토성으로 말하면 기원 5세기경 고구려가 새로운 수도성인 평양성을 쌓은후에 북방에서 오는 적을 막아내기 위하여 대동강을 옆에 낀 금수산줄기를 따라 반달모양으로 쌓은 성이였다.

력사학자들은 이 토성이 고구려의 수도방위체계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로 될수있다고 인정하고 건설일군들에게 이왕이면 토성을 피하여 종합대학교사를 앉히면 어떻겠는가 하는 의견을 제기하였다.

그런데 이 사실이 위대한 주석님께 보고되여 그이께서 그처럼 마음쓰시게 될줄은 미처 몰랐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력사학자들의 이러한 심정을 헤아리신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시고 그곳이 고구려토성자리라는것이 사실인가, 지금 설계대로 하면 토성이 얼마나 허물어지게되는가, 력사적으로 꼭 보존해야 할 토성인가를 구체적으로  알아보시였다.

그이께서 어떻게나 허물없이 대해주시는지 한 력사학자가 어려움을 잊고 일어나 그곳이 고구려의 토성자리이며 지금 설계대로 하면 거의 200m가량 없어지게 되는데 고구려의 토성으로 남아있는것이 그리 많지 못한 조건에서 될수록 보존했으면 좋겠다는 의향을 말씀올렸다.

그의 의견을 심중히 들어주신 주석님께서는 그래서 선생들을 부른것이라고하시며 학자들, 전문가들의 의견이 귀중하다고, 선생들의 의견이 그렇다면 보존하도록 하자고,앞으로 우리 나라 력사를 더 잘 연구하며 민족문화유산을 옳게 계승발전시키자면 력사유적들을 잘 보존하여야 한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참으로 하나의 력사유적을 놓고도 조선력사연구의 전반을 헤아리시며 친히 학자들의 소박한 의견까지 허물없이 들어주시는 위대한 주석님의 고매한 풍모에 참가자들은 뜨거운 격정을 금할수없었다.

토성을 그대로 두고 대학터전을 옮기도록 하자고 다시 말씀하신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그러면 다른데 좋은 자리가 없겠는지 함께 나가보자고 하시였다.

먼저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있는 대학터전에 이르시여 토성자리를 확인하신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아쉬운듯 이미 잡았던 대학터전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다가 종합대학위치로는 여기가 참 좋은곳이지만 토성자리를 없애고 교사를 지을수 없다고 하시면서 종합대학의 위치도 중요하지만 토성도 보존하여야 한다고, 대학터전을 다른곳으로 옮겨야 하겠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너무나 아쉬워 한 일군이 이왕 잡았던 자리이고 공사도 시작되였는데 토성자리를 얼마쯤 헐어버린다고 해도 고구려의 성터가 남아있는것이 있으니 공사를 계획대로 추진시켰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지만 그이께서는 토성이 있다는것을 뻔히 알고서야 어떻게 교사를 짓겠는가, 수천년동안 내려온 고구려의 유적을 다문 몇m도 다칠수 없다고 하시면서 공사를 중지하고 대학터전을 다른곳을 옮기자고 단호하게 말씀하시였다.

이날 그이께서는 한낮이 기울도록 대동강기슭으로부터 미암산등성이의 거칠고 잡초우거진 골안과 언덕길들을 걷고걸으시고 나서 오늘의 김일성종합대학이 자리잡은 룡남산마루에 대학터전을 다시 잡아주시였다.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민족의 어버이이신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이렇듯 탁월하신 풍모와 헌신적인 로고에 의하여 고구려사람들의 지혜와 애국심이 깃든 평양성유적이 구원되여 오늘까지 훌륭히 보존되고있다.

고색창연한 평양성은 잊지못할 그날의 전설같은 이야기를 후손만대에 길이길이 전해갈것이다.

 

복원된 평양성의 일부

 

김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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