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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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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4(2015)년 7월 25일 [기사]

 

우리 민족의 재능이 깃든 접이부채

 

우리 인민이 창조한 문화적재부가운데는 오늘도 전해져내려오고있는 여름철의 필수품인 부채도 있다.

자유롭게 접고 펼수있는 구조적단순성을 가지고있는 부채에도 우리 민족의 지혜와 슬기가 깃들어있다.

력사기록에 의하면 우리 나라에서 접이부채는 가볍고 가지고 다니기에 편리하며 조금만 흔들어도 바람이 잘 이는것으로 하여 이미 고려시기에 인민들속에서 널리 리용되였다.

일명 습선이라고 불리운 고려시기의 접이부채에는 백습선, 고려지선, 삼선, 화습선, 비단부채 등이 있었다.

백습선은 대나무를 가늘게 오려서 부채살을 만들고 거기에 등지라는 종이를 바른 부채인데 살들은 은이나 구리로 만든 못에 의해 고정되였다. 력사책에는 이 부채가 사람들의 품속과 팔소매속에 넣어가지고 다닐수 있으므로 쓰기가 매우 편리하다고 씌여져있다.

고려지선은 고려종이로 만든 부채로서 살을 련결한 구리못에 은장식을 하고 부채종이에는 인물그림을 그린 부채이다.

삼선은 삼송나무를 가지고 얇게 가공하여 만든것이고 화습선은 은, 금가루를 칠하고 인물 등을 그린것이다. 비단부채는 종이대신 비단을 붙여서 만든것인데 매우 화려하였다.

고려부채는 당시 이웃나라들에 수출되여 그 나라 사람들속에서 애용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송나라사람들은 접이부채를 찬양하면서 펼치면 넓이가 한자나마되고 접으면 크기가 두손가락만 하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고려부채의 제작기교와 아름다움을 《하늘의 재주》에 의한것으로 격찬하였고 부채그림들에서 고려풍습을 자기 눈으로 보는것 같다고 하였다.

고려부채의 제작경험과 기술은 조선봉건왕조시기에 그대로 계승되였으며 더욱더 세련되였다. 이 시기 접이부채는 보통 종이나 천을 한면에만 붙여 많은 살(어떤것은 50-60개)이 보이게 하였고 몸체부분과 자루부분, 종이나 천의 색갈과 그림, 자루에 달린 장식물 등이 잘 어울려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의 가치를 가지였다. 부채곁살의 재료로는 굳은 나무, 참대, 뼈, 각종 초물들이 쓰이였으며 이것들가운데서 한가지 또는 여러가지를 조화시켜 조형예술적으로 아름답게 가공하였다.

우리 나라의 접이부채의 다양성은 부채에 쓰인 종이와 천, 그림, 부채에 매단 드림장식물을 통해서도 나타났다.

접이부채의 종이로는 백선자지라는 흰종이, 여러가지 색을 물들인 색지, 누른 옻이나 검은 옻을 칠한 종이인 칠지 등을, 천으로는 보통 푸른색, 붉은색의 얇은 비단을 리용하였다. 종이와 비단들에는 조국의 아름다운 산천경개와 근면하고 지혜로운 우리 민족의 생활풍습을 채색화로 생동하게 그려넣었다.

이밖에도 접이부채에 매달아놓은 드림장식물은 침향, 고양, 자단과 같은 나무와 비취옥, 백옥과 같은 옥돌류 그리고 호박, 나무열매 등으로 사랑스럽고 재롱스럽게 만들어 부채의 예술성을 자연스럽게 돋구었다.

아름답고 부드러우며 고상한 그러면서도 사용하기에 편리한 우리 나라 접이부채는 우리 민족의 슬기와 우수성을 자랑하며 주변나라들에까지 널리 보급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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