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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7-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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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6(2017)년 1월 10일 [소개]

《세계탁구녀왕》 박영순

 

《세계탁구녀왕》 박영순.

그는 1956년 평안북도 삭주군의 외진 산골마을에서 태여났다.

어린 시절 그의 희망은 체육무용수가 되는것이였다.

그런데 박영순의 희망은 군적으로 진행된 탁구경기에서 자기학교가 패한후에 달라지게 되였다.

그날 체육교원에게 달려간 그는 자기를 탁구소조에 받아달라고 말했다.

이렇게 박영순은 탁구와 인연을 맺었다.

본래 오른손잡이였던 박영순은 탁구소조지도교원의 요구로 탁구를 배우기 시작한 첫날부터 왼손잡이훈련을 하였다.

그는 훌륭한 탁구선수가 되여 학교와 고향을 빛내이자면 꼭 왼손잡이기술을 완성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타이름을 마음속에 새기고 밥을 먹을 때도 왼손으로 먹고 일상생활동작들을 왼손으로 습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리고 왼손잡이의 자세와 기술을 완성하기 위해 이악하게 훈련하였다.

1년이 지나 박영순은 드디여 도적으로 소문난 왼손잡이탁구선수로 되였으며 12살에 전국중학교부문(당시) 탁구경기에 참가하였다.

탁구판의 높이가 가슴에 이를 정도의 애어린 소녀가 왼손에 탁구채를 쥐고 경기장에 나서자 관람객들은 의아함을 금치 못하였다.

그러나 경기에서 박영순은 2등을 하였다.

탁구전문가들의 관심은 이 놀라운 소녀에게로 돌려졌으며 고마운 어머니조국은 그의 재능을 귀중히 여기여 4.25체육단에 소환하도록 배려를 돌려주었다.

전문체육단에서 유능한 감독들의 방조를 받으며 박영순은 자기의 기술을 더욱 련마해갔고 국내경기들에서 두각을 나타냈을 뿐아니라 국제경기들에 출전하여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박영순이 처음으로 참가한 세계선수권대회는 1975년 2월 인디아의 콜카타에서 진행된 제33차 세계탁구선수권대회였다.

이 선수권대회의 준준결승경기는 박영순선수와 남조선선수사이에 진행되였는데 이 경기는 세계탁구력사상 가장 유명한 경기로 알려져있다.

 

 

그때의 경기상황에 대해 어느 한 나라의 출판물은 이렇게 전했다.

《경기시간은 벌써 2시간을 가까이하고있었다. … 박영순선수가 득점할 때마다 관중들은 영순선수와 마음을 함께 하며 18살의 애젊은 선수를 응원했다. 그런데 마감에 이르러 경기상황은 급변했다. 15:19 … 박영순선수를 응원하던 관중들은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했다. 힐끗 점수판에 시선을 던졌던 박영순이 탁구채를 가볍게 놓으며 요구시간을 제의했다. 탄력있는 자세로 수건을 든 그는 얼굴에 흐르는 땀을 천천히 닦기 시작했다. 처녀의 눈에선 끝까지 겨루어보자는 강의한 배심이 흐르고있었다. 박영순선수가 처넣기한 공이 남조선선수의 탁구판으로 길게 날아갔다. 박영순선수앞으로 높은 공이 들어왔다. 직선치기는 불리한 위치다. 하지만 관중의 의사와는 반대로 내려치는 박영순, 총알처럼 내려꽂히는 탁구알. 박영순선수가 강하게 공격한 공을 남조선선수가 다시 그물을 스칠 정도로 날려보냈다. 공은 박영순선수의 탁구판왼쪽모서리에 날아와 부딪쳤다. 이때 상상을 초월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박영순선수가 이 공을 살려낸것이다. 준비없이 서있던 남조선선수가 맥없이 보내온 공을 드세게 강타하는 박영순선수!

18:20, 19:20, 20:20 …

영순선수는 결정적인 마지막한알을 왼쪽으로 속도걸어치기로 상대방을 유인해놓고 불의의 오른쪽 강한 걸어치기공격으로 정통을 보기좋게 찔렀다. 성공! 이리하여 불굴의 의지의 소유자이며 유능한 공의 요술사인 박영순선수앞에 남조선선수의 담벽은 완전히 무너지고말았다.

관중들은 인디아의 콜카타에서 조선처녀가 창조한 탁구신화를 제눈으로 목격하게 되는 행운을 지녔던것이다.》

박영순은 제33차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마지막까지 달리고달려 세계선수권을 쟁취하였으며 국제탁구련맹과 대회조직위원회로부터 《세계탁구녀왕》의 상징인 왕관과 왕띠를 받았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님께서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승의 영예를 안고 돌아온 그를 친히 만나주시고 주체조국의 영예를 온 세상에 빛내인 체육영웅이라고 높이 치하하시면서 대를 두고 길이 전할 기념사진을 찍어주시고 사랑의 선물을 안겨주시였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사랑과 배려, 조국의 기대와 믿음을 심장깊이 간직하고 충성의 땀을 흘려온 그는 1977년 4월 영국의 버밍엄에서 열린 제34차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녀자 개인단식경기에서 또다시 1등을 하여 2중세계탁구선수권보유자로 되였다.

박영순은 선수로 생활하는 기간 수많은 국제경기들에 참가하여 금메달 15개를 포함하여 37개의 메달을 받았다.

선수생활을 마친 후 그는 탁구감독으로 사업하면서 여러명의 재능있는 탁구선수후비들을 키워냈다.

조국의 명예를 만방에 떨치고 공화국의 체육발전에 기여한것으로 하여  박영순은 인민체육인(1975년)칭호와 로력영웅(1985년)칭호를 비롯한 많은 훈장과 메달을 수여받았다.

어머니당과 조국은 박영순이 31살이라는 너무도 젊은 나이에 생을 마쳤을 때에는 애국렬사릉에 안치하여 영생하는 삶을 누리도록 해주었다.

그가 산 생은 비록 길지 않았으나 백두산절세위인들의 따뜻한 사랑과 믿음속에서 우리 민족체육사에 아로새겨진 그의 공적은 세월과 더불어 길이 전해지고있다.

 

김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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