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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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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4(2015)년 7월 16일 [소개]

귀중한 국보 《팔만대장경》

 

《팔만대장경》은 고려시기에 방대한 불교관계책들을 분류별로 묶어 놓은 불교총서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팔만대장경〉과 목판활자는 우리 나라 인쇄기술의 발전면모를 보여주는 귀중한 국보입니다. 물론 〈팔만대장경〉은 불교를 설교하기 위한 책입니다. 그러나 선조들이 벌써 수백년전에 목판활자를 8만여매나 만들어 수천권에 달하는 방대한 대장경을 훌륭히 출판하였다는 그 자체가 우리 나라와 민족의 큰 자랑입니다.》

고려에서의 대장경출판사업은 1011년부터 시작되였는데 1087년까지 70여년간에 걸쳐 6 000여권으로 된 첫 대장경이 판각 및 출판되였다.

그후 12세기 후반기에 두번째로 《교정도감》(불교책들을 전문으로 만들어내던 기관)에서 대각국사로 이름났던 중 의천에 의하여 출판된 1 000여종에 4 769권의 대장경이 다시 판각되여 보충되였는데 목판들은 1231년 몽골침입때 불타버리고 말았다. 이로부터 고려에서는 당시 수도였던 강화도에 대장도감을, 경상도 진주에는 그 분사를 각각 설치하고 1236년부터 세번째로 대장경출판사업을 시작하여 1251년에 끝냈다.

이때 출판된 대장경은 《국본》(고려에서 처음 간행한 대장경인 《초간본》, 일명 《구국본》)을 저본으로 하고 《송본》(중국의 첫 대장경인 《북송본》, 일명 《촉본》)과 《란본》(거란의 첫 대장경) 등을 참고로 하여 편찬하였는데 책으로는 1 539종에 6 793권, 글자를 새긴 목판수는 8만여매나 되였다.

이것이 곧 대장경가운데서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완성된것으로 오늘까지 전해지고있는 《팔만대장경》이다.

이 대장경은 다시 1513부로 나누어 졌는데 편찬체제상 네가지 체계로 구분할수있다.

첫째 체계인 제1부-제1087부에는 불교의 대승 및 소승경전들이 경장, 률장, 론장의 순서로 실려있으며 기타 성현집들이 실려있다. 이 부분은 이미 없어진 1차대장경의 내용들을 그대로 복각한것이다.

둘째 체계인 제1088부-제1263부에는 첫 부분에서 빠졌거나 불교적인 견지에서 부족하다고 생각한 경류의 문헌과 여러가지 불교문헌목록, 계송(불교의 교리나 석가모니를 칭송한 불교시), 잡집 등이 실려있다.

셋째 체계인 제1264부-제1498부에는 1차대장경과 《속장경》 편찬당시 빠졌던 여러가지 경장, 률장, 론장, 기타 성현집들이 실려있다. 이 부분이 오늘의 《팔만대장경》 판각당시 새로 보충한것이다.

넷째 체계인 제1499부-제1513부에는 우리 나라의 이름난 중들인 원효, 균여 등이 쓴 불교책들을 비롯하여 성현집들이 실려있다. 이 부분은 원래《팔만대장경》에는 수록되지 않았는데 력대적으로 이 대장경을 보관해 온 해인사의 중들이 보충해 넣은것이다.

《팔만대장경》의 목판은 후박나무, 박달나무, 자작나무로 만들었는데 길이 69.6㎝, 너비 24㎝, 두께 3.7㎝로 되여있고 목판마다에는 22줄로 한줄에 14자가 새겨져있다. 목판의 네귀에는 청동띠를 둘러 못으로 고정시켰고 목판이 틀어지지 않도록 량쪽끝에 나무기둥을 덧댔으며 판자의 겉면에는 옻칠을 하여 오래동안 썩지 않고 좀도 먹지않게 하였다.

《팔만대장경》 목판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산 해인사에 보관되여있다.

그리고 목판본 한부는 평안북도 향산군 묘향산 보현사에 있다.

동방의 명승지로 널리 알려진 묘향산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최신설비를 갖춘 《팔만대장경》보존고가 세워져 목판본 《팔만대장경》은 손색없이 보관리용되고있다.

주체77(1988)년에 사회과학원 민족고전연구소에서는 전 25권으로 된 《팔만대장경》(해제)을 편찬하였다.

《팔만대장경》은 불교교리와 그 해석문헌들, 불교전파에서 이름난 중들의 전기를 비롯하여 불교를 절대화하는 내용으로 일관되여있으나 우리 선조들의 높은 출판인쇄기술수준을 보여주는것으로서 우리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의 하나이다.

 

팔만대장경보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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