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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9-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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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7월 2일 [소개]

 

력사유적 안학궁터

 

안학궁터는 평양시 대성구역 안학동에 있는 고구려의 왕궁터이다.

원래 안학궁은 고구려가 오늘의 중국 길림성 집안에서부터 평양으로 수도를 옮겨오면서 5세기초엽에 건설한 왕궁이였다.

안학궁은 586년 왕궁이 평양성으로 옮기기 전까지 왕이 살면서 나라일을 보던 곳이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주체47(1958)년 4월에 하신 교시에 따라 안학궁터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사업과 발굴이 진행됨으로써 궁전자리가 드러나고 고적을 원상대로 복구하는 사업에 착수하게 되였다.

안학궁터는 토성벽으로 둘러막혀있었다.

네모나게 생긴 궁성벽 한변의 길이는 622m이고 궁터의 면적은 약 38만㎡나되며 그안에 총건평 3만 1 458㎡에 달하는 52개의 궁전들이 서로 처마를 맞대고 즐비하게 늘어서있었다. 궁성의 성벽밖으로는 큰 물도랑을 째고 성의 방비를 강화하였다. 성문은 남쪽의 성벽에 3개, 동, 서, 북쪽의 성벽에 각각 1개씩하여 모두 6개였다.

성안의 궁전들은 남북중심축을 따라 배치되여있었다.

성안의 궁전들은 외전과 내전, 침전, 동궁과 서궁의 5개 건축물로 나뉘여져있었다.

외전은 국가적인 큰 행사를 하던 정전이고 내전은 왕이 일상적으로 나라의 정사를 보던 정전이며 침전은 왕의 생활거처였다.

동궁에는 다음 왕자리를 이을 세자의 생활거처가 있었고 서궁에는 궁전에 복무하는 사람들의 생활거처와 경리시설들이 있었다.

궁성안에는 크고작은 못들과 인공적으로 만들어놓은 산이 있는 정원들이 꾸려져있었다.

고구려의 이러한 궁성제도는 당시 같은 민족의 나라들인 백제와 신라에 전해지고 이후 우리 나라 봉건국가 왕궁들에 계승되였다.

안학궁터는 고구려의 력사와 우리 나라 건축술의 발전을 가늠해볼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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