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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9-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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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6월 7일 [소개]

 

현대조판법의 시원을 열어놓은 리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의 력사는 자연과 사회의 구속과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빛나는 투쟁의 력사이며 민족의 슬기와 재능이 담긴 수많은 문화적재보를 창조해온 자랑스러운 창조의 력사였습니다.》

15세기는 우리 나라에서 과학기술이 빨리 발전하던 시기였다.

특히 인쇄기술발전에서 획기적인 계기가 이루어졌는데 동활자, 연활자들이 새롭게 발견되고 현대적인 조판법의 시초가 열려지게 되였다.

그리하여 주자소에서는 대대손손 국보로 물려줄 수많은 서적들이 인쇄출판되였다. 이 사업에서 큰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리천이였다.

리천은 1376년 경상도 례안에서 군부판서로 있던 리속의 아들로 태여났다.

리천은 20대에 무과과거시험에 합격하여 무관으로 되였으며 벼슬은 중추원 판사까지 하였다.

그의 활동에서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는것은 공조참판으로 있을 때 활자주조기술발전에 기여한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이미 고려시기(12세기 전반기)에 발명되여 많이 리용되여온 금속활자는 15세기에 그 주조기술이 한층더 발전하였다.

정부는 1403년부터 주자소라는 전문활자제작 및 인쇄소를 설치하고 여기서 여러가지 활자들을 만들어내였다.

리천은 어느날 세종으로부터 개량활자를 만들데 대한 과업을 받게 되였다.

그는 우선 종래의 활자에 대한 연구부터 시작하였다.

낮에 밤을 이어 활자를 들여다보고 주형을 주물러보면서 당시 주조의 결함을 세세히 연구한 리천은 새로운 주조법연구에 달라붙었다.

리천의 비상한 과학적탐구와 노력에 의하여 1420년에 드디여 새로운 동활자가 발명되였는데 그해가 경자년이므로 그 이름을 따서 《경자자》라고 명하였다.

리천은 경자자를 만드는데서도 종래의 낡은것을 극복하여 한가지 크기로만이 아니라 작은 활자와 큰 활자 두가지를 가지고 필요에 따라 효과적으로 리용하도록 하였다. 정자자의 특징은 매우 아담한것이였다.

리천은 연구를 거듭하여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새로운 조판법을 창안했다.

이전에는 동판우에 밀랍을 녹여 붓고 이것이 굳어지기 전에 재빨리 활자를 박은 다음 종이를 대고서 찍었는데 이런 방법은 얼마 못 가서 밀랍이 터지므로 활자들의 움직임이 생기였다. 때문에 인쇄량을 늘일수 없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있었다.

리천은 이것을 극복하여 밀랍을 쓰지 않고 제창 동판에 활자를 세운 다음 그사이에다 굳은 대나무쪼각이나 종이를 접어 끼워넣음으로써 활자들이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시킨 후 인쇄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이렇게 하니 한번에 수백장도 잠간사이에 찍어낼수 있는 혁신이 일어났다.

리천은 현대적인 조판방법의 시원을 열어놓은 인재였다.

15세기에 벌써 우리의 인쇄기술은 전문화단계에 들어섰으며 인쇄소에서는 많은 인원들이 일을 하고있었다.

리천이 활자창안에서 얻은 성과는 세종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세종은 기술자인 리천의 공로를 찬양하였고 그와 주자소일군들에게 상도 내리고 물질적인 방조도 주었다.

1434년 리천은 또다시 고심어린 연구와 노력끝에 《갑인자》라는 활자를 새롭게 주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는 이해 두달어간에만도 글자의 체가 매우 깨끗하고 단정한 20만개의 활자를 부어냈다.

그 활자(갑인자)를 가지고 그해에 《동국통감》, 《삼운통고》등 많은 책을 인쇄하였다.

리천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연구사업을 더욱 심화시켜나감으로써 2년후에는 세계인쇄기술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연활자를 창안제작해내였다.

이것은 당시 인쇄기술발전에서 또 하나의 획기적인 발전이라고 볼수 있다.

연은 융점이 낮고 주물이 잘되며 인쇄할 때에 먹이 잘 묻는 일련의 우점이 있으므로 활자용금속으로는 제격이였다.

리천이 창안한 기술로 하여 부피가 방대한 《자치통감》(150권)과 《대장경》들이 인쇄되여 국보로 전해지게 되였다.

그는 그후에도 계속 인쇄기술상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풀어나갔다.

리천은 장영실이라는 이름있는 기술자와 손을 맞잡고 간의, 혼천의와 같은 각종 천문관측기구들도 창안제작하였다.

천체의 위치 특히 적도자리표를 재는 혼천의는 여러개의 복잡한 눈금원판들로 결합된 기계식으로 된 자동측정장치인데 세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였다.

그는 장영실 등과 함께 해시계인 앙부일구, 자동물시계인 자격루 등 시간측정기구들을 창안제작하는데도 기여하였다.

리천을 비롯한 당시 학자들이 이룩한 성과는 세계천문기상학과 그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리천은 이름있는 과학자일뿐아니라 침략자들을 물리치는 싸움에서 공을 세운 무관이기도 하였다.

그는 반동력으로 작용하는 화약무기인 화포를 창안하였고 민족악기제작사업에 참가하였다.

리천은 자기의 전생애를 나라와 인민을 위한 의로운 일에 바치였으며 75살의 고령에 이른 생애의 마지막까지도 과학기술연구사업에 헌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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