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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날자 : 2019-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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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3월 22일 [소개]

 

임진조국전쟁시기의 《3대첩》(3)

 

《행주대첩》

 

임진조국전쟁때 애국적인민들과 군인들이 행주산성에서 일본침략자들에게 큰 타격을 준 전투이다.

1593년 1월 평양성전투에서 크게 이기고 평양성을 되찾은 조선군대는 패주하는 적을 계속 추격하여 서울로 압축하였다.

한편 남쪽으로부터는 전라도군대가 권률(1537-1599)의 지휘밑에 서울서쪽 40리지점에 있는 행주산성에 와 머무르면서 서울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김포, 통진 등에는 의병대와 관군이 진을 치고 서울탈환전투에 참가할 부대들을 엄호하였다.

조선군대와 인민들의 반침략투쟁에 의하여 여러곳으로부터 무질서하게 쫓기여 서울에 모여든 일본침략자들은 서울을 계속 견지하려는 목적밑에 2월 12일 3만여명의 침략군을 동원하여 행주산성을 공격하여왔다.

이때 산성에는 2 300여명의 군대와 주변인민들이 있었다.

성안의 군사들과 인민들은 권률의 지휘밑에 통나무로 목책을 둘러치고 돌과 흙으로 성을 쌓아 전투준비를 갖추었다.

적들이 조총부대를 앞세우고 총을 마구 쏘아대면서 공격해오자 산성안의 군민들은 활을 쏘고 돌을 굴리면서 용감히 싸웠고 성밖에 나가 화차를 쏘며 반돌격으로 적을 무찌르기도 하였다

패배한 적들은 화공전술, 성폭파전술 등 여러가지 전술을 쓰면서 발악하였으나 성방어자들은 용감히 싸워 적의 공격을 물리쳤다.

성안의 부녀자들도 한사람같이 싸움에 떨쳐나서 치마폭에 돌을 담아 날라다줌으로써 싸우는 관군과 의병들을 적극 도와주고 크게 고무하였다. 우리 나라에서《행주치마》라고 부르는 녀성들의 앞치마의 이름도 이 행주산성싸움에서 생긴것이라고 한다.

9차례의 드센 공격을 들이대여서도 성을 점령할수 없었던 왜놈들은 숱한 시체만 남기고 도망치고말았다. 행주산성싸움에서의 승리는 서울로 몰려든 적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하였고 놈들이 부랴부랴 남쪽으로 총퇴각하지 않으면 안되게 하였다.

행주산성전투는 임진조국전쟁에서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는 전투들중의 하나로서 《행주대첩》으로 력사에 기록되여오고있다.

우리 인민은 이 전투승리를 통하여 용감성과 애국적기개를 다시 한번 시위하였으며 일본침략자들의 발악적기도를 꺾어버림으로써 적들의 총퇴각을 더욱 촉진시켰다.

이처럼 《한산대첩》, 《진주대첩》, 《행주대첩》은 임진조국전쟁승리에 크게 기여한 3대승리로서 우리 나라 력사에 길이 전해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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