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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9-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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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3월 21일 [소개]

 

임진조국전쟁시기의 《3대첩》(2)

 

《진주대첩》

 

진주대첩》(진주대승리)은 임진조국전쟁(1592-1598) 첫 시기인 1592년 10월 우리 인민이 중요한 행정군사중심지의 하나였던 진주를 지켜싸운 제1차 진주성방어전투에서의 승리이다.

1592년 10월에 있은 진주방어전투는 당시 륙지에서 벌어진 가장 큰 공방전의 하나였다.

일본침략자들은 군사전략적의의가 큰 진주를 강점함으로써 경상우도전반을 틀어쥐며 조선수군의 본거지인 전라도로 진격하여 어렵게 된 군량문제를 풀고 나아가서 《수륙병진》기도를 실현하려고 타산하였다.

왜적들은 진주공격에 큰 의의를 부여하고 하세가와의 지휘밑에 있던 부산, 동래, 김해의 강점군을 기본으로 하고 경상도에 있던 저들의 대부분의 병력과 일본본국으로부터 증원군을 보충받아 3만여명의 륙군을 동원하였고 여기에 일부 수군까지 지원하도록 하였다.

진주성방어는 진주판관 김시민(1554-1592)의 지휘밑에 진행되였다.

당시 성안에는 3 700명의 관군과 얼마 안되는 의병들, 인민들이 있었다.

진주성의 애국적군인들과 인민들은 방어준비를 튼튼히 갖추기 위하여 성을 수축하는 한편 무기를 만들고 군량을 마련하였으며 훈련을 강화하였다. 그리하여 170여정의 조총과 현자총통을 비롯한 많은 무기가 제작되였고 적지 않은 화약과 군량도 저축할수 있게 되였다.

10월 3일 왜적들은 호소가와 다다오끼의 지휘밑에 세 길로 나뉘여 진주로 접근해왔다.

이튿날 적의 선봉기병 1 000여명은 동봉과 북동에 올라 병력을 시위하였다. 근 10배에 달하는 왜적의 큰 무리를 상대하였으나 진주성방위자들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으며 멸적의 각오를 다지면서 적들이 성안의 병력을 알아차릴수 없게 녀인들도 모두 남복차림을 하고 떨쳐나서게 하였다.

10월 6일 적들은 드디여 공격을 개시하였다. 적들은 성을 세면으로 겹겹이 포위하고 조총대의 일제사격밑에 함성을 지르면서 성벽으로 접근해왔다.

성안의 방위자들은 적들이 성벽으로 기여오르려 할 때 일제히 활과 조총, 총통으로 명중사격을 퍼부어 적들에게 무리죽음을 주었다.

첫 공격에서 실패한 왜적들은 성벽으로부터 멀리 물러가 방책을 세우고 다시 공격할 준비를 서둘렀다.

한편 진주성방위자들은 사기가 한층 높아졌고 적과의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할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였다.

10월 7일 적들은 성밖의 아군 지원부대를 제어하면서 화공전술로 성안에 불을 지르고 참대를 엮어세운 다음 흙산을 만들었다.

진주성안의 군사들과 인민들은 한사람같이 떨쳐나서 적이 지른 불을 끄고 적의 흙산에 대처하여 성벽을 높이 쌓았으며 총통사격으로 적의 흙산을 헐어버리였다. 진주성방위자들을 지원하여 달려온 의병부대들은 적을 역포위할 태세를 취하면서 기세를 올려 적들을 공포에 떨게 하였다.

10월 8일 적들은 참대로 사다리를 만들어가지고 성벽에 기여오르려 하였고 3층다락(산대)에 바퀴를 달아 굴리면서 그안에 조총수를 넣어 가지고 성안을 공격하려 하였다.

이에 대처하여 진주성방위자들은 성우에 설치해놓은 현자포와 질려포, 진천뢰 등으로 명중사격을 퍼붓고 끓는 물과 불묶음, 큰 돌들을 안기여 적들의 공격을 성과적으로 물리쳤다.

전투는 다음날에도 계속되였다.

적들은 성밖에서 지원하는 의병들의 투쟁을 막기 위하여 적지 않은 력량을 그쪽으로 돌리는 한편 성에 대한 공격도 멈추지 않았다. 적들은 이날도 종일토록 사격을 계속하였으며 흙산도 더 높이 쌓아올리였다.

10월 10일 적들은 마지막발악을 하였다. 적들은 낮에 퇴각하는것처럼 하다가 밤에 은밀히 성에 접근하여 총공세를 취하였다. 적들은 처음에 동문쪽으로 공격하다가 반격을 받게 되자 북문쪽으로 공격해왔다.

적들이 긴 사다리를 리용하여 개미떼처럼 성벽에 달라붙었으나 성방위자들은 모두가 한덩어리가 되여 신변기재들을 능숙하게 동원리용하면서 성을 끝까지 지켜냈다.  

진주성의 군사들과 인민들은 연 5일간 압도적으로 우세한 적의 공세를 물리치고 성을 수호하였다.

이 전투에서 300여명의 적장을 포함한 많은 왜적들이 소멸되였다.

이 승리는 지방군과 인민들이 굳게 뭉쳐 용감히 싸운데 있었으며 싸움에 앞서 전투준비를 잘한데 있었다.

이 전투가 바로 력사에서 말하는 진주대첩이다. 진주성전투의 승리는 해전에서의 패배를 만회하고 전라도를 점령함으로써 전쟁을 다시 확대해 보려던 왜적의 기도를 파탄시키고 침략자들로 하여금 수세에 빠져들어가게 한데 그 의의가 있었다.

1592년 《진주대첩은 《한산대첩과 함께 임진조국전쟁에서 조선인민이 거둔 큰 승리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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