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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9-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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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3월 20일 [기사]

 

임진조국전쟁시기의 《3대첩》(1)

 

일본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임진조국전쟁시기 《3대첩》이라고 불리우는 이야기가 전해지고있다.

그것이 바로 《한산대첩》, 《진주대첩》, 《행주대첩》이다.

 

《한산대첩》

 

임진조국전쟁때 한산도앞바다에서 조선함대가 왜적함대에 섬멸적타격을 준 전투이다.

리순신장군(1545-1598)의 지휘밑에 조선수군은 우리 나라에 쳐들어온 일본침략자들의 수군을 1592년 5월과 6월 두차례에 걸친 출전에서 크게 타격함으로써 조선남해에서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이로 하여 《수륙병진》기도가 파탄될 위험에 처한 일본침략자들은 수군강화대책을 강구하는 한편 1592년 6월 말에 3개의 대함대를 새로 편성하여 조선함대를 공격하여왔다.

7월 6일 와끼사까가 거느린 73척으로 편성된 왜적함대 제1함대가 김해를 출발하였으며 구끼와 가또가 거느린 제2, 제3함대가 그뒤를 따랐다. 왜적함대의 목적은 조선남해의 조선함대를 격파하고 저들의 《수륙병진》기도를 실현하는것이였다.

한편 조선남해의 수군기지들에서 새로운 출전준비를 다그쳐 오던 조선수군은 변화된 적정에 대처하여 전투준비를 더욱 철저히 갖추었다. 적함대가 기동을 시작했다는 보고를 받은 리순신장군은 전 함대에 출전명령을 내리였다.

7월 6일 조선수군의 제3차 출전이 시작되였다.

리순신장군은 적함대의 대규모침입에 대처하여 출전중에 전라좌우수영과 경상우수영의 수군을 총 동원하여 련합함대를 편성하였다.

그리하여 조선함대는 90척에 이르렀다.

려수항을 출발한 조선함대는 7월 8일에 견내량 앞바다에 이르렀으며 이날 한산도해전이 벌어지게 되였다. 하루전인 7월 7일 견내량에는 와끼사까가 거느린 적의 제1 함대가 정박하고있었다. 그런데 견내량은 수심이 얕고 해협이 좁아 판옥선과 같은 큰배들이 마음대로 움직일수 없었으며 또한 불리한 정황이 조성되면 적들이 륙지에 기여오를수 있었다.

이러한 점들을 타산한 리순신장군은 적함대를 한산도앞바다에 끌어내여 쳐부실것을 결심하고 조선함대의 주력을 한산도 북쪽기슭에 은페시켰다. 그리고 5~6척의 판옥선을 선봉대로 삼아 적을 유인하게 하였다.

유인대는 적을 공격할 태세를 취하고 기세를 올리였다.

적들은 조선함대가 적은 력량이라고 얕보고 다급히 맞받아 나왔다. 유인대는 급히 배머리를 돌려 뒤로 물러나 견내량의 좁은 물목을 빠져 넓은 한산도앞바다에 나섰다. 적들은 우리의 유인대를 따라잡으려고 속도를 높이면서 거의 모든 함선들이 한산도앞바다에 들어섰다.

이 순간을 기다리던 리순신장군은 전 함대에 총공격명령을 내리였다. 이때 유인대의 판옥선이 되돌아서 전투에 진입했고 은페하고있던 조선함대의 주력은 적함대의 종대에 맞서 학익진(학이 나래를 편듯한 전투서렬)을 펴면서 일시에 공격을 개시하였다.

 

 

조선함대는 거북선을 선두로 일제히 전진하면서 지자, 현자, 승자 등 각종 총통으로 사격을 퍼부어 전투가 시작된 첫 순간에 적함 3척을 격침시켰다. 조선함대의 맹렬한 공격에 당황한 적들은 도망치려고 하였다. 그러나 조선함대는 정면과 량익측으로부터 타격하면서 적함대를 완전히 포위하였다. 그리고 강력한 화포사격을 퍼붓고 들부시는 한편 일부 수군병사들은 적함을 끌어당겨 부셔버렸으며 지어는 적함에 뛰여올라 육박전을 벌려 적들을 무자비하게 무찌르고 적선을 불살라버리였다.

이리하여 적함대는 일시에 녹아났다.

적장 와끼사까는 혼비백산하여 전투지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구사일생으로 겨우 빠져 달아났다.

이 격전에서 조선함대는 적함 73척가운데서 도망친 14척을 제외하고 포위진에 든 적선 59척을 완전히 격침하고 수천명의 적을 살상하였다. 반면에 조선함대는 인적, 물적손실이 거의 없었다.

이와 같이 한산도해전은 중세해전력사에서 유인, 포위, 공격전술이 가장 빛나게 실현된 전투였다.

우리 인민은 이 승리를 력사상 《한산대첩》(한산도의 큰 승리)이라고 자랑하여왔다.

한산도해전에서 조선함대가 승리할수 있은것은 정의의 조국방위전에 떨쳐나선 수군병사들이 애국심과 희생성을 발휘하여 용감히 싸운데 있었으며 리순신장군의 뛰여난 작전과 능숙한 전투지휘에 있었다.

한산도해전에서 조선수군의 승리는 일본침략자들의 《수륙병진계획》을 파탄시키는데 큰 의의를 가지였다.

《한산대첩》은 우리 조선수군이 전쟁개시후 거둔 가장 큰 승리로서 당시 조선해전사뿐아니라 세계해전력사에서도 그 류례를 찾아보기 드문 빛나는 장을 차지한 해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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