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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날자 : 2019-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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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3월 17일 [소개]

 

조선의 비단

 

예로부터 우리 나라는 삼천리금수강산으로 일러왔다.

금수강산이란 비단에 수놓은것처럼 아름다운 강산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우리 나라는 예로부터 아름다운 비단의 나라로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우리 인민은 고대시기에 벌써 비단생산기술을 창조했으며 고구려와 고려시기에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켜 세상에서 가장 질좋은 비단을 만들어냈다.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우리 민족은 그 과정에 공예작물들도 많이 심었는데 거기에서 나온 원료로 옷감을 생산하였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추운 겨울의 옷을 해결할수 없었고 특히는 늘어나는 옷감의 수요를 충족시킬수 없었으므로 집짐승의 털가죽을 리용하는 한편 새로운 옷감을 만들어내기 위한 끊임없는 창조적활동을 벌렸다. 그 과정에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을수 있다는것을 발견하게 되였다.

기록에 의하면 우리 선조들은 일찍부터 메누에를 순화시켜 뽕누에를 치기 시작하였고 고대시기에 누에에서 실을 뽑아 비단옷을 해입었다고 한다.

특히 황해북도 봉산군 지탑리유적을 비롯한 우리 나라 신석기 및 청동기시대 유적들에서는 누에를 형상한 질그릇들이 발굴되였는데 이것은 이미 원시사회말부터 누에치기가 진행되여왔다는것을 말해주고있다.

세나라시기에 이르러 누에치기는 더욱 성하였으며 매우 섬세하고 높은 수준의 직조기술에 의해 아름답고 화려한 무늬를 가진 여러가지 고급비단들이 생산되여 이웃나라들에 전파되였다.

일본의 력사를 기록한 《일본서기》에는 4~5세기부터 7세기에 이르는 기간에 우리 나라의 비단짜는 기술자들이 일본에 건너가 그 기술을 가르쳐줌으로써 일본에서 비단이 생산되기 시작하였다고 기록되여있다.

또한 력사기록에는 중국 후진시기의 왕이 고려의 무늬비단이 중국비단인 동포보다 더 아름답다고 감탄하였다는 자료도 서술되여있다.

조선의 비단은 은근한 광택과 부드러운 손맛, 섬세한 느낌에 있어서 다른 나라의 비단보다 훨씬 월등했으며 건강에도 좋은것으로 하여 금보다도 더 비쌌다고 한다.

하여 고려시기에는 이웃나라는 물론 멀리 아라비아반도의 나라들에까지 수출되여 천하일품으로 자랑떨쳤다.

인간의 아름답고 깨끗한 마음씨를 비단결에 비겨 말하듯이 비단은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고상함과 순결함의 상징으로 간주되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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