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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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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2월 12일 [소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개성성

 

슬기롭고 재능있는 우리 민족은 반만년의 오랜 력사적과정에 세계에 자랑할만 한 우수한 문화유산들을 수많이 창조하여왔다.

그것들중에는 주체102(2013)년 6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개성성도 있다.

개성성은 우리 나라의 첫 통일국가였던 고려의 수도성이다.

개성성은 황성, 궁성, 내성, 외성(라성) 등 네개의 부분성으로 이루어졌다.

황성은 둘레가 4.7km로서 고려성립 이듬해인 919년에 이미 있던 발어참성을 그대로 리용하면서 북쪽벽만을 새로 쌓은 성이다.

황성은 이름그대로 황제가 있는 성이라는 뜻으로서 고려의 황제국적인 지위를 잘 엿볼수 있게 한다.

계몽기가요 《황성옛터》는 바로 고려왕조의 수도였던 개성의 옛 황성터에 비추어 망국의 설음과 조국애를 노래한것이다.

궁성의 둘레는 2.17km로서 919년 궁전건축당시 동시에 쌓아졌다.

궁성은 송악산 남쪽에 자리잡고있던 고려의 왕궁 만월대를 둘러싼 토성으로서 황성안에 자리잡고있었다.

외성의 둘레는23km로서 그안에 궁성, 황성, 내성을 가진 우리 나라에서 제일 큰 수도성중의 하나였다.

외성은 강감찬(948-1031)장군의 발기밑에 1009년부터 1029년까지 21년간에 걸쳐 건설되였다. 외성건설에는 많은 로력이 동원되였는데 《고려사》의 기록에 의하면 장정로력이 무려 30만 4400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외성의 25개성문가운데서 서쪽의 대문인 오정문이 가장 크고 화려하였다.

당시 항구였던 례성강어구의 벽란도를 보고 황홀해한 외국사신들과 상인들이 2층문루를 가진 오정문에 들어서면서 다시금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고 한다.

외성이 쌓아짐으로써 수도방위가 한층 강화되게 되여 당시 사람들은 그 성이 강철같이 견고하다는 뜻을 담아 《금강성곡》이란 노래까지 지어 자기들의 기쁨을 표현하였다. 외성이 건설됨으로써 개성성은 완성된 수도성이였던 고구려 평양성과 같은 도성의 면모를 비로소 갖추게 되였다.

둘레가 11.2km인 내성은 외성안의 일부 구간을 막아 쌓은 성이다.

내성은 성생김새가 반달모양같이 생겼다고 하여 반월성이라고 불리웠다.

이처럼 개성성은 고구려시기 평양성의 형식을 훌륭히 계승한것으서 단일한 민족문화의 전통을 보여주는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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