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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9-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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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2월 11일 [기사]

 

온갖 새가 날아든 벽화

 

우리 나라 력사에는 뛰여난 기법들로 세상에 길이 전해질 명화들을 내놓은 화가들이 수없이 많이 기록되여 있다.

그가운데는 신라의 이름있는 화가 솔거도 있다.

어려서부터 그림그리기에 남다른 취미를 가지고있던 솔거는 부모들의 일손을 도와 일하다가도 줄비하게 늘어선 산봉우리들과 유정하게 흐르는 개울물을 눈여겨보며 땅바닥에 그려보군하였다.

차츰 자라며 그는 그림공부에 더욱 열중하였고 고향산천의 갖가지 아름다운 자연경개를 보면 보는대로 화폭에 담군 하였다.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도 언제나 대바른 성품을 지니고 생활하였다.

봄빛이 짙어가는 어느날

솔거는 황룡사벽에 그림을 그리라는 령을 받게 되였다.

황룡사에 도착하여 정작 벽을 마주하니 무엇을 그려야 할지 갑자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동안 생각에 골몰하던 솔거는 소나무를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중암절벽에 붙어 억세게 자라나는 소나무는 사시장철 모진 비바람속에서도 거연한 자세로 버티고 서있지 않는가?)

이런 생각을 하며 솔거는 붓을 놀리기 시작하였다.

잠간사이에 벽에는 한그루의 로송이 그려졌다.

대와 줄기가 굵은데다가 가지와 잎이 얼기설기 서로 엉켜돌아가는것이 마치도 산 소나무를 그대로 떠옮겨심은듯 한감을 주었다.

솔거가 그림을 그린 다음 까마귀, 수리개, 제비, 참새와 같은 갖가지 새들이 벽화에 있는 소나무를 진짜 나무인줄 알고 날아들기 시작하였다.

새들은 날아들었다가는 미끄러져 떨어지고 , 떨어졌다가는 다시 날아들고 , 날아들다가는 부딪치기를 몇번이나 거듭하고야 날아가버리군 하였다.

그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러 솔거가 그린 벽화는 점차 색이 바래고 모퉁이들이 떨어져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황룡사의 중이 단청으로 색을 덧칠하였으나 그후로는 새들이 다시는 날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솔거는 그후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의 화상과 경주 분황사의 관음보살상, 진주 단속사의 유마화상을 비롯하여 많은 그림을 그렸으며 그때 그가 그린 그림들중에서 단군화상은 후세까지 전해졌다.

조선화의 우수한 기법으로 황룡사벽에 소나무를 그린 벽화와 그가 그린 많은 그림들은 지금 전해지는것이 없어 볼수 없으나 평민의 아들인 솔거가 지니였던 재능은 오늘까지도 민족의 자랑으로 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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