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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8-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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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7(2018)년 4월 30일 [글과 사진]

 

유구한 전통을 가지고있는 우리 나라 수예

 

수예는 실과 천, 바늘을 가지고 형상을 창조하는 공예이다.

수예는 그 사명에 따라 실용수예와 감상수예로 나누어진다.

실용수예는 옷을 비롯하여 이불보, 베개모, 책상보 등 여러가지 직물일용품들을 색실로 장식하는 수예를 말하며 감상수예는 독특한 재료와 표현수법으로 현실을 회화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아름답고 섬세하고 정교한 조형적형상을 창조한다.

수예는 자기의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있다.

수예는 우선 섬세한 예술적기교를 요구하는 고상한 예술이라는데 그 특성이 있다.

회화는 안료를 붓에 뭍여 색채나 선, 명암을 칠할수 있으나 수예는 바늘로 색실을 한뜸한뜸 떠나가야 하므로 매우 깊은 정신력과 함께 정교하고 섬세한 기교를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수예는 또한 원화에 기초하여 형상과 다양한 기법이 창조되며 민족적특성이 강한 예술이라는데 그 특성이 있다.

수예품의 사상예술적수준은 원화의 수준에 의하여 좌우된다. 수예원화는 형태가 완벽하고 조형적형상이 간결하여야 하는데 그러자면 조선화수법으로 그려야 한다. 선명하고 간결한 조선화화법을 살려 낸 원화는 수예기법과 맥이 상통하며 민족적정서가 풍만한 수예품을 창작할수 있게 한다.

수예의 기법에는 수십가지의 기초기법과 응용기법이 있다.

우리 나라의 수예는 매우 오랜 전통을 가지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 녀성들은 옛날부터 수놓이를 많이 하여왔으며 수예품에는 슬기롭고 지혜로우며 외유내강한 조선녀성들의 아름다운 품성이 반영되여있다.》

우리 선조들은 일찍부터 여러가지 비단과 모시 같은 천들을 훌륭히 생산하였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무늬를 수놓았다.

평양시 락랑구역 석암리 219호무덤, 205호무덤에서 발굴된 비단천에 바탕천색과 구별되는 색실로 수놓은 천쪼박유적은 고대시기에 이미 조선수예의 시원이 열렸다는것을 말해준다.

력사자료에 의하면 여러가지 무늬를 수놓은 고구려와 백제, 신라 등 삼국시기 천들은 당시 우리 나라는 물론 이웃 나라들에서도 명성이 자자하였다.

조선수예는 그후 수백년동안의 발전과정을 거쳐 고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이르러 그 형식과 기법이 더욱 다양해졌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현명한 령도밑에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는 우리 나라 수예는 오늘 사회주의적생활양식과 미감에 맞게 더욱 발전풍부화되여 인민들의 문화정서생활을 더욱 풍만하게 하여주는데 크게 이바지하고있다.

종합적미술창작기지인 만수대창작사와 평양수예연구소를 비롯한 수예창작기지들에서는 로동당시대를 구가하는 수많은 수예명작품들을 창작하여 주체예술의 보물고를 더욱 풍부히하고있다.

 

수예《불멸의 꽃》

(1 620×1 120mm, 리원인, 1974년창작)

 

수예《목란》

(1 460×775mm, 량혜련, 박영련, 2009년창작)

 

수예《소나무와 학》

(650×910mm, 문은경, 2004년창작)

 

수예《범》

(2 270×1 620mm, 리원인, 1976년창작)

 

수예《해바라기》

(900×1 400mm, 차경주, 전봉녀, 2009년창작)

 

수예《기러기떼 나는 서해》

(1 620×2 270mm, 리원인, 1985년창작)

 

량면수예《명절의 아침》

(1 300×890mm, 리옥희, 1997년창작)

 

김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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