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ico                     

기사게시날자 : 2018-02-06

...목록으로
주체107(2018)년 2월 6일 [소개]

 

우수한 민족문화유산거중기

 

슬기롭고 근면한 우리 인민의 창조적지혜가 깃든 과학기술분야의 유산들가운데는 거중기도 있다.

거중기는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실학자이며 과학자인 정약용에 의하여 창안제작된 목제기중기로서 오늘날의 기중기와 그 동작원리가 같다.

거중기는 1794~1796년에 경기도 수원성을 쌓을 때 처음 리용되였다. 그 구조를 보면 우와 아래에 각각 4개씩의 쌍도르래가 달린 본체와 그 좌우에 고륜, 록로, 십자궐 등으로 된 북틀로 이루어져있다. 맨우의 가름대에 매여진 두개의 바줄을 도르래의 도움으로 제가끔 아래우로 네번 걸게 되여있고 그 두끝은 좌우로 고륜, 록로를 거쳐 북틀아래부분에 달린 십자궐에 감게 되여있다. 그리하여 같은 인원의 사람들이 거중기의 좌우에 붙어서 줄드레박처럼 생긴 십자궐을 같은 속도로 돌리면 바줄이 감기면서 물건을 끌어올리게 되여있다.

자료에 의하면 수원성을 쌓을 때 30명의 남자로력이 거중기로 1만 2천근(7 200kg)의 질량을 들었다고 한다. 이것은 결국 남자로력 한사람이 4백근의 질량을 든것으로 되며 등짐으로 일하는것에 비하여 4~5배의 능률을 낸것으로 된다. 수원성을 쌓는데 거중기를 10대나 만들어씀으로써 많은 로력을 절약하고 공사비를 훨씬 줄이였다고 한다.

거중기는 비록 중세기적인 수공업적기술에 토대한것이기는 하나 거의 모든 구조물을 나무로 만들게 되여있고 구조가 간단한것으로 하여 제작과 리용이 편리하였다.

또한 거중기는 바줄을 감는데 드는 힘과 매 부분의 세기 및 전체적인 안정성이 력학적으로 잘 처리되여있어 적은 힘으로 큰 무게를 들수 있는 당시로서는 매우 능률적인 건설기계였다.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