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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8-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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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7(2018)년 1월 13일 [상식]

 

백탑전투

 

임진조국전쟁시기 관북의병들이 일본침략자들을 쳐부신 전투이다.

서북지방에서 고니시부대가 서울로 쫓겨간것을 계기로 함경도지방에 기여들었던 적장 가또는 저들의 패배를 만회해보려고 1593년 1월 27일 2만에 가까운 대병력을 이끌고 마천령을 넘어 침공해왔다.

적군이 공격해온다는 적정에 접한 관북의병대의 정문부의병장은 3 000명의 의병부대를 총동원하여 림명(김책시)에 나와 주둔하였다. 의병부대는 처음에 얼마간 뒤로 물러섰다가 지형상 유리한 길주의 백탑(길주군 상하리)에서 적을 소탕하기로 작전하였다.

정문부는 력량대비에서 비할바없이 우세한 적을 소멸하기 위하여 정면충돌을 피하고 골짜기의 요소마다에서 복병진을 쳤다가 적의 대부대를 토막내여 각개격파하기로 계획하였다.

백탑전투는 1월 28일 아침부터 시작되였다. 적의 선두대렬이 림명벌을 지나 산모퉁이를 에돌아가고 그 뒤를 이어 치중대가 벌판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관북의병의 날랜 기병들과 썰매를 탄 창수들이 비호같이 달려나와 적에게 화살과 창을 연방 안기였다.

적은 무리로 쓰러졌다. 적장이 황급히 부대를 돌려 세웠을 때는 이미 수백명의 치중대가 멸살되고 말은 온데간데 없어졌으며 군량과 무기를 실은 수레는 불에 탄 뒤였다. 가또는 할수 없이 길주성을 향하여 행군을 다그쳤다.

그러나 적의 행군서렬은 그 선두가 돌아설수 없는 요소에 이르면 의병들의 기습으로 꼬리를 잘리우군하였다. 적의 대군은 이처럼 계속 녹아나면서 해질무렵에 이르러서야 겨우 길주성앞 고개밑에 다달았다.

벌써부터 성밖에서 대기하고있던 원충서가 지휘하는 1000여명의 기병대는 혼란된 적진속에 불의에 달려들어가 적을 또다시 크게 격파하였다. 때마침 말을 달려 이곳에 이른 의병장 정문부는 대오의 선두에서 단병접전을 벌리였다. 의병장의 분투에 고무된 의병들은 더욱 용기백배하여 적을 쳐부시였다.

이 전투에서 별장 리붕수, 만호 리희당, 18살의 용사 허대성 등은 부대의 앞장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남쪽에서 기여든 적들은 수많은 죽음을 낸뒤 어둠을 타서 겨우 길주성안으로 들어갈수 있었다. 가또가 이끄는 적들이 길주성으로 기여들어가 성안에 갇혀있던 침략군과 합류하려고 하자 의병부대들은 또다시 공격을 들이대여 적 100여명을 소탕하였다. 이렇게 되자 불안과 공포에 떨던 적들은 그날밤으로 길주성에 불을 지르고 총 퇴각하였다.

백탑전투는 의병들의 큰 승리로 끝났다. 관북인민들은 이 전투승리를 백탑대첩이라 하여 자랑하였다.

백탑전투의 승리는 마천령 이북지역에서 일본침략군을 완전히 소탕하고 적에게 강점당하였던 지역을 회복한데 그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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