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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7-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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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6(2017)년 11월 15일 [소개]

 

태권도의 시원 고구려수박

 

조선민족의 기상과 넋이 깃들어있는 태권도는 오늘 우리 겨레의 슬기와 용맹을 과시하며 온 세계에 널리 보급되고있다.

태권도는 그 어떤 무기나 기재의 도움이 없이 높은 정신적수양과 육체훈련을 통해 단련된 발과 손, 몸의 모든 부분을 리용하여 상대방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거나 상대방을 제압하는 우리 민족의 우수한 정통무술이다.

태권도의 글자풀이를 하면 《태》는 발로 차고 밟는다는 뜻, 《권》은 주먹으로 찌르거나 부신다는 뜻이며 《도》는 정신 및 도덕적규범과 수양을 말한다.

태권도는 고대로부터 형성된 민족무술에 토대하여 나온 고구려의 수박에 시원을 두고있다.

고대시기에 형성된 우리 인민의 민족무술은 대체로 활쏘기, 칼쓰기와 창쓰기 등 여러가지 기재와 수단을 리용하는 무술과 아무런 기재도 없이 수행하는 맨몸무술로 이루어져있었다.

삼국시기에 들어서면서 민족무술에서는 새로운 발전이 이룩되였다.

삼국시기에 존재한 민족무술가운데서 오래도록 전해지면서 태권도의 시원으로 된것은 맨몸무술인 고구려수박이였다.

고구려에서는 상무기풍이 크게 장려되였는데 이것은 기재를 가지고 진행하는 무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서 수박과 같은 독자적이며 우수한 맨몸무술을 낳은 근본원천으로 되였다.

수박은 두 사람이 마주서서 손을 위주로 발과 몸을 동시에 자유롭게 움직여 자기를 방어하면서 상대방을 쳐서 물리치는 당시로서는 우수한 무술이였다.

현재까지 알려진 수박장면이 그려져있는 대표적인 고구려무덤벽화들로는 4세기 후반기의 고구려 21대 고국원왕의 무덤인 고국원왕릉(황해남도 안악군), 4세기말~5세기초의 춤무덤(중국 길림성 집안시) 등의 벽화들을 들수 있다.

고국원왕릉(안악3호무덤)벽화의 수박그림은 두 사람이 마주서서 공격과 방어를 하고있는 장면을 묘사한것이다.

 

 

물론 그림에 묘사된 동작들은 지금의 태권도동작들과 조금 차이를 보이고있지만 서기자세와 팔동작은 태권도와 거의 류사한 양상을 띠고있다. 이것은 고국원왕릉벽화의 수박동작이 태권도의 동작과 일맥상통하다는것을 보여준다.

고국원왕릉벽화의 수박그림은 고구려에서 4세기 후반기에 벌써 수박놀이와 그 경기가 크게 벌어졌다는것을 알수 있게 한다.

그리고 고국원왕릉벽화가 수박이 그려져있는 무덤벽화로서는 현재 제일 이른 시기의것인것만큼 독자적인 맨몸무술로서의 수박의 발생시기는 4세기 후반기 이전이였다고 볼수 있다. 또 이 무덤의 소재지가 평양과 가까운 오늘의 황해남도 안악지방인것으로 보아 수박의 발생지역이 평양과 그 주변일대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고구려의 수박은 그후 점차 발전하였다.

춤무덤벽화의 수박그림이 그것을 뚜렷이 보여준다.

춤무덤벽화의 수박그림은 4세기말~5세기초의것으로서 두 사람이 손은 물론 발을 가지고 공격과 방어를 하는 수박장면을 잘 보여주고있다.

이것은 고구려수박이 발로 차고 막는 발기술까지 겸비된 무술이라는것을 보여준다.

춤무덤벽화의 수박은 손발을 위주로 하여 온몸을 날리면서 공격과 방어를 하는 무술동작으로서 고국원왕릉벽화의 수박보다 더 세련된 모습의 일단을 보여준다.

이것은 수박이 고구려사람들의 일상생활과 경기, 생산활동에서 보편화되여있었다는것을 보여준다.

고구려의 수박은 외적의 침략을 물리치고 나라의 자주권을 지키기 위한 인민들의 투쟁에서 큰 은을 내였다.

이처럼 독자적인 맨몸무술로서의 수박은 고구려에서 벌써 4세기 후반기 이전에 존재하였고 4세기 후반기~5세기초에 평양을 비롯한 여러곳에서 널리 벌어졌으며 그후에도 계속 발전하여 매우 높은 수준에 이르게 되였다.

이것은 고구려의 수박이 오늘의 태권도의 시원이였고 평양이 그 발생지, 중심지였다는것을 보여준다.

모든 사실은 태권도가 고구려의 수박에 그 시원을 두고있는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무술이라는것을 보여준다.

 

- 전도유망한 태권도선수로 자라고있는 학생소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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