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21-06-14

주체110(2021)년 6월 14일 《로작》

 

김     정     일

 

정치도덕적자극과 물질적자극에 대한 옳바른 리해를 가질데 대하여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과학교육부 일군들과 한 담화

1967년 6월 13일

 

사회과학자들속에서 선행리론과 다른 나라의 경험에 대하여 교조주의적으로 대하는 그릇된 관점과 태도를 없애고 주체를 철저히 세우는 문제가 매우 중요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와 프로레타리아독재문제에 대한 독창적인 해명을 주신 다음부터 선행리론을 대하는 사회과학자들의 태도와 사고방식에서 새로운 전환이 일어나고있다는데 그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사상관점과 사고방식은 하루이틀사이에 개변되지 않습니다. 사회과학자들속에는 아직도 사대주의, 교조주의가 적지 않게 남아있습니다. 사회과학부문에서 사대주의, 교조주의를 없애고 주체를 세우기 위한 투쟁을 끊임없이 심화시켜야 합니다. 지금까지 절대적인것으로 간주되여온 기존리론과 다른 나라의 경험들도 주체적립장에서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여야 합니다. 주체를 세우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리지 않고서는 사회과학자들을 수령님의 혁명사상과 리론으로 튼튼히 무장시킬수 없으며 사회과학이 우리 나라 혁명과 건설에 옳게 복무하도록 할수 없습니다.

사회과학자들을 우리 당의 혁명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키고 과학연구사업에서 주체를 철저히 세우는것은 오늘 국제공산주의운동안에 좌우경기회주의가 나타나 사회주의건설에 커다란 해독을 끼치고있는 조건에서 더욱 절실한 문제로 나섭니다. 지금 국제적으로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문제와 로동에 대한 정치도덕적자극과 물질적자극문제, 경제발전의 속도와 균형문제를 비롯하여 사회주의, 공산주의건설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문제들을 놓고 많은 론쟁이 벌어지고있으며 여기에서 이러저러한 편향이 나타나고있습니다. 우리 나라 사회과학자들속에서도 이러한 문제들이 적지 않게 론의되고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학자들속에서 론의되고있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 동무들과 의견을 나누자고 합니다.

먼저 사회주의사회에서 정치도덕적자극과 물질적자극의 호상관계문제에 대하여 말하겠습니다.

지금 로동에 대한 정치도덕적자극과 물질적자극문제에 대하여 론쟁하고있는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크게 두가지로 갈라볼수 있습니다. 하나는 로동에 대한 물질적자극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고 정치도덕적자극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것이며 다른 하나는 물질적자극의 의의를 홀시하고 정치도덕적자극만을 일면적으로 내세우는것입니다. 이러한 견해들은 리론적으로 보나 실천적견지에서 보나 모두 부당하고 유해로운것입니다.

정치도덕적자극과 물질적자극에 대한 문제도 과도기문제와 마찬가지로 우리 당의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풀어야 옳바른 해답을 얻을수 있습니다.

정치도덕적자극과 물질적자극을 결합하는 문제는 사회주의제도가 선 다음 사회주의사회에서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한 옳바른 인식을 가지기 위해서는 사회주의사회가 어떤 사회인가 하는것부터 바로 리해하여야 합니다.

사회주의사회는 낡은 착취사회를 부정하고 태여난 사회로서 자본주의사회와 질적으로 구별되는 새로운 사회입니다. 자본주의사회는 개인주의에 기초한 사회이며 계급적대립과 투쟁이 사회관계의 기본으로 되여있는 사회입니다. 이와는 달리 사회주의사회는 집단주의에 기초하고있으며 근로자들의 동지적단결과 협조가 사회관계에서 기본을 이루고있습니다. 근로인민대중이 국가주권과 생산수단의 주인으로 되고 사람들이 사회적처지와 목적과 리해관계의 공통성으로 하여 사상의지적으로 단결하고 동지적으로 협조하는 여기에 사회주의의 본질적특징이 있으며 또한 이것이 사회주의사회의 발전을 추동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되고있습니다.

사회주의사회는 이러한 공산주의적성격과 함께 과도적성격도 가지고있습니다. 사회주의사회의 과도적성격은 착취사회가 남겨놓은 사상, 기술, 문화적락후성과 관련되여있습니다. 사회주의제도가 선 다음에도 낡은 사상과 문화의 유물이 남아있고 공산주의적분배를 실현할수 있을 정도로 생산력발전수준이 높지 못하며 로동계급과 농민사이의 계급적차이, 근로자들의 로동조건과 물질문화생활에서의 차이를 비롯한 여러가지 차이가 남아있게 됩니다. 이런것으로 하여 사회주의사회는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와 구별되게 됩니다. 공산주의적성격과 과도적성격을 다같이 가지고있는 이것이 이미 지나간 자본주의사회와도 구별되고 앞으로 도래하게 될 공산주의사회와도 구별되는 사회주의사회의 특징인것입니다. 사회주의사회를 고찰하는데서 공산주의적성격만 보고 과도적성격을 보지 않는것도 잘못이며 과도적성격만 보고 공산주의적성격을 보지 않는것도 잘못입니다.

사회주의사회의 공산주의적성격과 과도적성격은 근로자들의 로동생활에 반영되여 사람들로 하여금 로동의 결과에 대하여 정치도덕적관심도 가지게 하고 물질적관심도 가지게 합니다. 로동에 대한 정치도덕적관심성을 높이기 위한 정치도덕적자극이 사회주의사회의 공산주의적성격과 관련되여있다면 물질적관심성을 높이기 위한 물질적자극은 과도적성격과 관련되여있습니다.

로동에 대한 물질적자극만 내세우는 견해는 사회주의사회의 공산주의적성격을 홀시하고 과도적성격을 위주로 보는데서 나온것입니다. 물질적자극을 기본으로 보는 사람들은 사회주의제도가 선 다음에도 사람들의 머리속에 착취사회로부터 물려받은 낡은 사상잔재가 많이 남아있기때문에 물질적으로 자극하는것이 근로자들의 생산의욕을 높이고 경제를 빨리 발전시키는데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하면서 물질적자극체계를 경제관리전반에 받아들일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지어 그들은 사회주의사회에서도 수익성을 높이기 위하여서는 리윤, 상금, 가격과 같은 경제적공간들을 경제관리의 기본수단으로 삼아야 하며 기업소들이 가격을 자유롭게 정하고 리윤이 많이 나는 제품을 마음대로 생산할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있습니다. 이것은 사회주의경제를 자본주의경제에로 되돌아가게 하려는 반사회주의적이며 수정주의적인 리론입니다. 만일 이러한 수정주의리론대로 사회주의경제를 관리운영한다면 사회주의경제와 자본주의경제의 차이가 점차 없어지고 사회주의경제가 자본주의적인것으로 변질되게 될것입니다. 결국은 사람들속에 돈밖에 모르는 개인리기주의가 조장되여 나중에는 사회주의사회전반을 침식하고 와해시키는 위험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될것입니다.

다른 한편 정치도덕적자극만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회주의사회의 과도적성격을 무시하고 공산주의적성격만을 강조하고있습니다. 그들은 사회주의사회에서는 모든 근로자들이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높은 정치적열의를 가지고 자각적으로 일하기때문에 로동의 결과에 따르는 물질적평가가 필요없으며 따라서 분배에서도 평균주의를 실시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있습니다. 아직 사람들이 국가적인 사업이나 공동로동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지 않으며 능력에 따라 일하고 수요에 따라 분배를 할수 있을 정도로 생산력이 발전하지 못한 사회주의사회의 조건에서 평균분배를 실시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것은 결국 사회발전단계를 뛰여넘어 단꺼번에 공산주의를 실현해보려는 좌경적인 리론입니다. 사회주의사회의 조건에서 평균분배를 실시할수 없다는것은 쏘련에서 쏘베트정권이 수립된 첫 시기에 있었던 꼼무나의 경험을 통하여 이미 실증되였습니다.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나라들은 응당 꼼무나의 경험에서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만일 사회주의사회의 현실과 력사적경험을 외면하고 로동의 결과에 대한 고려가 없이 평균주의적으로 분배를 한다면 근로자들의 생산의욕을 떨어뜨리게 되고 일하기 싫어하며 적게 일하고도 많이 분배받으려는 현상이 조장되여 사회주의건설에 큰 지장을 주게 될것입니다.

정치도덕적자극과 물질적자극의 호상관계에서 어느것이 위주이고 어느것이 어디에 복종되여야 하는가 하고 문제를 제기한다면 정치도덕적자극이 위주이고 거기에 물질적자극이 안받침되여야 한다고 말하여야 할것입니다. 사회주의사회가 공산주의적성격과 과도적성격을 다같이 가지고있는 사회라고 하여 사회주의사회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이 같은것은 아닙니다. 사회주의사회의 본질적특징은 어디까지나 그 공산주의적성격에 있습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건설과정은 사회주의사회의 공산주의적성격이 끊임없이 강화되고 반면에 과도적성격이 점차 극복되여나가는 과정으로 됩니다. 그러므로 사회주의, 공산주의건설이 진척될수록 사회주의사회의 공산주의적성격을 반영한 정치도덕적자극의 역할은 더욱 커지게 되고 과도적성격을 반영한 물질적자극의 역할은 점차 약화되게 됩니다.

정치도덕적자극을 위주로 하고 여기에 물질적자극을 옳게 결합시키는것은 인민대중의 혁명적열의와 생산의욕을 높여 사회주의건설을 힘있게 다그쳐나갈수 있게 하는 가장 옳바른 길입니다. 근로인민대중이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자기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자각적열성과 창발성을 내여 일하는것은 사회주의제도의 본질적우월성이며 그것은 정치도덕적자극을 강화하는 기초우에서만 높이 발양될수 있습니다. 정치도덕적자극을 앞세워 전체 근로자들이 주인다운 립장과 태도를 가지고 로동에 성실히 참가하도록 하여야 생산도 잘되고 경제관리도 잘되며 모든 일이 다 잘될수 있습니다.

근로자들에 대한 정치도덕적자극에서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정치사업을 강화하는것입니다. 근로자들속에서 정치사업을 잘하여 그들이 자기가 일하는 목적과 의의를 똑똑히 알도록 하여야 주인다운 자각을 가지고 혁명적열의를 내여 맡겨진 혁명과업을 책임적으로 수행할수 있습니다.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정치사상적으로 각성시키고 그들의 혁명적열의를 불러일으킬 때 얼마나 위대한 힘을 발휘하게 되는가 하는것은 우리 나라 사회주의건설의 경험이 잘 보여주고있습니다. 전후복구건설의 그 어려운 시기에 우리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재더미우에 공장과 농촌들을 새로 일떠세운것이나 강선의 로동계급들이 간고분투하여 한해에 6만t밖에 생산할수 없다던 분괴압연기로 12만t의 강재를 뽑아내는 기적을 창조한것은 다 어떤 보수나 대가를 바라고 한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회주의건설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 세상사람들을 놀래운 천리마대고조를 일으킨 중요한 비결은 바로 정치사업을 잘하여 인민대중의 혁명적열의를 높이 발양시킨데 있습니다. 정치사업을 강화하여 근로자들이 자각적으로 일하도록 하지 않고 돈을 위하여 일하게 하여서는 대중속에서 창발성이 나올수 없으며 집단적영웅주의가 발양될수 없습니다.

로임을 올리고 상금을 주는것과 같은 방법으로 생산의 끊임없는 장성을 이룩할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사회주의사회에서 돈으로 사람들을 움직이려 하는것은 사회의 주인인 로동계급과 인민대중에 대한 모독으로 됩니다. 오늘 우리의 로동계급이 사회주의건설에서 높은 창조력을 발휘하여 혁신을 일으키고있는것은 결코 돈을 더 벌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한때 우리 나라에서도 수정주의에 물젖은 일부 경제일군들이 가치법칙을 리용한다고 하면서 황해제철소에 나가 《가화페》를 만들어가지고 로동자들이 일한 결과를 매일 돈으로 평가하는 놀음을 벌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황해제철소 로동계급들은 우리는 돈을 위해서 일하는것이 아니라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일한다, 가치법칙이고 《까마귀법칙》이고 다 집어치우고 당장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을 돈에 얽매여 일을 하게 하는것은 자본주의적방법이며 그렇게 하여가지고서는 절대로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할수 없습니다.

우리는 정치사업을 강화하여 모든 근로자들을 집단주의정신으로 튼튼히 무장시켜야 합니다. 그리하여 근로자들이 집단의 리익속에 자기자신의 리익도 있다는것을 옳게 깨닫고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근로자들을 로동을 사랑하도록 교양하는것이 중요합니다. 근로자들이 생산의 주인으로 되였다고 하여 저절로 로동에 대한 공산주의적태도를 가지게 되는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로동에 대한 교양을 강화하여 모든 사람들이 로동을 가장 신성하고 영예로운것으로 여기며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자기의 힘과 지혜를 다 바쳐 일하는것을 숭고한 의무로 여기도록 하여야 합니다.

근로자들의 혁명적열의를 높이려면 로동에 대한 정치도덕적평가를 잘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근로자들은 자기의 지혜와 로력으로 당과 혁명에 이바지하는것을 더없는 긍지와 보람으로 여기며 로동의 결과에 대하여 물질적평가를 받는것보다 정치적평가를 받는것을 더 좋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근로자들의 로력적성과를 정치적으로 높이 평가해주고 혁신자들을 사회적으로 적극 내세워줌으로써 모든 근로자들이 높은 열의와 자부심을 가지고 사회주의건설에서 위훈을 떨치도록 하여야 합니다.

로동에 대한 정치도덕적자극은 반드시 물질적자극에 의하여 안받침되여야 합니다. 사회주의제도가 선 다음에도 오래동안 로동의 차이가 존재하고 사람들의 머리속에 낡은 사상잔재가 남아있게 되는것만큼 로동에 대한 물질적자극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반대하는것은 물질적자극 그자체가 아니라 정치사업은 하지 않고 물질적자극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사람들속에 개인리기주의를 조장시키는것입니다.

사회주의사회에서의 물질적자극은 자본주의사회에서의 물질적자극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착취와 압박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로동에 대한 물질적자극은 로동자들의 자주성을 유린하고 그들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됩니다. 그러나 사회주의사회에서 물질적자극은 로동의 결과에 대한 물질적평가를 통하여 근로자들로 하여금 주인다운 자각을 가지고 열성과 창발성을 내여 일하도록 추동하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어렵고 힘든 부문에서 일하는 로동자들에게 다른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보다 높은 물질적대우를 주고있는데 이것은 단순히 로동에 대한 물질적자극을 주기 위한것이 아닙니다. 어렵고 힘든 부문의 로동자들에게 다른 부문의 로동자들보다 높은 대우를 해주는것은 자본주의사회에서처럼 사람들을 순전히 물질적으로 자극하기 위한 목적에서가 아니라 그들이 다른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 많은 정력을 소모하기때문에 그것을 보충하고 자기 사업을 더 잘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로동에 대한 물질적자극을 옳게 실현하려면 사회주의분배원칙을 철저히 관철하여야 합니다. 로동의 량과 질에 따라 일을 많이 한 사람에게는 많은 몫이 차례지고 적게 한 사람에게는 적은 몫이 차례지게 하는것은 사람들의 생산의욕을 자극하는 동시에 일하기 싫어하는 낡은 사상을 반대하는 중요한 통제수단으로 됩니다. 만일 사회주의분배원칙을 지키지 않고 평균주의를 하여 힘든 일을 하는 사람과 헐한 일을 하는 사람, 일을 많이 한 사람과 적게 한 사람, 기술기능수준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에게 꼭같은 보수가 차례지게 한다면 사람들이 생산을 늘이고 기술기능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애써 노력하지 않을것이며 건달을 부리면서 놀고먹으려고 하는 현상이 조장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로동정량사업과 로임사정사업을 잘하며 상금을 비롯한 추가적인 보수지불형태를 잘 리용하여 사회주의분배원칙이 정확히 관철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다음으로 경제발전의 속도와 균형문제에 대하여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지금 일부 사회주의나라 경제학자들속에는 경제를 발전시키는데서 속도보다 균형이 더 중요하다고 하면서 균형에 맞추어 속도를 조절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제발전의 속도와 균형과의 호상관계에서 우리가 일차적으로 중시하고 기본으로 삼아야 할 측면은 속도입니다. 물론 경제발전의 속도는 균형을 전제로 하며 옳바른 균형에 기초하여서만 경제가 높은 속도로 발전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경제에서 균형을 맞추는것은 그자체에 목적이 있는것이 아니라 경제발전의 높은 속도를 보장하기 위한것입니다. 경제의 균형은 경제발전의 속도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속도에 복종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민경제계획을 세울 때에는 반드시 속도를 중심에 놓고 속도를 보장하는 원칙에서 균형을 맞추어야 합니다. 다시말하여 당의 정책적요구에 맞게 경제발전속도를 설정하고 그것을 보장할수 있도록 예비와 가능성을 적극 탐구동원하여 인민경제부문들사이, 생산의 제요소들사이의 균형을 맞추어야 합니다.

지금 일부 사람들은 경제가 발전하고 규모가 커지면 그에 따라 생산장성의 예비가 적어지기때문에 생산을 계속 높은 속도로 발전시킬수 없다고 하면서 인민경제계획을 낮추 세울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이것은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을 보지 않는 수정주의리론이며 사회주의경제건설에서 뒤걸음질을 하려는 매우 유해로운 투항주의적경향입니다. 사회주의사회에서는 국가의 통일적지도밑에 로력과 원료, 자재가 합리적으로 리용되고 생산과 분배, 축적과 소비가 계획적으로 실현되는것만큼 경제가 발전할수록 생산장성의 예비와 가능성은 더욱더 커지게 됩니다. 특히 사회주의사회에는 생산력을 빨리 발전시킬수 있는 커다란 정치사상적요인이 있습니다. 속도보다 균형을 더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사회주의경제발전의 주되는 요인을 원료와 자재, 생산도구와 같은 물질적조건에서 찾고있는데 그것은 잘못입니다. 사회주의사회에서 경제발전의 높은 속도를 규정하는 결정적요인은 객관적조건이 아니라 주체적요인입니다. 사회주의경제는 당의 옳바른 령도와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 된 근로인민대중의 높은 혁명적열의와 창조적적극성에 의하여 끊임없이 발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경제를 관리운영하는데서 설비나 원료, 자재를 보기 전에 먼저 사람을 보아야 하며 인민경제의 빠른 발전을 보장하기 위하여서는 물질적조건보다 생산자대중의 당과 수령에 대한 높은 충성심과 그들의 혁명적열의를 먼저 타산하여야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5개년계획을 4년동안에 넘쳐 완수하였고 5개년계획이 끝난 이후시기에도 경제가 계속 높은 속도로 발전하고있는 사실은 당과 국가가 옳바른 로선과 정책을 내놓고 그 관철에로 대중을 힘있게 불러일으키며 경제조직사업을 짜고들어 예비와 잠재력을 적극 동원한다면 경제를 끊임없이 빨리 발전시켜나갈수 있다는것을 뚜렷이 실증하여줍니다.

속도와 균형의 호상관계에서 속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것은 균형을 소홀히 하거나 그 역할을 무시하여도 된다는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경제발전의 높은 속도는 계획적으로 설정되고 유지되는 적극적균형에 의하여 담보됩니다. 계획적으로, 균형적으로 발전하는것은 사회주의경제의 중요한 특징이며 우월성입니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사회주의사회에서 균형이 이루어지는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며 따라서 경제가 파도식으로, 말안장식으로 발전하게 된다고 말하고있습니다. 다시말하면 사회주의경제는 일시적인 균형과 항시적인 불균형에 의하여 한때는 장성하고 한때는 퇴보하는 식으로 발전한다는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그릇된 리론입니다. 만일 사회주의경제에서 균형이 이루어지는것이 일시적현상이고 균형이 부단히 파괴되는것이 일반적현상이라면 사회주의경제와 자본주의경제의 질적차이가 없어지게 될것입니다.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소유에 기초하고있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자본가들이 더 많은 리윤을 얻기 위하여 치렬한 경쟁을 벌리기때문에 균형이 끊임없이 파괴되며 경제적혼란과 무정부성이 지배하게 됩니다. 그러나 생산수단이 사회적소유로 되여있고 국가가 나라의 경제를 통일적으로 관리운영하는 사회주의사회에서는 원칙적으로 경제의 불균형이 생길수 없습니다. 당과 국가가 끊임없이 변화되는 현실의 요구를 제때에 정확히 파악하고 옳바른 대책을 세운다면 언제나 균형을 보장하면서 경제를 높은 속도로 발전시켜나갈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인민경제가 비상히 높은 속도로 끊임없이 발전하고있는데 이것은 바로 계획의 일원화, 세부화방침에 따라 높은 속도를 보장할수 있는 정확하고 적극적인 균형이 안받침되기때문입니다. 이와 반면에 일부 사회주의나라들에서는 경제가 제자리걸음을 하고있거나 계속 높은 속도로 발전하지 못하고 파동성을 띠고있는데 이것은 결코 사회주의경제의 본질적특성과 관련되는 결함이 아닙니다. 오늘 다른 나라들에서 론의되고있는 경제발전의 속도와 균형에 대한 그릇된 리론들은 다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훼손시키고 사회주의경제발전에 장애와 혼란을 조성하는 매우 유해로운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경제건설에서의 실책과 결함을 합리화하기 위한 궤변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회과학부문 일군들은 국제적으로 떠들고있는 기회주의리론들을 옳게 식별하고 철저히 배격하여야 하며 우리 당의 경제건설리론을 견결히 옹호하고 관철해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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