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21-07-11

주체110(2021)년 7월 11일 《상식》

 

상례옷

 

상례옷은 죽은 사람에 대한 례의의 표시로 상례때에 상제들이 입는 옷이다.

우리 민족은 오랜 옛날부터 상례때에 흰옷을 입었다.

고대의 기록에 의하면 부여사람들이 상례때에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흰옷을 입었으며 부인들은 포면의(베로 만든 얼굴가리개)를 썼다.

삼국시기에도 사람이 죽으면 가족들은 상제의 표식으로 흰옷을 입었다.

상복으로 흰옷 즉 베옷을 입는 풍습은 발해 및 후기신라시기를 거쳐 고려시기에도 계승되였다.

《고려사》에 의하면 985년에 《처음으로 5복제도를 제정》하였고 그후 여러차례의 보충, 개정과정을 거쳐 완성되였으며 조선봉건왕조말까지 계승되여왔다.

특히 고려말기부터 봉건적인 유교사상이 강조되면서 상복입는 제도가 까다롭게 되고 여러가지 복잡한 격식들이 생기게 되였다.

5복은 죽은 사람과의 가깝고 먼 혈육관계에 따라 상복의 질과 짓는 방법을 다섯가지로 구분한것인데 참최, 재회, 대공, 소공, 시마로 나누었다.

참최는 촌수가 제일 가까운 사람 즉 아버지가 죽었을 때 입는 상제의 옷이였다.

제일 굵은 생베로 짓는데 단을 꿰매지 않았다.

참최는 3년간 입었다. 참최는 또한 아버지가 없는 맏아들이 할아버지, 증조, 고조할아버지가 죽었을 때와 맏아들이 죽었을 때 그의 아버지도 입었다. 며느리들은 남편과 같은 등급의 옷을 입었다.

재최는 참최다음에 가까운 사람인 어머니나 형제자매가 죽었을 때 입는 옷이였다. 제일 굵은 생베로 짓는것은 참최복과 같으나 단을 꿰매여 만들었다. 이 옷은 입는 대상에 따라 재최3년복, 재최장기복(지팽이짚고 1년 입는 옷), 재최부장기복(지팽이없이 1년 입는 옷), 재최5개월복, 재최3개월복 등으로 나누어 3년(만 2년), 1년, 5개월, 3개월간씩 입게 되여있었다.

여기서 상복기간이 길고짧은것, 지팽이를 짚는가 안 짚는가 하는것은 상제와 죽은 사람과의 인연관계에 의해 구분되였다.

대공은 삼을 써서 좀 가늘게 뽑은 실로 짠 베로 만든 상복이였다.

종형제, 종자매를 위해서 9개월간 입었다.

시집켠의 조부모, 외삼촌 등이 죽었을 때에도 입었다.

소공은 가는 베로 만든 상복으로 5개월간 입었다. 소공은 형제의 손자, 종형제의 아들, 륙촌형제가 죽었을 때 그리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외삼촌 등이 사망했을 때에도 입었다.

시마는 매우 가는 베로 만들어 석달동안 입는 상복이였다. 입는 대상은 8촌에 해당한 친척들이였다. 이밖에 각이한 친척들이 사망하였을 때 입는 상복이 구체적으로 제정되여있었다.

상복에는 남자의것과 녀자의것이 구분되여있었다.

남자의 상복은 상제가 상복차림을 할 때 맨우에 입는 겉옷인 최의, 아래에 입는 치마인 최상, 최의밑에 입는 중의(중단), 머리에 쓰는 관, 머리에 두르는 띠인 수질, 허리에 띠는 요질과 교대, 지팽이, 행전 등으로 구성되였다.

녀자의 상복은 남자의것보다 전반적으로 작으며 남자상복에 있는 중의나 행전 같은것이 없었다.

지팽이는 참최의 경우에는 참대지팽이, 재최의 경우에는 오동나무 또는 버드나무 지팽이를 짚었다.

상복은 기본옷인 바지, 저고리를 입은 다음 그우에 입어 상례옷차림새를 갖추었다.

우리 나라에서 상례옷을 입는 풍습은 오래동안 지켜져왔으나 복잡한 격식과 절차, 허례허식으로 하여 점차 없어지고 오늘에는 상례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검소하고 깨끗한 조선옷이나 양복을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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