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21-05-03

주체110(2021)년 5월 3일 《소개》

 

고려의 발전된 우정제도

 

우정은 우편, 전신, 전화 등 체신에 관한 업무를 보는 일이다.

그러나 전신수단이나 전화가 없던 중세에는 통신을 보장하던 여러가지 수단과 방법에 관한 업무를 이르는 말로 쓰이였다. 당시 통신은 도로를 통한 보행, 역참, 봉수 등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고려봉건국가는 성립후 나라의 통일적발전과 반침략투쟁의 성과적보장을 위하여 국가우정제도를 전면적으로 재정비하였다.

무엇보다먼저 우정제도수립의 필수적기초로 되는 교통운수가 급속히 확대발전하였다.

국토통일에 의하여 발해와 후기신라의 경계, 후삼국들을 가르는 경계선들이 페지되였다.

나라의 교통운수상련계를 인위적으로 단절한 이러한 장벽들이 제거됨으로써 온 나라에 통일적인 교통운수망이 형성되였다.

다음으로 지방에 대한 중앙집권적통치를 보장하기 위한 교통통신수단의 하나로서 역참망을 편성하고 운영하였다. 역참에서는 일정한 인원과 역마, 마차 등을 갖추어놓고 중앙과 지방의 관리들의 래왕, 외국사신의 래왕, 국가공문서와 통신전달 등을 보장하였다.

고려에서는 국토의 통일과 함께 수도인 개경을 중심으로 첫 통일적역참제도가 수립되였으 며 12세기 80년대에 이르러 완비되여 국가적통신 을 원만히 보장하였다.

다음으로 통신수단의 하나로서 위급한 정황을 불과 연기로 전달하는 봉수망도 더욱 확대되였다.

국토통일과 고구려, 발해의 옛땅을 되찾기 위한 투쟁과정에 넓어진 령토들에 고려봉건정부는 역참망과 함께 봉수망도 수립하였으며 그 기본틀은 10세기 90년대에 확립되였다.

고려시기 우정제도가 발달하게 된 요인은 무엇보다먼저 력사의 주체인 인민대중의 창조적투쟁의 결과이다.

인민들은 간고한 투쟁을 통하여 수많은 령길들을 개척하고 교통로들을 닦았으며 크고작은 다리들을 세웠을뿐아니라 후삼국시기 전쟁으로 인하여 파괴되였던 도로와 다리들도 복구하였다. 그리하여 고려시기에 큰 령길만 해도 북부지역 산줄기와 마식령산줄기를 비롯한 중부지역 산줄기들의 령길들, 소백산줄기를 비롯한 남부지역 산줄기의 령길들이 개척되였으며 광주 사평원에 건설된 무지개를 련상케 하는 구름다리를 비롯하여 수많은 다리들도 세워져 통신의 발전을 촉진하였다.

고려시기 우정제도가 발달하게 된 요인은 다음으로 고려의 국토통일에 있다.

국토통일전에 우리 나라는 여러 나라로 갈라져있었으므로 교통운수망은 인위적으로 분렬되여 있었고 역참이나 봉수도 각각 자기 수도를 향하여 조성되여있었다.

그러나 국토가 통일됨으로써 인위적인 경계들이 없어지고 전국의 모든 지역을 포괄하는 하나의 통일적인 교통운수망과 역참, 봉수망이 형성되게 되였으며 그것은 고구려, 발해의 옛땅을 되찾기 위한 고려군대와 인민의 줄기찬 투쟁과정에 더욱 확대되고 정비보강되게 되였다.

고려시기 우정제도가 발달하게 된 요인은 다음으로 고구려 및 발해때 형성되였던 우정수단들을 그대로 계승발전시킨데 있다.

고려는 고구려의 계승국으로서 정치, 경제, 군사, 문화의 모든 면에서 그 성과를 이어받았으며 그것은 우정제도의 수립에도 그대로 반영되였다.

고려봉건정부는 고구려의 남방진출과 관련하여 개척되였던 교통운수망들을 그대로 받아들여 정비보강하였다.

특히 발해때 후기신라로 통하는 간선도로였던 신라도는 고려의 우정수단을 발전시킬수 있는 토대로 되였다.

이처럼 고려의 우정은 당시로서는 비교적 발달된 수준에 있었으며 그것은 고려인민의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기 위한 줄기찬 투쟁과 고려에 의 한 첫 통일국가의 수립, 고구려, 발해를 거쳐 개척되여온 우정수단의 계승발전을 담보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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