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20-09-01

주체109(2020) 년 9월 1일 《상식》

 

간또대지진과 재일조선인집단학살사건


  간또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일본의 도꾜와 요꼬하마를 중심으로 한 간또지방에서 일어난 지진이다. 진원은 가나가와현 서부의 E 139.2°, N 35.4°이고 지진크기는 리히터척도로 7. 9, 지진세기는 7이였다. 이 지진은 세계적으로 볼 때 가장 큰것은 아니지만 피해정도에서는 그 어느 지진보다도 컸다.
  이 지진에 의하여 도꾜는 물론 가까운 항구도시들인 요꼬하마와 요꼬스까도 거의 다 파괴되고 불타버렸으며 그밖에 8개의 도시들이 심한 피해를 입었다. 이때의 피해는 진동에 의한것보다 화재에 의한것이 몇배나 컸다. 도꾜에서는 센 지진으로 건물이 넘어지고 파괴되였으며 연유탕크, 가스탕크의 폭발, 고압전선의 합선 등에 의하여 76개소에서 거의 같은 시각에 불이 났다.
  화재는 이틀동안이나 계속되여 도시의 3/4이 타버렸다. 알려진 자료에 의하면 이 지진으로 인하여 완전 혹은 절반 파괴된 살림집은 각각 128 266동, 126 233동, 화재에 의해 파괴된 집은 447 128동, 이외 류실된 살림집이 868동, 기타 수많은 공공건물들이 파괴되였다. 또한 99 331명이 죽고 43 476명이 행방불명되는 인명피해를 가져왔다.
  간또대지진은 자연에 의한 재해인 동시에 일본반동들에 의한 재일조선인살륙의 피비린 참극이 빚어진 인재이기도 하다.
  당시 지진피해지역들에서는 수십만의 사상자들과 리재민들에 대한 구제대책이 시급히 요구되였으나 일본반동정부는 아무러한 대책도 취하지 않았다. 이로 하여 민심이 소란해지고 정부에 대한 일본인민들의 불만은 극도로 고조되였다. 그러나 일본반동정부는 지진으로 인하여 조성된 이러한 심각한 사회정치적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구제대책이 아니라 일본인민들의 반정부적감정을 딴데로 돌리기 위한 무서운 살륙작전계획을 준비하였다.
  그것이 바로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집단학살이였다.
  9월 2일 일본《천황》은 이른바 《칙령》으로 계엄령을 선포하였고 일본반동정부는 《조선사람들이 방화한다》, 《조선사람들이 우물에 독약을 친다》는 등 모략선전을 벌려 민족적대립감정을 고취하였다. 이와 함께 한때 조선총독부의 정무총감을 하면서 조선인민을 야수적으로 학살한 내무대신 미즈노 렌따로를 시켜 지바현 후나바시해군무전국을 통하여 《조선인박멸》에 대한 긴급명령을 일본의 전지역에 하달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군대와 경찰, 재향군인, 《자경단》, 《청년단》, 우익《반공》단체들과 불량배들은 재일조선인들을 닥치는대로 학살하였다. 일제는 조선사람들을 보기만 하면 쏴죽이고 찔러죽이고 불태워죽이거나 물에 던져죽였으며 어린이들은 줄을 세워놓고 부모들이 보는 앞에서 목을 자르거나 조선사람들의 팔다리를 톱으로 켜고 생눈을 식칼로 도려내는 등 식인종의 살인귀적본성을 그대로 드러내놓았다. 일제는 재일조선인들을 모조리 찾아내여 학살하기 위하여 골목마다 피난민들을 붙들어놓거나 《검문소》를 만들어놓고 조선사람들이 발음하기 힘들어하는 일본말까지 시켜보면서 조선사람을 골라내였으며 일단 조선사람이라는것이 판명되면 그 자리에서 학살하였다. 요꼬하마에서는 250여명의 조선동포들을 태운 배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지른 다음 바다에 침몰시켜 집단학살하였다.
  일제가 간또대지진때 학살한 재일조선인수는 무려 2만 3 000여명에 달한다. 일제는 학살만행의 진상을 가리우기 위해 엄격한 보도관제를 실시하는 한편 도꾜에 거주하고있는 외국사람들을 한곳에 수용하고 출입을 단속하였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야수성과 잔인성을 집중적으로 보여준 간또대지진때의 재일조선인집단학살사건은 일본반동들이야말로 조선민족의 철천지원쑤이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또한 세기를 두고 우리 민족에게 끼친 일본의 그 모든 죄악은 반드시 천백배로 결산하여야 한다는 력사적과제를 다시금 깊이 깨우쳐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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