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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날자 : 2020-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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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9(2020)년 3월 20일 [상식]

 

우리 나라 녀인들은 언제부터 화장하였는가​

 

우리 나라 녀인들의 화장의 력사는 세나라시기 이전에 기원을 두고있다.

B.C. 7세기의것으로 추정되는 구리거울이 1971년 전라남도 화순에서 나왔는데 이것은 당시에 이미 발전된 화장기술이 있었음을 알수 있게 한다.

또한 세나라시기에 연지, 머리기름, 백분 등을 사용하였고 여러가지 장신구로 멋을 냈으며 692년에는 우리 나라의 승려가 일본에 건너가 연분을 만들어주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우리 나라의 화장품제조기술이 높은 단계에 있었음을 알수 있다.

고구려에서는 연지의 붉은색은 잡귀가 꺼리는 색이므로 잡귀의 접근을 예방한다고 믿으면서 이마와 입술, 뺨에 발랐다고 한다.

신라때에 화장품제조기술이 고도로 발전하여 육일치사상(육체와 정신의 일치사상)으로부터 귀걸이, 반지, 목걸이는 녀자뿐아니라 화랑(남자)들도 장식품으로 썼다.

고려때(918-1392년)에는 분이나 연지는 사용하지 않고 버드나무같이 가늘고 아름다운 눈섭을 그리고 비단향주머니를 차고다녔다고 한다.

조선봉건왕조시대(1392-1910년)에는 유교의 영향이 커지면서 녀성들의 바깥출입이 제한되고 녀성들의 화장도 쇠퇴하였다.이때의 미의 기준은 겉모습보다 마음의 아름다움이 강조되였으며 자식낳는 수로 안받침되였다.

일반가정에서의 화장은 장려되지 않았으나 고려때의 기생중심의 화장이 조선봉건왕조시기의 기생들에게 전해졌고 조선봉건왕조 숙종왕때(1674-1720년)에는 화장품행상인 매분구가 있는 등으로 기생들이나 왕실녀인들의 화장은 발전되였다.조선봉건왕조상류층 녀인들은 금이나 은, 옥으로 장식한 노리개를 많이 사용하였고 향낭이라는 향수주머니도 찼다.

임진왜란직후 일본에서 발행된 《아침이슬》이란 책의 화장품광고문중에는 《조선의 최신제법으로 제조한…》이라는 구절도 있어 당시 화장품제조기술을 엿볼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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