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체105(2016)년 8월 18일 《기사》
선군령장의 무비의 담력과 배짱
지난세기 70년대 《판문점사건》이 일어난 때로부터 어언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그 력사의 나날에 새겨진
주체 65(1976)년 8월 18일 《판문점사건》이 일어났을 때였다.
애초부터 공화국에 대한 전쟁도발의 구실을 마련할 음흉한 목적밑에 이 사건을 조작한 미제는 사건이 일어나자 마자 그 진상을 외곡보도하면서 그 문제를 유엔에까지 끌고가 그 무슨 구실을 꾸미기 위해 미쳐날뛰였다. 한편 미국은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을 전투동원태세에 진입시키고 미국본토와 오끼나와로부터 숱한 침략무력과 전쟁장비들을 남조선에 끌어들이며 《보복조치》와 《응징》나발을 불어대며 전쟁열을 고취하였다. 조선반도에는 전쟁의 불구름이 몰려오고 온 세계가 깊은 우려속에 공화국을 주시하였다.
《판문점사건》이 발생한지 나흘째 되는 날에
위대한
조성된 정세와 관련하여 휴양소에서 휴식하던 군인들을 모두 부대로 돌려보냈다는 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군인휴양소에서만이 아니였다. 그때 문학예술부문을 담당한 한 일군은 그무렵에 창작완성된 음악무용이야기 《락원의 노래》 시연회를 예견한대로 조직해야 할지, 미루어야 할지 몰라
위대한
미제침략자들이 우리 나라를 《응징》할 그 무슨《최종작전안》을 검토하고있던 그 시각 공화국에서는 세계예술계를 크게 뒤흔드는 음악무용이야기가 도발자들의 전쟁광기를 날려보내며 장쾌한 고고성을 울린것이다.
천만대적이 달려든다 해도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으시고 쥐락펴락하시는
미제가 《조선은 군사적방법으로는 어림도 없다》, 《조선을 잘못 다쳤다가는 불벼락을 맞는다.》는 비명소리를 지르며 끌어들였던 방대한 침략무력을 부랴부랴 철수해가지고 줄행랑을 놓은것이 당시 《판문점사건》의 통쾌한 결과였다.
정 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