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체112(2023)년 10월 8일 《투고》
숙적과 역적
한 성 옥 (재중조선인청년협회 회장)
숙적과 역적.
새삼스럽게 이 두 개념에 대해 론하자는것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28년전인 1895년 10월 8일, 력사에 《을미사변》(명성황후살해사건)으로 기록된 바로 이날에 감행된 왜나라족속들의 반인륜적범죄만행을 만천하에 폭로함과 동시에 그 피비린 과거죄악에 대한 일고의 성토도 없이 《미래지향적관계》를 읊조려대며 굴종과 굴욕의 추악한 발자취를 찍고있는 천하의 매국노가 과연 누구인가를 다시한번 고발하려 함이다.
명성황후살해사건은 일찍부터 우리 나라를 삼켜보려고 호시탐탐 노리던 사무라이족속들에 의해 감행된 특대형의 극악한 반인륜적살인만행이였다.
1873년 11월 당시 실권을 장악하고 짜리로씨야세력에 의거하여 자기 식의 정치를 시작한 명성황후는 조선을 두고 군침을 흘리고있던 일본에 있어서 골치거리였다.
하여 일본은 1895년 8월 악명높은 사무라이후예인 미우라 고로라는자에게 명성황후를 살해할 흉계를 꾸미도록 위임하였다.
주조공사의 탈을 쓰고 근 한달동안 공사관에 들여박혀 기회를 노리던 미우라는 드디여 자기의 강도적본색을 드러냈다.
이자는 10월 3일 서울주재 일본공사관 밀실에서 사무라이출신의 살인두목들을 모아놓고 살인음모날자를 10월 8일로 확정하였다.
1895년 10월 8일 이른새벽 수백명의 일본군대와 수십명의 령사경찰, 200명의 훈련대와 50여명의 깡패 등으로 무어진 살인무리들은 건청궁을 포위하고 이리떼마냥 달려들었다.
일제살인마들은 놀라서 허둥거리는 궁녀들을 마구 죽였으며 수많은 궁녀들중에서 명성황후를 찾아내기 위해 미친듯이 돌아쳤다.
쓰러져있는 궁녀들속에서 명성황후를 끝내 찾아낸 깡패들은 숨도 채 지지 않은 그를 뒤쪽마당에 끌고가 무참히 불태워 죽이였다.
명성황후를 참혹하게 학살한 일제살인귀들은 범죄행위의 증인들과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하여 살아서 현장을 목격한 궁녀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명성황후살해사건에 직접 관여한 한 일본인은 후에 자기의 수기에서 《선혈로 물든 시체에는 석유가 뿌려지고 불이 달렸다. 순식간에 시체는 화염에 싸여 이상한 냄새를 풍기였으며 참으로 귀곡추추(귀신도 서글프게 운다는 뜻)하였다.》라고 고백하였다.
주권국가의 상징으로 가장 신성시되고있는 황궁안에 마구 뛰여들어 한 나라의 황후까지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한 일제살인귀들의 죄행은 동서고금에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불법무도한 반인륜적행위였으며 우리 나라의 자주권과 존엄을 무참히 유린한 특대형국가주권침해죄, 극악무도한 인권유린범죄였다.
명성황후살해사건이후 일제는 《을사5조약》과 《한일합병조약》을 조작해내고 조선에 대한 식민지지배권을 확립하였으며 식민지파쑈통치기간 우리 인민에게 온갖 불행과 재난을 다 들씌웠다.
일본은 전대미문의 특대형 반인륜범죄행위들에 대해 응당 석고대죄하고 사죄와 배상을 할 대신 오늘까지도 파렴치한 력사외곡과 령토강탈책동에 매여달리면서 저들의 만고죄악을 합리화, 정당화하려 온갖 권모술수와 요술을 피워대고있다.
하건만 윤석열역적패당은 민족의 천년숙적과의 그 무슨 《관계개선》을 위해 《과거를 따질 필요가 없다.》는 친일굴종적인 망발을 줴쳐대며 오만무례하게 날뛰는 일본반동들에게 굽신거림으로써 섬나라쪽발이들의 군국주의부활과 재침광기에 부채질을 해주고있다.
최근에는 민심과 국제사회의 준절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후꾸시마원자력발전소 핵오염수해양방류책동에 극구 동조해나서고있어 민심의 치솟는 분노를 더욱 격앙시키고있다.
지금 괴뢰지역의 각계층은 일본에 굴종하는 윤석열은 리완용보다 더한 력대 최악의 《대통령》이다, 간도 쓸개도 다 내주고 뒤통수만 맞는 윤석열의 깡통외교, 예속외교, 왕복외교를 민중은 용납하지 않을것이다, 윤석열이 처리수다, 윤석열은 그자체가 백해무익한 핵오염수다, 윤석열을 끌어내리지 않고서는 우리의 전쟁은 끝날수 없다, 일본총독 윤석열을 처단하자고 웨치며 반윤석열투쟁에 떨쳐나서고있다.
죄는 지은데로 가기 마련이며 천벌은 정수리에 떨어지는 법이다.
섬나라쪽발이들이 아무리 모지름을 써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으며 천년숙적에게 아부굴종하며 더러운 잔명을 유지해보려는 친일역적 윤석열이 력사의 시궁창속에 처박힐 날은 멀지 않았다.